누가복음 강해설교 인도자용 교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 15:20-32)
<마음을 열며 - 아이스브레이킹>
1. 여러분은 '다움'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 어떤 '다움'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예: 어른다움, 부모다움, 그리스도인다움 등) 그 '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왜 어렵다고 느끼시나요?
- 설교의 핵심 주제인 '맏아들다움'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질문
-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하는 보편적 주제
-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으로 부담 없이 나눌 수 있음
2.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돌아왔을 때, 마음속에서 '용서'와 '공정함' 사이에서 갈등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 본문의 아버지와 맏아들의 갈등 구조를 일상 경험으로 접근
- 말씀 나눔에서 다룰 '공로주의'와 '은혜' 사이의 긴장으로 연결
<말씀 앞에서>
1. 아버지는 왜 둘째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들의 지위를 즉시 회복시켜 주셨을까요? (눅 15:20-24) (참고 눅 15:11-19)
1-1. 아버지의 기다림과 반응
-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 전부터 이미 기다리고 계셨음 —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0)
- '측은히 여겨'(σπλαγχνίζομαι,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깊은 연민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예수님이 불쌍한 이들을 보실 때 사용된 동일한 단어임
- 아버지는 아들의 변명이나 해명을 듣기도 전에 먼저 달려가셨음 — 당시 유대 문화에서 가장(家長)이 달려가는 것은 체면을 내려놓은 파격적 행동
1-2. 옷, 가락지, 신발의 의미
-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2) — 이 세 가지는 모두 아들의 지위 회복을 상징
- 제일 좋은 옷: 집안에서 가장 귀한 예복으로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킴
- 가락지: 가문의 인장 반지로 가산 관리의 권한을 위임하는 상징
- 신발: 당시 종은 맨발이었으므로, 신발을 신기는 것은 종이 아닌 아들로서의 지위를 확인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아들의 체형에 맞게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기다림이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확신에 찬 준비였음을 보여줌
1-3. 본질을 중시하시는 하나님
-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음 — 돈을 얼마 가져갔는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반성문이나 각서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음
- 사람들은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함 — 숫자, 금액, 평판, 절차
- 하나님 아버지는 본질만 중시하시는 분 — 아들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돌아온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남
-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살았든 어떤 상황에 있었든, 돌아오기만 하면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분"
1-4. 인도 포인트
- 참여자들에게 "만약 내가 이 아버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 보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반응과 하나님의 반응의 차이를 대비시킬 것
- 눅 15:22의 옷, 가락지, 신발이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지 참여자들에게 물어보며 대화를 이끌어 갈 것
- 핵심 메시지: 하나님은 비본질(돈, 평판, 절차)이 아닌 본질(아들의 존재 자체)을 중시하심
- 주의: 이 대목에서 "그러니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식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이 죄를 가볍게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임을 강조할 것
2. 아버지는 왜 살진 송아지를 잡고 동네 잔치를 벌이셨을까요? (눅 15:23-24)
2-1. 잔치의 목적 — 명예 회복
-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3) — 살진 송아지는 특별한 날에만 잡는 귀한 음식
-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눅 15:24) — '그들'은 가족만이 아니라 동네 이웃들을 포함
- 아버지가 잔치를 벌인 이유는 아들의 명예를 공동체 안에서 회복시키기 위한 것
2-2. 관계의 이중 회복
- 첫 번째 회복: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수직적 관계 회복 — 옷, 가락지, 신발로 아들의 지위 회복
- 두 번째 회복: 이웃과 아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 회복 — 동네 잔치를 통해 공동체의 용서와 수용을 이끌어 냄
- 아버지가 이웃들 앞에서 아들을 공개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따가운 눈총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심
2-3. 하나님의 구원의 완전성
- 하나님의 구원은 영혼 구원에만 그치지 않음 —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회복시켜 주시는 완전한 구원
-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심장 — 영적 회복과 사회적 회복을 모두 이루어 주심
2-4. 인도 포인트
- "만약 아버지가 잔치를 벌이지 않았다면 둘째 아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 질문으로 아버지의 잔치가 지닌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할 것
- 하나님의 구원이 '나와 하나님' 사이의 수직적 관계 회복에만 머물지 않고, '나와 이웃' 사이의 수평적 관계까지 회복시키신다는 점을 강조할 것
