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8편

성경
시편5권

예배의 기쁨

시편 118편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어떤 이들은 경기장에 직접 찾아가 현장의 열기 속에서 관람하는 것을 선호하고, 또 어떤 이들은 집에서 편안하게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시청하는 것을 즐깁니다.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보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결과만 하이라이트로 확인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운동 경기를 진정으로 깊이 있게 경험하려면 집에서 화면을 통해 보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관람하는 것이 훨씬 더 생동감 넘치고 실감 나는 법입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면 그 기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설령 응원하는 팀이 패배하더라도 선수들의 안타까움을 함께 공유하며 느낄 수 있어서 현장 관람이 훨씬 더 역동적인 경험이 됩니다. 기껏해야 운동 경기조차도 현장에서 보는 것이 훨씬 더 좋은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우리는 코로나 상황을 모두 지나왔습니다. 그러한 특수한 상황에서 피치 못하게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거나, 몸이 불편하여 움직일 수 없어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장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온 마음을 다해 찬양하며 말씀을 듣는 것은 성도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에도 하나님의 자녀들, 성도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의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현장에서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는 그 벅찬 기쁨을 시인은 찬양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소리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시 118:15)

이 말씀에서 '의인들'이라고 표현된 이들은 행위가 의로운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예배자들을 지칭합니다. 그러므로 '의인들의 장막'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들이 모여 예배를 올려드리는 공간, 곧 성전을 의미합니다. 즉 의인들의 장막인 성전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들이 모인 공동체에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쁜 소리, 찬양의 소리가 넘쳐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이 공간,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처소에는 항상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구원의 소리가 가득 차고 넘쳐나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공동체에는 늘 기뻐하는 소리와 구원을 찬양하는 행복한 소리가 가득해야 마땅한데, 그와 반대로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와 똑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구원의 소리와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렸던 때는 홍해를 건넜을 때까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그들이 마른 땅처럼 건넌 후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들고 먼저 노래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모든 여인들이 뛰어나와 하나님 앞에서 노래하며 구원의 기쁜 소리로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본격적인 광야 길이 시작되자, 내리쬐는 태양과 배고픔과 목마름을 그들은 견디지 못하고 원망하며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구원받은 공동체였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공동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원망과 불평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기쁨의 소리와 구원의 소리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질되고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백성들, 함께 예배드리는 의인의 장막에는 나의 상황과 상관없이, 내 형편과 상관없이,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구원과 기쁨의 노랫소리가 가득 차고 넘쳐야 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시간이 흐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은혜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동체로 모여서도 원망과 불평이 우리 입에 항상 가득 차 있게 됩니다. 부디 우리가 모여 있는 이 예배 공동체에서는 구원의 소리와 찬양과 기쁨의 소리가 항상 가득 차고 충만하게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머릿돌의 역전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시 118:22)

이 말씀은 우리 예수님께서도 복음서에서 직접 인용하신 구절입니다. 시인이 예배드리러 나온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이 예배의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보니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건축자가 쓸모없다고 해서 버린 돌처럼 보잘것없고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손이 붙들어 주시고, 들어 올려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하나님 성전의 머릿돌이 되게 해 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람들이 볼 때는 보잘것없고 모자라고 연약한 사람들이며, 건축자의 손에도 들려지지 못하고 버림받은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붙드셔서 쓸모 있다 하시고, 귀하다 하시고,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며, 하나님 성전의 머릿돌이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비록 나는 연약하고 부족해도 주 안에 나오면 항상 기쁨이 넘치고 감격이 넘치게 됩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제하고 괴롭히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잡고 살아가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드온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소심한 인물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었지만, 앞에 나설 수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밀 농사를 지어서, 그것도 미디안 사람들 눈에 띄면 빼앗길까 봐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며 조금씩 조금씩 먹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가서 그를 큰 용사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볼 때는 인정하지 않는 버린 돌과 같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고 언제나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예배를 기뻐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큰 용사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는 건축자의 버린 돌과 같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 성전의 머릿돌 같은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살펴보면, 연약하고 부족하고 약하며 천대받는 교회였습니다.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가운데서도 가장 연약하고 재정도 열악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잘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지 않고 지켰던 교회였고, 하나님 말씀을 인내로 지켜냈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서는 책망하신 적이 없으시며, 오히려 그 교회를 칭찬하실 때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같이 여기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배는 이러한 인생 역전의 기회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 잘 드리는 자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아뢰는 자들을, 하나님은 성전의 머릿돌과 같이 삼으시고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심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시 118:23)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이 일이 얼마나 놀랍게 보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셨으니 그렇다고 고백하지만, 사람들이 볼 때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어떻게 머릿돌이 될 수 있겠느냐고 의아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일을 분명히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귀한 역사가 예배드리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꼭 붙들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시 118:24)

'이 날', 곧 성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성일, 즉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날에 나와서 예배드려야지, 내가 정한 날에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예배드려야지, 내가 기뻐하는 방식대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배의 타락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여오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예배드리는 것이야말로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사람 중심의 예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인본주의라고 부릅니다. 예배는, 특히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는, 모든 것이 내가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불편하거나 마음에 조금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지점에서부터 순종이 일어나고, 그 지점에서부터 예배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과 호흡하는 것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 공동체에서 기쁨과 찬양이 넘쳐야 합니다.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의인의 장막에는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고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만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항상 기쁨과 찬양이 가득 차고 넘쳐야 합니다. 환경과 상황은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할지라도,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기쁨과 감사, 큰 은총과 열매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버린 돌을 머릿돌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건축자가 버린 돌처럼 여기저기 나뒹구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드리는 우리를 하나님은 성전의 머릿돌 되게 하시고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 성전에서 귀하게 쓰임 받아서 하나님의 손에 붙잡힘을 받을 때, 그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날과 방식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가 기뻐하는 대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에 우리가 맞추어 가야 합니다.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거기서부터 순종이 시작되고, 거기서부터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얼마나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며 사랑하시는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자가 누리는 복을 우리가 사모하며, 그 복을 받아 누리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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