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과 같이 되다
시편 115편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과 신뢰를 준 사람에게는 상을 내리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벌을 내린다는 뜻입니다.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원리인데, 이 신상필벌이 제대로 작동하는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요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당연하고 간단한 원칙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땅히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상은커녕 오히려 벌을 받는가 하면, 분명히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 이리저리 빠져나가거나 도리어 상을 가로채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한다 해도 화가 나고 몹시 불쾌한데,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상을 누군가 가로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아마 그런 공동체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사람의 교만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십계명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금하시는 말씀을 여러 경로와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 곧 내가 우상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우상 숭배입니다.
영광을 가로채다
오늘 시편 115편은 바로 이 우상 숭배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시 115:1)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말을 두 번이나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 영광 받으시옵소서. 이 말은 곧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영광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니 하나님께서만 영광 받으시고,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중간에서 가로채지 않겠다는 결단의 선언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다 보면,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내가 가로채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서 내가 그 영광을 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주변 사람들이 사정을 잘 모르고 나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대단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잘 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는 칭찬을 듣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의 자아는 자리에서 사라지고 하나님만 높여드려야 마땅한데, 어느새 은근히 그 자리에서 즐기고 영광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우상이 되는 것이며,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사사시대의 기드온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기드온은 정말 연약한 자 중에 연약한 사람이었고,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찾아와 큰 용사라 부르시고 미디안과 싸우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정말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주셨습니다. 삼백 명의 용사를 거느렸지만 그들 손에 든 무기라고는 칼도 창도 활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셔서 미디안을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기드온에게 열광했고, 그를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기드온은 "나는 왕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나와 내 후손들은 왕이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사양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백성들에게 금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금을 모아 에봇을 만들었는데,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입니다. 그것을 자기 고향 집에 걸어 두었습니다. 기드온이 세상을 떠난 후에 사람들이 찾아와 그 금 에봇에게 절하며 음란하게 섬겼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한 일이라고 착각하는 것, 이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요, 내가 곧 우상이 되는 길입니다. 우상 숭배는 나쁘다고 말하면서 정작 내가 우상 숭배받는 자리에 서고, 내가 우상이 되어 경배받고 숭배받는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들,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게 되는 일을 경계해야 할 사람들이 목회자요 중직자들입니다. 자칫하면 그들이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상의 민낯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시 115:4)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출애굽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니 바알과 아세라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출애굽 2세대들은 모두 광야 40년 여정 가운데 태어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기 조상들, 자기 부모 세대가 섬겼던 애굽의 우상들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한 하나님만 섬기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경의 신을 만났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소개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 부자가 되고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기자는 선언합니다. 세상의 모든 우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아무리 무섭게 보이고 아무리 크고 견고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모든 것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상의 실체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시 115:5-7)
눈, 코, 입, 귀가 있어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의지하는 대상의 처참한 실체입니다.
우상과 같이 되다
그런데 정말 두렵고 무서운 말씀이 이어집니다.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 115:8)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와 같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이 있어도 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가장 열심히, 가장 특별하게 섬겼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아합과 이세벨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과 왕비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대단히 부흥했던 때의 왕과 왕비였습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은 바알 중독자들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 시절에 하나님께서 선물처럼 보내주신 선지자가 계셨으니, 바로 엘리야입니다. 구약 역사 가운데 가장 특별하고 탁월했던 선지자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알에게 중독되어 있던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야 선지자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설교를 그토록 많이 들어도, 그토록 많은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그들은 듣지 못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선지자들과 대결하지 않았습니까?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다" 하고 그들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은 직접 보았습니다. 그런데 눈이 있어서 보았는데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의 손이 있어도 그 손으로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쌓지 못하고, 그 손으로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목구멍이 있고 입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상 숭배자가 되든지, 내가 우상이 되든지 하면 바로 이렇게 됩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내 마음이 물질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라면 하나님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내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마음에 섬기고 있으면 하나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기적을 아무리 보아도 눈이 가리워져 보지 못하는, 우상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얼마나 치명적이고 무서운 일입니까?
결론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시 115:17)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의 목숨이 끊어진 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을 섬겨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왜 찬양하지 못합니까? 입이 있고 목구멍이 있어도 우상과 똑같이 되어 소리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는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중간에서 취하는 것은 내가 우상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기드온처럼 처음에는 겸손했다가도 결국 에봇을 만들어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둘째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은 내가 곧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자아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가장 심각한 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나의 자아가 꺾이고 오직 그 중심에 하나님만 계셔야 합니다.
셋째는 살아있는 믿음의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우상과 같이 되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 사망자가 됩니다. 아합과 이세벨처럼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불행한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는 생명으로 서서, 찬양하고 경배하는 산 자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