- 우리 소그룹 안에서도 영적으로 회복되어 돌아온 형제자매를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지 성찰하는 시간으로 연결할 것
3.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은혜 앞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며, 사탄은 이를 어떻게 이용할까요? (눅 15:21) (참고 계 12:10)
3-1. 공로주의의 뿌리
-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파격적 은혜 앞에서 불편했음 —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품꾼으로 족합니다" (눅 15:21 참조)
- 이 불편함의 근원은 인간 내면에 자리한 공로주의 — 잘하면 상 받고, 잘못하면 벌 받아야 마음이 편한 심리
- 차라리 아버지께 매를 맞고 품꾼으로 사는 것이 마음 편했을 것
- 은혜는 공로주의적 인간에게 가장 불편한 선물임
3-2. 사탄의 참소 전략
-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계 12:10)
- 참소(κατήγωρ, 카테고르)란 끊임없이 고발하고 정죄하는 행위
- 사탄의 전략: 자의식을 자극하고, 죄책감을 심어주며, "네가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느냐?"라고 속삭임
- 사탄은 둘째 아들에게 이렇게 말함 — "너는 죄를 지은 자인데 좋은 옷, 가락지, 신발, 잔치라니 말이 되느냐? 지금이라도 품꾼으로 사는 것이 네게 어울린다"
3-3. 은혜 앞에서의 담대함
- 사탄의 참소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구원의 확실성 위에 서는 것
-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그 보혈의 공로로 우리를 구원하신 사실이 변함없는 근거
- 사탄이 죄책감을 자극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고 선포해야 함
3-4. 인도 포인트
- 참여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불편하거나 자격 없다고 느낀 적이 있는지" 나눠 보게 할 것
- 계 12:10을 함께 읽으며, 사탄의 참소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나눌 것 — 자의식, 죄책감, 비교의식, 자격지심 등
- 핵심 메시지: 은혜는 자격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 은혜가 불편하다면 그것은 사탄의 참소일 수 있음
- 주의: 참여자 중 실제로 깊은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겪고 있는 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정죄하지 않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유지할 것
4. 맏아들은 왜 분노했으며, 아버지는 그 분노에 어떻게 응답하셨을까요? (눅 15:25-32) (참고 약 1:20-21, 마 25:24-25, 시 23:1-2)
4-1. 맏아들의 분노의 실체
-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눅 15:28) — '노하다'의 헬라어 '오르기조마이'(ὀργίζομαι)가 수동태로 사용됨
- 수동태의 의미: "그가 분노에 사로잡혔다" — 자발적 분노가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지배당한 상태
- 그를 분노로 사로잡은 주체는 사탄 마귀 — 공로주의에 사로잡힌 사탄이 맏아들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음
-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약 1:20) — 야고보 사도가 분노의 원천에 사탄이 있음을 경고
4-2. 맏아들의 두 가지 불만
- 첫 번째 불만: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눅 15:29) — 자신의 성실함에 대한 보상이 없었다는 원망
- 두 번째 불만: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 15:30) — 둘째의 죄에 대한 벌이 없다는 분노
- 맏아들의 말은 인간적으로 100% 공감이 가는 논리이지만, 그 안에 깊은 문제가 숨어 있음
4-3. 아버지를 향한 오해
-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 15:31) — 아버지의 충격적 응답
- 아버지의 뜻: "네가 원할 때 언제든지 친구들을 불러 잔치할 수 있었다. 내 자원이 다 네 것인데 왜 사용하지 않았느냐? 너는 나를 오해했다"
- 이 오해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오해와 동일 —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마 25:24-25)
- 다윗은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했음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2)
- 다윗은 탐욕이 아니라,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아버지께 구한 것 — 하나님의 자원을 자신의 자원으로 받기를 원하는 순전한 신뢰의 고백
4-4. 인도 포인트
- 눅 15:28의 '노하다'가 수동태라는 원어 설명을 간략히 나누며, 분노의 배후에 사탄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줄 것
- 약 1:20-21을 함께 읽으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권면의 근거가 무엇인지 나눌 것
- 눅 15:31의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를 마 25:24-25의 한 달란트 비유와 연결하여, 하나님을 오해할 때 일어나는 비극적 결과를 설명할 것
- 시 23:1-2를 함께 읽으며, 하나님의 자원을 올바로 구하고 사용하는 다윗의 태도를 대비시킬 것
- 핵심 질문: "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가? 굳은 분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에 비추어 보며>
1.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공로주의'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눅 15:21, 31) (참고 계 12:10)
1-1. 도입 질문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을 때 '자격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드신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반대로, 열심히 섬겼는데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신 적은 없으신가요?"
