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편

성경
시편1권

순결한 말씀

시편 12편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가장 특별한 선물 중 하나를 허락하셨습니다. 바로 의사소통의 능력입니다. 말과 글, 그리고 다양한 행동으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신 이 능력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의 탁월한 은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그 창조의 말씀이 지닌 능력을 덧입혀 우리 인간에게 당신의 형상을 허락하시며 말의 힘과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면서도 말의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말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으며 글을 쓸 수도 없고 서로 의사를 소통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말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닮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고 하나님과 가장 닮은 것이 말씀이라면, 우리 인간의 모든 언어생활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닮아 있어야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고 속임이 없으며 앞과 뒤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 말씀은 변함없이 영롱하게 빛을 발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말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너무나 심하게 빗나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변하며 기분에 따라 요동합니다. 화가 치밀면 저주하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고, 기분이 좋으면 삼가야 할 말도 함부로 흘려버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어와 우리 인간의 언어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두 마음의 말

오늘 말씀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말 때문에, 그 혀놀림 때문에 깊이 상처받고 고통하는 다윗의 절절한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시 12:1)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읽으면 경건한 자, 충실한 자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윗이 깊은 실망감을 담아 비꼬는 표현입니다. 경건한 줄로만 알았는데, 충실한 줄로만 여겼는데, 제법 괜찮은 사람인 줄로만 믿었는데,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경건하지도 않았고 하나님 앞에 충실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그것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고 그 사람에게 깊이 실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절규 섞인 고백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시 12:2)

2절에서 말하는 그들은 바로 다윗이 경건하다고 여겼던 자들, 충실하다고 믿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너무 많아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일들을 수없이 겪고 경험해온 까닭에 이제는 더 이상 놀라지도 않을 만큼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들이 두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경험하고 그 말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한동안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고 무너져 내리는 마음 때문에 힘겨워서 다시 일어서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지극히 선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성전 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듯 행세하나, 그러나 세상살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아첨하는 입술로 비위를 맞추나, 그러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거칠게 짓밟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한 사람들, 두 마음을 품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지금까지 경건하다고 여겼고 충실하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일을 경험하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 오직 하나님께 가지고 나오지 않습니까? "하나님, 속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시금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며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옵니다."

혀의 교만

그런데 여기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정체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오히려 더욱 뻔뻔하게 나섭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시 12:4)

"우리의 혀가 이길 것이다." 그들이 이제는 이렇게 대놓고 뻔뻔하게 선언합니다. 이들이 이토록 뻔뻔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혀가 이길 것이라고 공공연히 자랑할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제재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오면서 그들은 성공했다고 굳게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아첨하는 입술로 윗사람에게 교묘히 잘 보여서 승승장구했을 것이고, 짓밟는 말로 아랫사람을 무자비하게 억눌러서 그들의 것을 착복하고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부를 축적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방식, 그러한 방법으로 해서 단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껏 이렇게 살아온 대로, 우리의 혀가 반드시 이길 것이다. 아무리 너희가 나에게 이런 말, 저런 말을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결국 내 혀가 너를 이기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렇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들을 그냥 가만히 두고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결단코 이들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러한 일을 수없이 많이 목격합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앞과 뒤가 다른 자들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추격하셔서 엄중히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를 때 아간이라는 사람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리고성 전투에서, 가나안 땅의 첫 번째 성을 취하는 전투에서 모든 전리품들을 하나님의 창고에 가져오라고 명령하셨지만, 아간은 이를 어기고 숨겼습니다. 외투와 은과 금을 감춰두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끝내 찾아내셨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사람에게는 두 말을 해서 사람은 기만할 수 있어도, 하나님만큼은 결코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들 역시 성령을 기만하고 하나님을 속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하나님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끝까지 거짓을 말하고 앞과 뒤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말을 일삼는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처절하게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그들이 형통하는 것 같고 거침없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만큼은 결코 가만히 두고 보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응답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입술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사람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표리가 일치해야 합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투명하고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정직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깊이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도 이러한 사람들 때문에 때로는 깊이 상처받고 고통받고 있지만, 사실 나 자신의 입술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시 12:5)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이렇게 공언하는 자들, 그렇게 거짓을 말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들, 이러한 악한 자들에게서 억눌림당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안전지대에 두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가지고 간절히 탄원하는 다윗에게 깊은 감동을 주시고 확실한 말씀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번 입에서 나오면 결코 변하는 법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되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굳게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전히 의심하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렇게 확증해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 12:6)

흙 도가니에서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연단하고 단련하고 정제하면 불순물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불순물이 철저히 제거되고 깨끗이 사라진 순은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되었다는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이 완전히 깨끗하고 순결하다는 뜻인데, 우리 인간의 말과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사람의 말은 이렇게 순결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거짓이 많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그 안에 자기 욕심이 도사리고 있고 온갖 권모술수가 교묘히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말이 언제 순결해집니까? 연단받을 때, 고난받을 때, 도가니 불에 담금질당할 때, 바로 그때 사람의 말도 순결해집니다. 사람의 말이 고난을 오래 겪고 또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겪을수록 사람의 그 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더 닮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고난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닮는 자들입니다.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고 난 뒤에야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의 언어 습관을 고치고 말을 바로잡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심히 미련한 것 아니겠습니까? 고난이 찾아오기 전에 단련받고 하나님께 정제받기 전에, 바로 지금 우리의 언어 습관을 하나님의 말씀을 닮아가도록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사람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 습관이,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순전하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가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아야 합니다. 알고 보니 경건한 자가 아니었고 경험하고 보니 충실한 자가 아니었다는 이러한 깊은 실망감을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안겨주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는 고난이 찾아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닮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말이 고난을 오래 겪고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겪을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더 닮아갑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고난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닮는 자들입니다.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고 난 뒤에야 비로소 우리의 언어 습관을 고치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미련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눈동자같이 살피시고 보호하시는 가운데, 우리가 주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하고 순결한 자로 바르게 서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공언하는 거짓된 자들의 선동에 결코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 한 절 한 절을 굳게 붙잡고 오직 그 말씀으로 이겨내고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며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불순물이 완전히 제거된 순은과 같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굳게 붙잡고 투명하고 순결한 말로 그러한 언어생활을 해나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일가친지들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인간관계들을 경험하게 되는 이 기간에,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닮아서 투명하고 순결한 언어생활을 이루어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나게 되는 일가친지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며 아름답게 나타내고 드러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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