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9편

성경
시편5권

솔직한 기도

시편 109편

어린아이들은 참으로 이중적인 존재입니다. 한편으로는 귀찮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하며, 함께 있으면 한없이 불편하기도 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한없이 귀하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어린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 근심이 다 녹아 사라지고, 마음에 충만한 기쁨이 차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어린아이들을 보며 예뻐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마다 저마다 개인적인 차이가 조금씩 있을지라도, 가장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것은 어린아이들이 자기 감정에 솔직하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프면 울고, 배가 부르면 웃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사람을 속이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내 영혼도 맑아지고 나도 행복하고 즐거워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솔직하고 예뻤던 아이, 자기 감정과 생각에 솔직했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춘기를 맞이하고 성장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숨기기 시작합니다. 부모에게조차, 가장 사랑하는 친구에게조차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비밀이 생기고 자기만의 공간이 생깁니다. 그렇게 해서 부모에게서 멀어지면 부모는 서운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함의 능력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비결은 솔직하게 나아갈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감정과 생각과 의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는 분이신데, 하나님께 숨길 것이, 하나님 앞에 감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시편 109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입에 담지 않는 말을 하나님 앞에 쏟아냅니다. 있는 그대로 자기 감정을 다 아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감정, 다윗의 이런 모습을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시 109:2-3)

'그들'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은 다윗의 원수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자들이 다윗을 까닭 없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많은 일들이 아마 있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윗이 이 정도로 기록할 정도가 되면 그가 당했던 고통들과 아픔들, 수많은 부조리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까닭 없이 자신을 공격하는 원수들, 이것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나온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상황을 경험하면서 자기 감정을 아뢰기 전에 자기 의지를 먼저 표현합니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시 109:4)

'나는 기도할 뿐이라.' 다윗은 이런 원수들을 대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기도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참 대단한 다윗이로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원수들이 있어도 그가 기도하겠다고 말하니, 직접 원수를 갚겠다고 하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하는 다윗이 참 대견하고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충격적인 기도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의 내용은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시 109:6-7)

다윗이 이런 식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09편은 일명 '원수시편'이라고 불립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올려드린 시편 중에 상당수가 원수시편입니다. 즉 자신의 대적들, 원수로 지칭된 자들을 저주하는 시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시편은 그 정도와 강도가 아주 셉니다.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시 109:8-10)

아무리 미운 사람이 있어도 기도할 때 '빌어먹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미운 사람이 있어도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게 하시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은 곧 원수를 하나님의 손으로 죽여 주십시오 하는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다윗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시 109:11-12)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정, 마음에 일어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다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계속해서 원수를 향한 저주의 기도는 이어집니다.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시 109:19)

6절에서 시작해서 19절까지가 하나하나가 다 원수를 향한 저주의 기도입니다.

기도의 까닭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기도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시 109:22)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지금 다윗은 왕이 되고 난 이후에 이 시편을 기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힘이 없으니, 내가 능력이 없으니, 내 손에 힘이 없고 내 팔의 능력이 없으니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들이 자신을 향하여 달려오는데 갚을 길이 없습니다. 힘이 없고 연약하니 원수를 갚아 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시편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가집니까. '다윗이야말로 참 이중적이구나.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다윗을 오해한 것입니다.

적어도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털어놓을지라도 뒤로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이 감정을 털어놓고 자기 감정의 미움을 해소한 이후에 원수를 직접 자기 손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울을 직접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 감정을 하나님 앞에서 건강하게 해소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치유

기도라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얽히고설킨 복잡한 감정들,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들, 내 삶을 향한 저주들, 이 다양하고 복잡한 마음들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감정적으로 해소하는 작업입니다. 하나님 앞에 털어놓지 않으면 누구에게 털어놓겠습니까.

정말 저 사람을 내가 죽이고 싶도록 미운데, 내 인생을 이렇게 망쳐 버린 저 사람을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데, 정말 그 죽이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실행에 옮기기 전에 하나님 앞에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이 깨끗하고 담백했던 것입니다.

부디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만은 솔직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만은 우리 감정을 어떤 일에 있어서도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야 우리 삶이 가벼워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닌 척하고, 있는 척하고, 경건한 척하고, 깨끗한 척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돌아서서는 우리 삶이 무겁고 우리 삶이 비참하며,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뒤에서 나쁜 짓을 하는 것, 이것이 더 나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의 인생이 가난하고 궁핍해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의 마지막 기도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시 109:30)

결국 그의 마지막 기도는 감사요 찬송이었습니다.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털어내고 나니 하나님을 향해서 남는 것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감사와 찬송이었습니다. 부디 오늘 우리의 하루가 감사와 찬송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 속이지 말고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토로하고 털어버리고 나면, 마음속에 다시 새롭게 솟아나는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감사와 찬송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생각들, 복잡한 생각들을 다 걷어내시기 바랍니다.

공적 예배의 노래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 시편의 표제어입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훗날 이 다윗의 시편이 공적 예배에서, 대중 예배에서 회중 찬송으로 불렸다는 뜻입니다. 인도자가 있고 지휘자가 있으며, 앞에서 매기는 노래가 있고 회중들이 이 노래를 받아서 함께 불렀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읽으면서 경악했던 다윗의 저주시편이 회중 예배 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 때 함께 불렸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윗의 이 감정에 공감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속이지 말고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다 가지고 나오라는 뜻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투명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는 솔직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감정에 솔직해서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시고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 앞에서 숨기고 감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경건한 척, 깨끗한 척하지 말고 솔직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를 통해 감정을 해소해야 합니다.

다윗은 원수를 향한 저주의 감정을 하나님께 솔직히 털어놓음으로써 건강하게 해소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마음속의 복잡한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서 감정적으로 해소하는 거룩한 작업입니다.

셋째는 솔직한 기도 끝에 감사와 찬송이 남습니다.

다윗의 저주시편도 마지막에는 감사와 찬송으로 끝났습니다.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털어내고 나니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이 새롭게 솟아났습니다. 속이지 말고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기도하면, 마음속에 다시 새롭게 솟아나는 것은 오직 감사와 찬송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올려드리는 모든 기도에 주께서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감정을 다 털어버리고 치유받으며, 새롭게 회복된 마음으로 세상에 나가서 실제로 원수를 갚지 않고 그들을 품어 안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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