1-2. 공로주의의 두 얼굴
- 둘째 아들의 공로주의: "나는 자격이 없으니 은혜를 받을 수 없다" — 은혜를 거부하는 형태의 공로주의
- 맏아들의 공로주의: "나는 열심히 했으니 보상받아야 한다" — 은혜를 요구하는 형태의 공로주의
- 두 아들 모두 공로주의에 사로잡혀 아버지의 마음을 오해했음
- 사탄은 이 공로주의를 통해 우리를 참소함 — 자격 없다고 움츠러들게 하거나, 보상 없다고 분노하게 만듦
1-3. 은혜의 본질 이해
- 은혜는 자격으로 받는 것이 아님 — 아버지는 아들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셨음
- 은혜를 불편해하는 것은 아버지를 오해한 것 —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 15:31)
- 하나님의 자원은 탐욕이 아닌 신뢰 안에서 자유롭게 구하고 사용할 수 있음
1-4. 적용 질문들
-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이럴 자격이 있나?'라며 움츠러드는 편인가, 아니면 '이만큼 했으니 받아야 한다'며 요구하는 편인가?"
- "사탄이 내 마음에 심어놓은 공로주의적 생각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 "하나님의 자원을 '내 것'으로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인가?"
- "다윗처럼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신뢰 안에서 담대하게 구하고 있는가?"
1-5. 실제적 적용 방향
- 사탄의 참소를 분별하는 훈련: 자의식, 죄책감, 자격지심이 몰려올 때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인가, 사탄의 참소인가?"를 분별하는 습관을 기를 것
- 하나님의 자원을 구하는 기도: 탐욕이 아닌 일용할 양식을 위한 필요를 담대하게 기도로 아뢰는 것
- 은혜를 수용하는 연습: 하나님의 선물 앞에서 불편해하지 않고 감사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를 것
1-6. 격려 포인트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고, 돌아오면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며, 제일 좋은 것으로 입히시고, 모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탄의 참소에 흔들리지 말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구원의 확실함 위에 담대히 서시기를 바랍니다."
2. 나는 '영적 맏아들다움'을 유지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눅 15:31-32) (참고 약 1:20-21, 창 37장)
2-1. 도입 질문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른 지체가 은혜를 받거나 회복되는 것을 볼 때,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으신가요? 혹시 마음 한구석에 맏아들과 같은 시샘이나 불편함을 느끼신 적은 없으신가요?"
2-2. 맏아들다움의 본질
-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눅 15:32) — '우리가'라는 표현이 핵심
- '우리'는 아버지인 '나'와 맏아들인 '너'가 함께 동생을 맞이하는 것
- 맏아들에게 두 배의 유산을 주는 이유: 아버지 부재 시 동생들을 돌보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함
- 맏아들다움의 본질: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아버지의 심정으로 형제를 돌보는 것
2-3. 르우벤의 실패와 유다의 회복
-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은 맏아들다움을 유지하지 못함 — 요셉을 시기하고,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 때 막지 못했으며, 막내 베냐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서지 않음
- 반면 넷째 유다는 나섬 — 베냐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음 (창 44:33-34)
- 하나님은 축복의 물줄기를, 영적 맏아들의 계보를 르우벤이 아닌 유다에게 흘려보내심
- 교훈: 영적 맏아들의 지위는 출생 순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자에게 주어짐
2-4. 적용 질문들
- "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를 시샘하거나 경쟁 관계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 "아버지의 마음으로 형제자매를 품고 기다리며 기뻐해 본 경험이 있는가?"
-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 맏아들'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분노가 올라올 때, 그것이 사탄에 의한 것인지 분별하고 온유함으로 말씀을 붙드는 훈련을 하고 있는가?"
2-5. 실제적 적용 방향
- 공동체 안에서 회복된 지체를 기쁘게 맞이하는 구체적 실천 — 환영하고 관심을 표현하며 함께 기뻐하기
- 시샘과 비교의식이 올라올 때, 야고보서 1:20-21의 말씀을 기억하며 성내기를 더디 하고 온유함으로 말씀을 붙들 것
-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기도 — "하나님, 제가 아버지의 마음을 품게 하시고, 형제를 경쟁 상대가 아닌 함께 돌봐야 할 가족으로 보게 해 주소서"
- 르우벤처럼 뒷짐 지고 서 있지 말고, 유다처럼 위기에 처한 형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삶을 살 것
2-6. 격려 포인트 "영적 맏아들다움은 완벽한 도덕적 삶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으로 형제를 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자리가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품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단하며>
1. 본질을 붙드는 삶 하나님은 비본질(숫자, 평판, 절차)이 아닌 본질(우리의 존재 자체)을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며, 나 역시 삶에서 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하고 본질을 붙드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2. 사탄의 참소를 분별하고 은혜 안에 담대히 서는 삶 죄책감, 자격지심, 공로주의로 은혜를 거부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이 사탄의 참소임을 분별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구원의 확실함 위에 담대히 서겠습니다.
