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7편

성경
시편5권

인자와 진실

시편 117편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소개를 할 때 MBTI 성격 유형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16가지 성격 유형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하나를 소개하는 것인데, 이 MBTI는 8가지 상반된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외향적인가 내향적인가, 직관적인가 감각적인가, 이성적인가 감성적인가, 판단형인가 인식형인가 하는 것들입니다. 이를 조합하면 16가지 성격 유형이 도출됩니다.

물론 이 결과가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며,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성격 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외향적이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내향적일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한쪽이 강하거나 양쪽이 섞여 있을 뿐입니다. 완벽하게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감성적인 사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MBTI는 자신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격 유형은 어떠하실까요? 만약 하나님을 MBTI로 분류한다면, 어느 유형에 속하실까요?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성격 유형을 판단하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히 이성적이시면서 완전히 감성적인 분이시고, 완전히 외향적이시면서 완전히 내향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러한 면모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스케일이 크신 분이시면서 동시에 극히 섬세하고 디테일에 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품어 안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진노하시면 소멸하는 불처럼 모든 것을 태워버리시는 무서운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17편에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시편은 성경에서 가장 짧은 본문으로 단 2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만국의 하나님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시 117:1)

시편 기자는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을 향해 여호와를 찬양하고 찬송하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블레셋, 모압, 암몬, 이집트 백성들을 비롯하여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을 포괄하는 표현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고 올 모든 시대의 나라와 백성들까지 함께 아우르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구약의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만을 선택하시고 사랑하셨던 분, 오직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약 시대부터 신약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의 아버지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당시를 돌아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 그들 가운데는 이스라엘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애굽에 거하던 다른 민족들도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면 그들의 장자가 그날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집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던 자들은 국적과 민족에 관계없이 모두 자녀의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출애굽 때 함께 나왔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나라의 하나님이심이 분명해집니다.

요나서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당시 앗시리아는 북이스라엘에게 적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셨고,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후에 그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선포하라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모두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심판을 철회하셨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 하나님 나라가 이스라엘 땅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전 세계 열방까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에게까지 확장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오심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하실 때, 그 '세상'은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과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열방과 민족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미치는 온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시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나 한 사람만이 아니라, 내 가족만이 아니라, 온 세상 열방을 포함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만 먹고 배부르다고 만족하고 끝내서는 안 됩니다. 굶주리는 사람, 가난한 사람, 여전히 약자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까지 기억하고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기도할 때, 기도의 지경이 깊어지고 넓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언제나 나 자신만을 위하여, 내 자녀만을 위하여, 우리 가정만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치지 말고, 교회까지, 세상까지, 나라와 민족까지, 온 세계 열방까지 기도의 지경이 확장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을 지금 이 순간에도 통치하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헤세드와 에메트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시 117:2)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노래합니다. '인자하심'의 히브리어는 '헤세드'이고, '진실하심'은 '에메트'입니다. 헤세드, 곧 인자는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영원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연약한 자의 부르짖음을 기다려 주시고, 허물을 견뎌 주시며, 품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인자함'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반면 '진실하심' 에메트는 확고한 진리를 의미합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변함없는 진리, 그것이 바로 에메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공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성품이 어떻게 하나로 조화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이 가장 완벽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이기에, 인간이 멸망당하는 것을 차마 보고 계실 수 없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간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죄지은 인간을 반드시 심판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딜레마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노를 쏟아부으심으로 해결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간을 향한 죄의 진노를 모두 쏟아내시고, 그 아들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모든 인간을 구원으로 초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하심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던 문제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된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신약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노아 홍수 사건을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는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신 무서운 심판의 하나님만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셨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 명하시고 무려 120년 동안 기다리셨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 자체가 복음 전파였고, 믿지 않는 자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시간이었습니다. 120년이 지나 방주가 완성되고 노아의 가족 8명이 방주에 오른 후에도, 하나님은 또 일주일을 더 기다리셨습니다. 혹시 돌아오는 자가 있지 않을까 하여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타지 않았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기다림이 하나님의 인자요 사랑입니다. 끝내 돌아오는 자가 없자, 하나님은 마침내 심판하셨습니다. 이 심판이 하나님의 공의요, 정의요, 진실하심 에메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여리고 성 전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칼이나 창 같은 무기로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한 바퀴씩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그 시간은 여리고 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회개와 돌이킴의 기회였습니다. 매일 한 바퀴씩 돌며 7일 동안 그들을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이키지도,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심판의 시간이 도래한 것입니다.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심판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언제나 오랫동안 참으시고 오랫동안 기다려 주십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헤세드, 인자하심의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진실하심 에메트, 정의의 시간이 반드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그 은혜의 시간 안에 하나님께 돌이키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와 진실하심이 때로는 심판으로, 책망으로, 날선 검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하심, 이 양날의 검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기억하며 오늘도 그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의 지경을 넓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의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도 나 자신과 내 가정을 넘어 교회, 민족, 열방까지 확장되어야 합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자들, 북녘 땅의 동포들, 가난으로 고통받는 미지의 세계의 사람들까지 품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오래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인자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정의와 심판의 시간이 반드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때에 속히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충돌하는 딜레마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자녀로서, 오늘도 그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그날까지, 우리도 하나님의 크신 인자와 영원한 진실하심을 노래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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