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1편

성경
시편5권

여호와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

시편 111편

과거 유교 사회에서 부모의 역할을 단적으로 정의하는 말이 있었으니, 바로 '엄부자모(嚴父慈母)'입니다.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뜻으로, 비단 옛 유교 사회뿐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엄하여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고, 어머니는 부드럽고 편안하며 항상 곁에 계신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여 요즘의 부모상은 '자부자모(慈父慈母)'에 가깝습니다. 아버지도 자애롭고 어머니도 자애롭습니다. 자녀가 잘못해도 회초리를 드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심하게 꾸짖는 것마저 금기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자녀가 완벽하게 성장한다면 어떤 양육 방식이든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에서 자녀들은 늘 통제 밖으로 넘어가려 하고 좌충우돌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자부자모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인간을 어떻게 다스리고 계십니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살펴보면 놀라운 면이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인간의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 증언하며, 그 질투와 함께 나오는 표현이 '소멸하는 불'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하나님 아버지는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 주시기도 합니다.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인내로 기다려 주십니다. 때로는 진노하시고 질투하시며, 때로는 자비롭게 모든 일을 품어주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시편 111편은 바로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모시고 섬겨야 하는지, 하나님을 대하는 인간의 바른 태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조주를 인정하는 경외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시 111:5)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식을 주신다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책임지신다는 의미입니다. 곧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돌보시고 책임지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경외란 무엇입니까? 사전적으로 경외는 '두려워함'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대체로 부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공포심이나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두려움은 분명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런 공포심이나 부정적 감정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주권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대자연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며 하나의 점도 되지 않는 존재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때 느끼는 경이로운 두려움이 바로 경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말은 하지만, 정말로 이 광활한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진심으로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온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비추어 나를 보면,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뿐입니다. 시간의 역사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를 펼쳐놓고 보면, 우리가 사는 백 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은 점 하나도 찍을 수 없을 만큼 미미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합니다. 시간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운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창조주로 고백한다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경외감을 가지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입으로만 하나님이 창조주시라고 고백하면서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행동으로는 다른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책임지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을 창조주요 아버지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왜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겠습니까?

오늘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책임지시기를 원하신다면,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기를 원하신다면,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신다면, 먼저 하나님의 창조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를 지으시고 온 세상 만물을 지으시며, 사랑하는 자녀까지도 하나님이 지으셨고 그 자녀는 결코 내 소유가 아님을 인정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혜로운 분별력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시 111:10)

이제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인정하고 경외감을 가지면, 이것이 곧 지혜라는 것입니다.

지혜란 무엇입니까? 지식과 지혜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지식은 책을 통해 배울 수 있고, 학교에서 선생님을 통해 쌓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같은 지식정보 사회에서는 인터넷과 각종 매체를 통해 얼마든지 지식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전혀 다릅니다. 지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분별력'입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 그중에서도 선한 것 가운데 가장 선한 것,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가 됩니까?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그의 판단과 분별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앞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모든 분별과 판단을 자기 좋을 대로 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롯이 선택의 순간에 서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돌아온 후 두 사람의 재산이 날로 불어나자 함께 동거할 수 없어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때 롯의 선택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는 소돔 땅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지 않고, 자기 눈에 좋은 대로 분별한 것입니다. 롯의 분별은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곳을 택하는 것, 그것을 어찌 지혜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에 그런 선택을 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 사람들의 선택을 보면, 그가 진정한 신앙인인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인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지혜의 선택을 합니다. 선과 악 중에 선을 선택하고, 선한 것 중에서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지극히 선한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을 잘못했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과 경외감이 있기에, 선택 앞에서 늘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안정을 이루었을 때, 그는 사울 왕가의 남은 자들을 찾았습니다. 사울 왕가의 남자들이 거의 몰살당한 가운데 한 아이가 살아남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었습니다. 왕 앞에 세워진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모두 절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맺은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네 후손들을 내가 책임지겠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복권시키고,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게 했으며, 사울이 소유했던 땅과 재산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몰락한 왕가의 자손을 거두어 복권시키는 것은 훗날 화근이 된다며, 얼른 그의 목을 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의 분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했기에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선한 것 중에 가장 선한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창조주권을 인정하는 경외함을 가져야 합니다. 광활한 우주를 창조하시고 시간을 운행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 창조주 하나님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은 친히 책임져 주십니다.

둘째는 경외함으로 지혜로운 분별력을 갖춥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롯은 자기중심적인 최악의 선택을 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했던 아브라함과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선의 선택을 했습니다. 매 순간 선택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임하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됩니다.

셋째는 삶의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 경외함을 지속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일시적인 결단이 아니라 평생의 자세입니다.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칭찬받을 것인가 책망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신중히 결정할 때, 우리 인생은 가장 선한 길로 인도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외의 삶이 우리 생을 마치는 그날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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