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시편 106편
옛날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지나치지 말라고, 너무 앞서가지 말라고,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중도가 더 중요하고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했고, 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자녀들은 부모님의 그 말씀이 당연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살다 보면 알고는 있으나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관계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저만큼 앞서가고,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쌓아두고 살고 누리며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한없이 초라하고 연약하고 부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더 많이 가지려고 애도 쓰고 발버둥치며 노력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을 광야길이라고 말합니다. 죄악의 땅 애굽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곳에서 건져 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보내시는데, 그 과정에서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 성화의 자리인 광야입니다. 그런데 광야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욕심내고 많이 가지려고 애를 쓰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겠습니까?
광야에서의 욕심
오늘 시편의 말씀이 똑같이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시 106:14)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삶을 시인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냈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광야길은 그저 지나가는 길 아닙니까? 머무를 수 없는 곳 아닙니까? 광야는 머무르는 곳이 아니고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곳입니다. 광야를 빨리 지나가야 약속의 땅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광야에서 머무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백성들이 만약 광야에서 터를 잡고 땅을 파고 집을 짓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겠습니까? 사막에서 기초를 팔 수도 없고 더구나 큰 집은 필요도 없습니다. 사막에서 좋은 옷을 입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모랫바람이 불어오면 그 좋은 옷도 다 쓸모가 없습니다. 광야에서 기름진 음식,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음식을 차려두면 모래가 와서 뒤덮어 버리는데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길로 인도하시면서 최소한의 먹거리를 주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마실 물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고 나온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욕심을 내었다고 기록합니다.
사실 우리 인생도 스쳐가는 광야 길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광야가 마치 영원할 것처럼 이곳에서 좋은 집도 짓고 살고 누리며, 영원히 살 것처럼, 마치 이곳이 우리가 가야 할 궁극적인 천국인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고 삽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미련하다고 말합니다.
브올의 바알 사건
시인은 광야에서 있었던 두 가지 사건을 가지고 이들이 욕심을 크게 낸 것을 말해줍니다.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시 106:28-29)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바알브올 사건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가다가 싯딤이라는 곳에서 멈추어 버립니다. 그들이 그곳에 멈춘 이유는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서 그 자리에서 음행의 죄를 짓습니다. 그들과 관계 맺은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성들을 자기들 잔치 자리로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그 잔칫자리는 바알에게 무릎 꿇고 제사하는 자리였습니다. 잔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게 합니다. 그 후에 그들은 우상 숭배까지 순식간에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전염병을 내리셨고 그때 2만 4천 명이 죽어 나갑니다. 이 사건을 시인은 이렇게 기록해두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을 따라서 이동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름기둥이 멈추면 그들도 멈추고,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그들도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싯딤에서 그들이 멈출 때는 구름기둥과 하등 상관이 없었습니다. 구름기둥이 멈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멈추어버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멈추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멈추어 세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욕망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냈습니다. 그들의 성적인 욕망, 그들의 정욕의 욕망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뒤로하고 그 자리에서 멈추어 버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2만 4천 명이나 죽습니다.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첫 번째 성 여리고 성 전투를 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나안 땅에 48개 성읍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성이 여리고 성인데, 그 성에서 싸울 때 한 명도 다치거나 죽은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을 때는 그들의 생명이 보존되고 누구도 다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가라고 할 때 가지 않고, 멈추라 할 때 멈추지 않으면 그들은 2만 4천 명이나 큰 화를 입었습니다. 욕심을 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광야길을 사는 데 여러 가지 욕망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욕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기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의 욕심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하도록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우리 앞에 있지 않습니까?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그때 그 말씀으로 내 속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욕망과 욕심들을 다스릴 수 있어야 됩니다.
말씀이 있고 욕심이 있을 때 그 욕심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은 기도로부터 나옵니다. 기도는 우리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 내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내면 속에서 어떤 욕망들이 일어나는지, 지금 사실 내가 가장 원하고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욕망과 소망이 하나님 말씀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말씀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이 욕심을 다스려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은 나에게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욕심을 다스리라고 주신 위대하고 귀한 선물인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서 망해버렸습니다.
므리바 사건
두 번째 사건이 있습니다.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시 106:32)
민수기 20장에 므리바 사건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물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라고 하시고 반석 앞에서 명령해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모인 이스라엘을 보니 모세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쓴소리를 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쳐 버렸습니다. 물은 터져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셨지만 재난이 모세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은 모세를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이 그들의 지도자 모세로 하여금 가나안 땅 입성을 막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물은 마셨지만 지도자를 잃었습니다. 출애굽의 영웅이었고 출애굽 내내 그들과 함께 수고했고 애썼던 그들의 지도자, 결국은 그들의 욕심이 하나님의 종이요 위대한 지도자를 상실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 교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인이 깨닫게 해줍니다. 광야에서 그들을 이끌고 가는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욕심이 눈을 가려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결국 재난으로 잃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중요합니다. 가족도 중요하고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중요한데, 가끔씩 우리가 당치도 않은 욕심을 부리면 그 욕심으로 인해서 사람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나와 함께 사랑하는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들, 정말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욕심으로 잃으면 훗날 시간이 지나서 깨닫게 되면 가슴 아프고 가슴을 치지 않겠습니까?
욕심이 눈을 가리면 사람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욕심이 주변 사람들과 이웃들, 특별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덕목
그래서 시인은 이 시편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 딱 한 가지를 말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06:1)
감사, 이 한 가지가 광야길을 걷는 자들이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내 마음에 일어나는 정욕과 욕심, 각종 욕망들은 감사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이 정도도 감사하고, 이만큼도 감사하며, 애굽의 죄악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욕망 앞에 쓸데없이 무릎 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람들, 나와 함께한 동역자들, 나를 영적으로 이끌어가는 영적 지도자들, 나와 함께 손잡고 가는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도 잃지 않을 것이고, 헛된 욕망에 나를 태우지도 않을 줄로 믿습니다. 그런 지혜가 광야길을 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광야에서 욕심을 다스리는 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 인생은 스쳐 지나가는 광야길입니다. 이곳에서 지나친 욕심을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며, 말씀과 기도로 내 속에서 일어나는 욕망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욕심이 말씀을 이기면 바알브올 사건처럼 참담한 결과가 따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욕심을 다스리는 것이 광야를 통과하는 비결입니다.
둘째는 욕심이 눈을 가리면 소중한 사람을 잃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욕심이 결국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가나안 땅 문턱에서 잃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당치않은 욕심으로 인해 가족과 동역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 있습니다. 욕심이 눈을 가리면 가장 소중한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상실하게 됩니다.
셋째는 감사가 욕심을 이기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시인이 시편 첫 절에서 선포한 것처럼, 감사는 광야길을 걷는 자들이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감사가 부족할 때 욕심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함께 주신 사람들에게 감사할 때 헛된 욕망 앞에 무릎 꿇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광야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욕심을 다스리고, 감사로 충만하여 사람을 잃지 않고, 결국 약속의 땅에 이르는 믿음의 여정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