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는 기도
시편 108편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때는 평소에 공부하지 않던 학생들이라도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합니다. 무엇인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하면 할수록, 하려고 마음을 먹을수록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면 붙들고 앉아 있느라 밤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밤샘 공부라는 것이 별로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외울 것은 많고 시간은 없고, 해야 할 것은 많고 마음은 급하고, 그러다 보면 커피를 마셔가며 밤을 새기는 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초조해지고, 결과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결국 밤을 새서 공부하나 그렇지 않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런데 그 다음 시험이 되면 똑같이 그러고 앉아 있습니다. 똑같이 밤을 새고 똑같이 공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험생들이 밤을 새워 공부하는 이유는 효율적인 면보다는 오히려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간절하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면, 그렇게라도 열심히 해보면 무엇인가 하나라도 기억나는 것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간절함과 절박함의 표현입니다.
성도는 평소에 기도할 때 오래 기도하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한 10분, 15분 기도해도 금방 지치고, 기도할 것이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인생에 시험이 닥치고 어려움이 다가오고 큰 문제가 생기면 간절해져서 오랫동안 기도하게 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절박하게 기도하고, 간절하게 부르짖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어느덧 금방 지나가고 또 지나가서 금방 새벽을 맞이합니다. 오늘 읽은 시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이 자신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간절한 기도로 담아냅니다.
절박한 상황의 기도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시 108:11-12)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인지 왕이 된 후인지, 그가 어느 민족, 어느 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인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나간 전쟁에서 실패한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군대와 함께 가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면서 역사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했는데, 그때 이후로 다윗이 전쟁에 진 적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다급해졌습니다. 간절해졌습니다. 다음에 똑같이 같은 상황을 반복할 때 이긴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다윗 혼자가 지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지는 것이고,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워집니다. 그래서 그는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 108:1-2)
다윗은 노래하겠다고 말합니다. 태평성대라서 기뻐서, 마음이 즐거워서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하며 노래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함께 기도할 동역자를 얻기 위해서, 악기 하나라도 함께 깨워서 같이 기도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을 다윗이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실컷 자고 일어나서, 잠이 더 오지 않아서 새벽에 깨어 비파와 수금을 연주하는 다윗의 모습이 아닙니다. 기도할 동역자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간절하고 절박한 상황을 다윗이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밤새도록 기도하다가 새벽을 맞이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새벽이 되어서 이제는 기도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이 처한 상황은 절박하고 간절하고 애가 타는 상황임에 틀림없습니다.
새벽의 가치
이때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것이 새벽 시간이었습니다. 새벽의 시간이라는 것은 흙으로 빚어진 우리 인간 존재에게는 가장 귀하고 가장 소중하며 중요한 시간입니다. 잠을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새벽 시간에 잠을 줄여가며, 새벽을 깨워가며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한다는 것은 여간 답답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아주 귀하고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간절하기 때문에, 지금 내 인생이 너무 애타기 때문에, 답답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이렇게 새벽 시간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일생에 두 번이나 이랬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86세에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이스마엘과 13년 동안 그는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99세에 사라가 아기를 가지고 100세에 이삭을 낳습니다. 이삭이 젖 뗄 때쯤 되어서 잔치할 때, 그때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라가 난리가 났습니다. 집에서 내쫓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기도가 되겠습니까? 가정에 분란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그런데 이미 이스마엘과는 정이 들 대로 깊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엎드려 기도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를 내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아브라함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고. '일찍 일어났다'는 뜻은 다윗이 여기서 기록한 그대로 '새벽을 깨웠다'는 표현입니다. 밤새도록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새도록 뜬눈으로 기도하고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보냅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그 후에 이삭을 금지옥엽처럼 아끼며 키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 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모리아 산에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이때도 그는 열심히, 간절히, 답답해서 기도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종들과 함께 사흘 길, 모리아 산길을 떠나갑니다. 그가 절박하고 간절했기 때문에 새벽을 열심히 깨웠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떠나고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서 첫 번째 만나는 성인 여리고를 만나기도 전에 그보다 더 큰 장애물을 만났는데, 바로 요단강이었습니다. 요단강이 곡식 벨 때라 창일하게 흘러 넘칩니다. 유속도 빠릅니다. 강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밤새도록 기도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성경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는 표현은 '새벽을 깨웠다'는 표현이며, '절박하게 밤새도록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새벽을 깨우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자리에 새벽을 깨우고 나와 있는 이유는 몸이 피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한가해서가 아니라,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새벽 시간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간절하고 절박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성소에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하시되 내가 기뻐하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시 108:7)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다윗에게 "내가 기뻐한다"고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정말 즐거워하시고 "내가 너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신 그 자리는 성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밤새도록 고민하고 엎드려 기도했던 그곳, 성소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다윗의 지금 현재의 관심, 현재의 고민은 전쟁터에 있지 않습니까? 적군과의 전쟁에서 져버렸습니다. 적군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몸소 느꼈습니다. 그가 이곳에서 기도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전쟁터에 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한다고 한 자리는 성소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음은 내 인생의 고민거리에 가 있습니다. 내 자녀가 고민이면 그에게 가 있고, 내 인생에 여러 가지 장애물이 고민이면 그곳에 내 고민이 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는 전쟁터가 아니라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새벽에 이 자리에서 기도하는 이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우리가 이루어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가 함께 채워드리면, 우리 인생의 문제는 덩달아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가끔 우리는 하나님과 엇나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소에서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했는데, 우리는 내 일터와 내 인생의 자리와 내 전쟁터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 사실 일은 그곳에서 일어나지만, 모든 문제 해결은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과의 은밀하고 깊은 교제의 자리, 이 성소의 자리를, 새벽에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기도의 자리를 소중하게 여기기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소중하게 올려드리면, 하나님은 다윗의 문제를 문제도 아니게 풀어주십니다.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 (시 108:9-10)
모압, 에돔, 블레셋 등등 전부 다윗의 고민거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것들은 아무런 고민거리도 문제도 아니라고, 너의 전쟁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인생에 여러 가지 걱정과 염려, 고민거리들이 있다 할지라도, 가장 소중한 이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를 성소에서 기뻐한다"고 말씀하실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간절함으로 새벽을 깨웁니다. 전쟁에서 실패한 다윗이 다급해서, 절박해서 비파와 수금이라도 함께 깨워서 기도하려고 새벽 시간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우리가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것은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이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성소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소에서 말씀하시고, 성소에서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전쟁터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성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은밀하고 깊은 교제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문제 해결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연으로 이 자리에 나와 있는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자리에 발걸음한 이유를 알고 계시니, 성소에서 말씀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내 관심은 나의 전쟁터에 있지만,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관심은 내 소중한 새벽을 드려 나온 성소에 있음을 깨닫고,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줄을 믿고 의지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