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0편

성경
시편4권

예배자의 자세

시편 100편

학생들이 학교에 갈 때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학생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 자세는 겸손함입니다. 나는 잘 모르고 아직 배우고 있는 존재이니, 다 알고 계시고 또 지도하시는 선생님 앞에 모든 것을 잘 배우겠다는 겸손한 마음, 그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학생이 학생답고 필요한 것을 얻어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학생 인권을 믿고 수학 시간에 영어를 공부하고 영어 시간에 국어를 공부하거나, 또 선생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면 좋은 학생이 될 수 없고, 꼭 필요하고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워서 올 수가 없습니다.

시장에 장 보러 가는 사람들도 자세가 중요합니다.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기 위해서 장 보러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흥정도 필요한데, 흥정이 흥정으로 끝나야지 싸우려 든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싸우는 것이 아니고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는 것이니, 서로가 존중하고 행복해야 즐거운 장보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또 마땅히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해야 하는 여러 가지 방향에 대해서 합리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서 있는 위치와 장소, 자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사회인이 될 수 없고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가장 좋아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인데, 예배드리는 자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예배인데, 예배는 또 신앙인들의 일상입니다. 그런데 그 일상적인 예배를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혹은 어떤 마음 자세로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예배드리는 자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올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드리는 자와 받으시는 분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시 100:1)

분명히 '여호와께'라고 하셨습니다. '찬송을 부를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찬송은 부르는 자가 있고 받는 분이 계십니다. 부르는 자는 예배를 드리러 나온 사람이 부르는 것이고, 받는 분은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라고 노래합니다. 즉 예배는 드리는 자가 있고 예배를 받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나온 사람은 '나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고 예배를 받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건 너무 당연한 말씀 아닙니까?"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일을 거꾸로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배드리는 자의 자세를 돌아보면, 마치 영화를 관람하듯이, 공연을 보듯이 예배를 관람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에 커피를 마시면서, 예배 시간에 음료수를 마시면서, 나를 한번 만족시켜 보라는 식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찬양대 찬양이 나의 귀를 만족시키는지, 설교자의 설교가 내 영혼을 울림을 주는지, 기도자의 기도는 내 마음에 거치는 것이 없는지. 그래서 많은 분들이 찬양을 평가하고, 기도자를 평가하고, 설교를 잣대를 가지고 평가합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예배를 받겠다는 태도와 다름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배를 그런 식으로 자기만족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예배는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준비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잘 깨닫고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씀, 사람의 귀를 만족시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정말 기쁘시게 하는 말씀을 준비해서 선포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찬양대가 찬양을 준비하는 것은 나의 목소리를 뽐내고 듣는 사람의 귀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성호를 불러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가짐도 조심해야 하고 옷차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고, 찬양의 목소리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니 잘 준비해서 올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자는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지식을 뽐내서는 안 되고, 기도자는 성도들의 마음을 받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회중들도 이 자리에서 목소리 높여 찬양하고 마음 다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영혼을 다해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예배가 됩니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받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예배자의 태도입니다.

구원의 기쁨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시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자는 기쁨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기쁘지 않은데,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깁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반문하는 마음이 우리 속에 든다면,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혹은 아직까지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구원받은 사람은 세상에 여타의 어떤 걱정과 근심이 있어도, 그 걱정과 근심에 앞서서 영혼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걱정과 근심과 염려로 살고 있습니다. 물질이나 인간관계나 내 건강이나 가정과 일터에 크고 작은 문제는 한평생 우리를 괴롭힙니다. 단 하루라도 내 인생에 걱정이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단 하루라도 우리 인생에 살면서 염려와 걱정이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걱정과 염려와 근심의 크기보다, 내가 이 땅을 떠나도 천국에서 눈 뜰 수 있다는 구원의 기쁨, 나의 크고 많은 죄, 저 검고 시커먼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완전히 씻어 주셨다는 구원의 기쁨이 말할 수 없이,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러 나오는 자는 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 이 구원의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서는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나를 건져 주신 구원의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도 다 풀어 주시고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와 설렘, 그것으로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이것을 오늘 시인이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목자의 양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3)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예배드리는 사람의 정체성.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러 이 자리에 나왔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양들입니다. 양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들은 내 음성을 듣고 따라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꼴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들은 매일같이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지나다닙니다. 목장과 지팡이를 걸어 놓으면 그 아래로 들어가며 나가며 자신의 모습을 목자에게 보입니다. 선한 목자가 양들을 내어놓고 앞서 가면 양들은 목자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양들이 목자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양들의 시력은 가시거리가 약 30cm밖에 되지 않습니다. 양들이 목자를 따르는 것은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들어야 합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낭떠러지로 가지 않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따라가고 생명이신 주님을 따라가서 우리가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 이전에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늘 말씀하셨듯이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보는 것이 양들처럼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다고 하는데 자주 속습니다. 제대로 보았다고 하는데 얼마나 자주 속는지, 이 보는 것이 우리를 자주 속입니다. 그래서 음성을 잘 들어야 합니다. 목자의 음성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말이 앞서는 사람들이 실수가 많습니다. 문제를 많이 일으킵니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앞서고 듣는 것보다 내 말이 앞서면 항상 문제가 일어납니다. 잘 듣기 바랍니다. 그래야 예배가 제대로 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는 내 말 전에 우선 듣는 행위입니다. 들었다면 그다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자가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듣기는 했는데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그 자리를 배회한다면, 그것은 뿔난 양입니다. 그러면 목자가 그 양을 메고 가든지 그 양을 매로 다스리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목자는 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자의 음성을 들었다면 그 뒤를 잘 따라가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자는 "듣겠습니다, 그리고 따르겠습니다" 이 마음이 있어야 우리는 양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자와 성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 100:5)

이렇게 예배드리는 자들을 하나님은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영원히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기본적인 성도의 자세는 예배인데, 이 예배를 시인이 고백하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대로 잘 드리고 따라가면, 우리 인생 죽을 때까지, 천국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누리고 맛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자답게 제대로 예배드리면,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이 항상 우리를 이끌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러 나온 사람은 드리는 자요,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영화를 관람하듯이 나를 만족시켜 보라는 태도로 예배에 임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받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구원의 기쁨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세상의 크고 작은 걱정과 염려가 있어도, 그것에 앞서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을 떠나도 천국에서 눈 뜰 수 있다는 구원의 기쁨이 어떤 세상 근심보다 크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대와 설렘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듣고 따르는 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앞서야 하고, 들었다면 목자가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렇게 예배드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영원히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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