3.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영적 맏아들의 삶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를 경쟁 상대가 아닌 함께 돌봐야 할 가족으로 바라보며, 아버지의 심정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품는 영적 맏아들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인도자 참고사항
주의사항
- 맏아들의 태도를 다룰 때, 참여자 중 실제로 교회에서 오랜 기간 성실히 봉사하며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을 수 있음. "맏아들이 틀렸다"는 식의 정죄가 아니라, "맏아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지만, 아버지의 더 넓은 마음이 있다"는 방향으로 인도할 것
- 둘째 아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참여자 중 과거의 실패나 방황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을 수 있음. 이런 분들에게는 "아버지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며 위로와 격려의 시간이 되게 할 것
- '공로주의'라는 개념이 낯설 수 있으므로, "잘하면 상 받고 잘못하면 벌 받아야 마음이 편한 심리"라고 쉽게 풀어서 설명할 것
- 분노와 사탄의 관련성을 다룰 때, 모든 분노가 사탄에 의한 것이라는 극단적 해석을 피하고, "분노의 배후에 사탄의 조종이 있을 수 있으니 분별해야 한다"는 균형 잡힌 관점을 유지할 것
추가 설명 자료
본문 구절 해설
- 눅 15:20 —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아버지가 늘 먼 곳을 바라보며 아들을 기다렸음을 암시. '측은히 여겨'의 헬라어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는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깊은 연민으로,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실 때 사용된 동일한 단어 (마 9:36, 14:14)
- 눅 15:22 —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제일 좋은 옷'(τὴν στολὴν τὴν πρώτην)은 문자적으로 '첫째 가는 옷'으로, 집안에서 가장 귀한 예복을 의미. 가락지는 가문의 인장 반지로 권위를 상징하며, 신발은 자유인의 표지로 종이 아닌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킴
- 눅 15:28 — "그가 노하여": '오르기조마이'(ὀργίζομαι)가 수동태(aorist passive)로 사용됨. 이는 맏아들이 자발적으로 분노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적 세력에 의해 분노에 사로잡혔음을 시사
- 눅 15:31 —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말은 아버지의 모든 자산에 대한 맏아들의 합법적 접근권을 확인하는 것. 둘째가 자기 몫을 이미 가져갔으므로, 남은 재산 전부가 맏아들의 것이었음
- 눅 15:32 —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마땅하다'(ἔδει)는 도덕적 당위를 나타내는 강한 표현.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기뻐하는 것이 좋겠다"가 아니라 "기뻐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말씀하심
참고구절 해설
- 계 12:10 —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사탄의 이름 자체가 '대적자, 고소자'라는 뜻.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의 죄를 고발하는 역할을 함 (욥 1:6-12 참조).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그 참소의 권세가 무력화됨
- 약 1:20-21 —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성내다'의 헬라어 '오르게'(ὀργή)는 지속적이고 깊은 분노를 의미. 야고보는 이런 분노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됨을 경고하며, 대안으로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으라"고 권면
- 마 25:24-25 —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한 달란트 비유에서 종이 주인을 오해한 것이 본문의 맏아들이 아버지를 오해한 것과 정확히 같은 구조. 하나님을 '굳은 분', '엄격한 분'으로 오해하면 하나님의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땅에 묻어두는 결과를 낳음
- 시 23:1-2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신뢰하며, 먹고 사는 문제를 탐욕이 아닌 신뢰 안에서 구함.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는 양에게 먹고 사는 근본적 필요를 채워주시는 목자의 돌봄을 상징. 하나님의 자원을 내 것으로 수용하는 건강한 신앙의 모범
- 창 37장 이하 (르우벤과 유다) —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은 요셉에 대한 시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고, 결국 맏아들의 축복을 잃음 (창 49:3-4). 반면 넷째 유다는 베냐민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섬으로써 (창 44:33-34) 영적 맏아들의 계보를 이어받음 (창 49:8-10). 이 대비는 본문의 맏아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것이 진정한 맏아들다움임을 보여주는 구약적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