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편

성경
시편1권

하나님의 때

시편 10편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에는 절대악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먹이사슬로 정교하게 연결된 생태계에서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는 야생동물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야생동물들을 제거하기 시작하여 그들의 개체 수를 급격하게 줄여버리면, 생태계 교란이 발생합니다. 그때 어떤 재앙이 벌어질지 우리는 그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백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산천에는 곰도, 호랑이도, 늑대도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이들의 개체 수가 급감하고 멸종되며 사라지면서, 먹이사슬의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 멧돼지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천적이 사라지자 멧돼지가 거침없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등산객들을 위협하며, 이제는 도심의 도로 위까지 내려오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에게 위협을 준다는 이유로 천적을 제거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지 못한 인간의 짧은 안목이 빚어낸 비극입니다. 이것은 야생 생태계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인간사의 모든 영역에서 반복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시각이 좁고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면, 하나님께 속히 제거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악한 사람들도 제거해 달라고, 악도 근절시켜 달라고, 하나님의 정의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은 언제나 얽히고설켜 있으며,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구조되어 있습니다.

멀리 계신 하나님

오늘 이 시편은 탄원시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정의 문제를 가지고 가슴 절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 10:1)

다윗이 하나님께 "어찌하여"라고 묻는 이유는,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하나님, 심지어 숨어 계시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멀리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숨어 계셔서 보이지 않으시고 얼굴을 나타내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절박하게 질문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시는 것처럼, 다윗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직접 개입해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바로 악인들 때문입니다.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 10:2-4)

악인들이 구체적으로 다윗의 삶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이 사회를 얼마나 무참히 유린하고 있는지를 이렇게 낱낱이 고발합니다. 악인의 해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마지막에는 악인들이 하나님을 없다고까지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에도 개입하지 않으십니까? 이래도 멀리 계시고 숨어 계실 작정이십니까? 악인이 이렇게 거침없이 활개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냥 두고만 보시렵니까? 다윗이 몹시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절절히 호소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시자, 다윗은 스스로 중간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시 10:5)

여기서 '그'는 악인들을 가리킵니다. 악인들의 길은 견고하고 높은 곳에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은 그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제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악인들의 길은 너무나 높은 곳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은 그곳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판단해도 괜찮은 것입니까? 악인의 길이 이토록 형통해도 되는 것입니까?" 억울해서, 분해서, 답답해서 견딜 수 없는 다윗의 심정을 이렇게 시로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마음을 놓지 않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시 10:12)

"일어나옵소서, 손을 드옵소서." 마치 깊이 잠드신 하나님을 깨우는 것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께서 속히 일어나서 개입해 주시기를, 자신의 인생에 직접 일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이 이토록 절박하게 외치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개입하지 않으시는가? 우리도 다윗처럼 답답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내 인생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내 주변에 있는 악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시기를 구하고 간절하게 기대하는데,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몹시 답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다윗과 같은 심정으로 외칩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시는가? 우리도 다윗과 같은 마음으로 질문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를 깊이 묵상해 봐야 합니다.

첫째로, 다윗이나 우리나 하나님을 충분히 크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근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볼 때는,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천 년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하루와 같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넓게 하나님의 역사를 조망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정의로우신 분이셨고, 하나님은 분명히 반드시 악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백삼십 년 동안 이집트에서 혹독한 종살이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백삼십 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이집트를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시고 다루셨습니다. 당대의 막강한 제국들이 아닙니까? 그 당시에 그 제국의 지배 아래서 피지배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이 악한 세력들을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여러 세대가 흐른 뒤에야 그 제국은 사라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로마 제국의 강력하고 잔혹한 통치를 우리는 역사 기록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콜로세움에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참혹하게 죽였습니다. 그들은 그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시간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서야 제국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나치도 마찬가지이고,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 움직이시고, 하나님은 정의를 반드시 세우셨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절박하게 호소하는 까닭은, 우리 인생이 시간의 한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렇습니다. 통쾌함을 느끼고 싶지 않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 저 악인이 심판받아야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속이 시원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는 나의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상황을 경험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정의까지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를 깊이 살펴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정의로우셨습니다. 역사의 심판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악한 민족과 악한 나라를 결코 가만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결코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심판을 온전히 맡겨 보는 지혜를 가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긍휼의 기다림

두 번째로, 우리가 이런 상황을 통해서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악인들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도 하나님 앞에 돌이켜 오기를 인내하며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심판을 내리실 때, 노아에게 방주를 짓는 기간으로 무려 백이십 년이나 허락하셨습니다. 백이십 년이 지나면 방주의 문을 닫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문을 닫기 직전에 칠 일 동안을 또다시 기다리셨습니다. 악인들을 심판하시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돌이켜 올까 하여, 하나님은 인내하며 기다리시고 또 참아주신 것입니다.

니느웨 성의 심판을 철회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간절히 중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오십 명의 의인에서 십 명의 의인까지 기준을 낮추어 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심판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도 최대한 그 시간을 멈추고 늦추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하나님도 악에 대해서 정의를 속히 세우고 싶어 하시는 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악한 자 하나라도 더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극진한 긍휼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심판 지연을 통해서 깊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복잡한 세상

세 번째로, 세상의 악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제거될 수 없다는 엄중한 사실도 우리는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욥도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절절히 호소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정의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대답하시면서, 악을 그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하게만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악을 제거해 버리면 또 다른 악이 맹렬히 기승을 부립니다.

우리나라 역사가 생생히 증명하지 않습니까? 일본 제국주의가 멸망하고 나니 공산주의가 출현했습니다. 이 땅에 평화의 낙원이 펼쳐질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더욱 가혹한 악이 찾아온 것을 우리는 뼈아프게 알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악한 자를 제거한다는 것은, 그 악한 자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어머니라는 복잡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 악을 제거하실 그 시간이 도래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알아서 해결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 대해서 하나님의 정의를 결단코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 세상을,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분명히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완성하실 것이라는 이 믿음, 이 확신 하나만 굳게 붙들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시간을 신뢰하며 인내로 기다립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악한 자들 때문에 분노가 치밀고, 때로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그분의 깊은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걸려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고, 마치 멀리 계신 것처럼, 숨어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을 쏟아냈던 다윗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시다는 확고한 진리를 다시 붙듭니다. 역사를 살피고 시간의 흐름을 돌아보아도, 하나님은 언제나 정의로우시고 공의로우셔서 그 악한 자들을 분명히 반드시 심판하셨음을 확인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긍휼을 본받아 살아갑니다. 악인까지도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을 깊이 새깁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긍휼과 사랑이 넘치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세상은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망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악을 제거하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우리도 넓은 마음과 깊은 이해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때를 소망하며 신실하게 인내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풍성히 복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가운데 힘차고 밝은 인생을 살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잡하게 얽힌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의 정의가 반드시 온전히 실현될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icon
핵심 주제
icon
제목

날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