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기억하는 지혜
시편 107편
요즘 젊은 세대는 어른들을 가리켜 '꼰대'라고 부르곤 합니다. 이는 어른들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으로, 젊은이들의 삶에 지나치게 관여하며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어른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적절한 훈계와 필요한 조언은 실제로 그들의 삶에 상당한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의 간섭과 개입과 잔소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가정이나 사회 공동체 곳곳에서 그 길을 먼저 살아오신 어른들이, 풍부한 경험을 가지신 선배들이 자녀들의 삶에, 젊은이들의 삶에 훈수도 두고, 듣기 싫어도 잔소리도 하고, 책망도 해야 그들의 삶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보다 온전해지지 않겠습니까? 가정에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삶이 윤택하고 바르게 되기를 바라며, 이것이 그들의 가장 큰 소원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주기적으로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잔소리란 같은 말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밥 먹어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좋은 친구를 만나고 사귀어라, 네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너의 손으로 하거라, 정직해라" 등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반복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말이 듣기 싫다가도, 부모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신 후에는 그 잔소리가 사무치게 그립고 또 듣고 싶어지는 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잔소리하는 책입니다. 같은 말씀을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말씀도 똑같은 말씀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반복되는 찬양의 명령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 107: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 107: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 107:2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 107:31)
똑같은 말씀이 한 시편 안에서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그가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우리 인생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거듭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짧은 시편에서 네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살펴보면, 우리 인생이 한 번씩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가 베푸신 기적을 잊어버릴 때쯤 되면, 시인은 찬송하라고 우리를 깨우치고 책망하며 잔소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고 드러났는지를 시인은 상세히 설명합니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시 107:2-3)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이 베푸신 기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속량하심입니다. 여기서 '속량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가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기업을 무르다'라는 뜻입니다. 룻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그 가정의 기업을 물러준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룻의 가정에서 남자들이 모두 죽어 그 가정이 피폐해지고 가진 재산을 모두 빼앗기게 되었을 때, 보아스가 자기 재산으로 그 집의 재산과 땅을 다 찾아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과 그 재산은 자기 이름으로 등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죽은 룻의 남편, 그 집안 남자들의 이름으로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룻을 건져주고 자기 아내로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면, 그 낳은 아들의 이름은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죽은 룻의 남편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업을 물러주는 '가알'의 특징입니다. 즉, 속량이라는 것은 이러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속량의 은혜
구약 시대의 속량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이 보아스였다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를 전적으로, 완벽하게 속량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죄가 우리를 다스리고 있었고,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사탄 마귀의 종이 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를 건져 주실 수 있는 유일한 속전이 바로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였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건져 주시고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 피의 값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건져 주시고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지 않으셨더라면, 예수님의 그 보배로운 피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속량을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죄 지은 자의 마지막은 지옥 불구덩이인데, 우리가 어디에서 그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오직 예수님의 피 외에는 우리 죄를 사하실 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주기적으로 이 은혜를 떠올리고 되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의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속량하심이요, 나를 건져 주심이요, 죄의 자리에서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옮겨 주신 것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르짖음과 응답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시 107:6-7)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의 기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또 하나의 자리는 바로 부르짖을 때 응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특권은 바로 부르짖는 특권입니다. 구하고 부르짖고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인자하시고 기적을 베푸셔서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누가복음 18장에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이야기가 나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자기 마을에 있는 재판관에게 계속해서 찾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재판관이 불의한 재판관이었습니다. 뇌물을 받아먹는, 의로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과부가 지속적으로 찾아오니까, 매일같이 찾아오니까, 귀찮아서 과부의 청을 들어주고 해결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이렇게 과부의 청을,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는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의로우신 아버지께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부르짖고 간구하며 구하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응답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기적으로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시 107:29)
우리 인생을 살다 보면 큰 광풍이 일어납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집채만 한 파도도 우리 인생을 덮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타고 가시던 배가 큰 풍랑에 휩싸였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일어나셔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잠잠해지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이런 광풍들, 예기치 않은 사건사고들, 내가 알지 못했던 내 인생에 숨겨져 있던 고난들, 어려운 일들이 큰 광풍처럼 다가올 때, 그때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고 간구하면, 큰 파도도 잠잠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우리 인생에게 베푸신 기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시 107:43)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런 일들을 지켜보라고 했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지혜는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속량하심을 기억하고, 우리가 간구하고 부르짖을 때 응답해 주셨던 것을 기억하고, 내 인생에 불어닥친 큰 광풍을 잠잠케 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일들을 잊어버립니다. 망각해 버립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부디 우리 인생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기적들을 찬양하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오늘 하루도 함께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속량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우리 인생에게 베푸신 기적 중에서 가장 큰 기적은 죄 가운데 살던 우리를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속량하신 은혜입니다. 주님의 속량과 구원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은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는 응답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마다 응답하시고 도우셔서 우리를 수렁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부르짖고 간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평안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내 인생에 불어닥친 큰 광풍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생에 몰아친 큰 파도와 거친 바다를 잠잠케 하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지혜가 부족하여 망각하고 잊어버리며 원망하고 불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놀라운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그 기억을 가지고 감사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