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3편

성경
시편4권

은택을 잊지 말라

시편 103편

일반적으로 부부가 서로 다툴 때, 그 시작은 지금 당장 마음 상하고 기분 나쁜 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투다 보면 오늘 당장 불쾌하고 기분 나쁜 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과거에 불쾌했던 일, 과거에 기분 나빴던 일, 과거에 상대가 나에게 잘못했던 일까지 계속 소환하고 끄집어내고 그 일을 들추어 냅니다. 거기까지 가게 되면 다툼이 쉽게 끝나지 않고, 끝난다 하더라도 화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해묵은 감정까지 다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을 짧게 끝내고 빨리 화해하려면 오늘 당장 일어난 일, 그 일만 다루는 것도 지혜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서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부부 사이거나 가족 관계일수록 서로 감사하고 고마웠던 일에 대해서는 잘 나누지 않습니다. 혹 고맙고 감사한 일을 표현한다 하더라도, 과거에 상대가 나에게 잘했던 일까지 소환하고 기억을 들추어 내어서 또다시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내 남편이니까, 내 아내니까, 우리 가족이니까. 나에게 잘하는 일은 그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고 보통의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고마운 일인데 참 감사한 일인데, 당연하다고 여기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잊혀지고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기억하려고 애를 써보아도 흘러가 버려서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섭섭하고 화가 나고 서운한 일은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지금도 수백 가지를 다 풀어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한 일을 한번 적어보라고 하면 쉽게 잘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니까 하나하나 세세한 것까지 감사를 잘 표현하지를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 인생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며,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하나하나 입으로 되새기며 손으로 쓰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은택을 잊지 말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1-2)

다윗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말합니다.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아주 강한 표현입니다. 1절과 2절 이 짧은 구절에 '송축하라'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거듭해서 반복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을 송축할 이유는 그가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택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명령하기를 그에게 받은 은혜, 즉 그가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택을 잊지 말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받은 다윗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다윗 스스로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택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시 103:3-4)

하나님이 너의 모든 죄악을 사하셨다고 말합니다. 즉 다윗에게 있어서 자신의 인생 말년에 자기 인생을 돌아보니 받은 은혜가 크고 놀라운데, 그중에 가장 놀랍고 크신 은혜는 죄 용서받은 은혜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다윗의 일생을 알고 있는데,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그가 밧세바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먹고 살만 하니까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전쟁터에는 요압 장군이 알아서 군대를 데리고 나가니까 나는 그냥 왕궁에 거닐고 앉아서 옥상에서 오침을 취하고 거닐고 있었습니다. 밧세바를 보았습니다. 남편이 있는데, 전쟁터에 나간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을 데려다가 자신의 욕망을 채웁니다. 간음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여인이 아기를 가지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서 전쟁터에 있는 남편을 불렀는데 실패합니다. 그러자 그 남편을 전쟁터 가장 앞선 자리에 내보내서 그를 죽게 합니다. 살인의 죄까지 저질렀습니다.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십계명에도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말씀하셨는데, 그런데 이 무거운 죄를 짊어지고 가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주십니다. 그 앞에서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죄는 용서해 주셨지만 죄값은 치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는 속죄 받은 은혜, 사죄의 은혜가 가장 큰 것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용서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얼마나 날아갈 듯이 편안하겠습니까? 그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날 나단 선지자를 자신에게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선지자가 나에게 와서 죄를 지적하지 않았다면, 내가 회개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홀가분하고 가벼운 마음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용서받은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은혜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죄를 묻어두고 살면 항상 마음이 불편합니다. 개운하지 않습니다. 찝찝하고 불편하고 하나님 보기에도 죄송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우리 죄를 토설하고 회개하고 나면 사죄의 기쁨이 찾아옵니다. 이 용서받은 기쁨은 세상의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큰 기쁨입니다. 물질의 기쁨은 써버리면 다시 걱정으로 바뀝니다. 관계의 기쁨은 사람 관계가 식어지면 다시 우리에게서 사라집니다. 하지만 용서받은 기쁨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날 동안 영원합니다. 왜냐하면 용서받은 자만이 천국 백성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즉시 회개하고 용서의 기쁨, 사죄의 기쁨을 항상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것으로 채우심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 103:5)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한 것, 은택을 잊지 말라고 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택 가운데 좋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러면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좋은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무엘상하를 통해서 알고 있지만, 그가 하나님께 받은 좋은 것을 좀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었으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것을 특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인생 말년에 자기 인생을 반추하고 생각해 보니까 고난도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순간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광야를 전전할 때는 죽을 것만 같았는데, 숨이 턱에 차고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어서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그런데 그 고난도 세월이 지나고 나니 다 좋은 것이었습니다. 사울 왕과 다윗 왕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울 왕은 훈련받지 않은 왕이었습니다. 광야 없이 왕이 되었습니다. 결과를 우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다윗은 고난을 철저하게 받았던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왕 삼으시기 위해서 오랜 기간 숙성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빚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윗이 그것을 깨닫습니다. 만약 그때 내가 훈련받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 순종하는 목자가 될 수 있었을까? 때로는 혼나기도 하고 매맞기도 하고 이리저리 쫓겨다니기도 하면서 훈련받았는데, 이것이 결국에는 나에게는 좋은 것이었구나.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지금 당장은 내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월이 가면 다 좋은 것으로 바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자에게는 좋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고난도 좋은 것이고, 때로는 우리 가운데 상처도 세월이 지나면 좋은 것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그런 기대와 소망이 우리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시 103:6)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셨고 하나님이 공평하셨다는 말입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 사울 왕을 심판하셨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 이새의 막내아들을 왕 되게 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았다면, 정의롭고 공평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왕위는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법칙이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왕이면 아들이 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평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를 택하셨는데, 그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집안도 변변치 않은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택입니까? 우리 인생에도 이런 은택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3-14)

다윗이 생각해 보니까 나는 긍휼을 입은 자다. 즉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다. 이것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라고 결론적으로 고백합니다. 불쌍히 여겨주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택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받은 은혜일수록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 독생자를 주시는 것이 어찌 당연한 일입니까?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입니다. 죄 용서받은 은혜가 놀랍지 않습니까? 받은 은혜를 절대로 잊지 말고 하나하나 잘 기억하시고 구체적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실 은혜가 더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인생의 말년에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택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받은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하나 기억하고 구체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는 사죄의 은혜가 가장 큰 은혜입니다. 다윗에게 가장 크고 놀라운 은혜는 죄 용서받은 은혜였습니다. 물질의 기쁨은 써버리면 걱정으로 바뀌고, 관계의 기쁨은 식어지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용서받은 기쁨은 영원합니다. 용서받은 자만이 천국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이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는 주 안에서 모든 것이 좋은 것으로 바뀝니다. 다윗은 고난의 세월도 돌아보니 좋은 것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전전할 때는 죽을 것만 같았지만, 그 훈련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고난도 상처도 세월이 지나면 좋은 것으로 바뀝니다. 그 기대와 소망을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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