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편

성경
시편1권

하나님의 시간표

시편 13편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과밀학급 문제로 인해 2부제 수업이 일상이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한 교실에 60명이 훌쩍 넘는 학생들이 빼곡히 자리했고, 매주 오전반과 오후반이 교차하는 시간표를 확인하며 가방을 꾸리는 일은 어린 학생들에게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아무리 꼼꼼히 시간표를 확인하고 챙겨간다 해도, 오전반과 오후반 시간표를 혼동하여 엉뚱한 책을 가져가는 실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의 질책을 감수해야 했고, 종일토록 짝과 함께 책을 나누어 보는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학생들의 시간표가 어긋났을 때는 그저 선생님께 한 번 꾸중을 듣고 하루를 불편하게 보내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마저도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품고 계신 시간표와 우리가 손에 쥔 시간표가 서로 어긋날 때, 그때는 훨씬 더 본질적이고 깊은 문제가 우리 앞에 놓입니다. 이러한 간극을 우리는 어떻게 메워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간표에 맞춰주실까요,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표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진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불일치할 때, 그가 통과해야 했던 갈등과 고뇌, 그리고 그 실존적 괴리를 해결하는 지혜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탄원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시 13:1-2)

1절과 2절 말씀에는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절박한 탄원이 네 차례나 반복되며 울려 퍼집니다. 다윗이 이처럼 간절하게 "어느 때까지니이까"를 거듭 호소하는 까닭은 명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잊어버리신 듯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다윗에게서 지속적으로 감추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황을 배경으로 하는지, 어떤 특정 사건을 가리키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망각하신 듯, 혹은 그의 얼굴을 가리신 듯 내버려 두셨던 그 유장한 세월이 바로 사울을 피해 도피하며 보냈던 십수 년의 광야 생활이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왕궁을 떠나던 그날, 그 피난 생활이 그토록 장구하게 이어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조속히 해결되리라 믿었습니다. 사울 왕이 자신을 오해하여 해하려 한다고 여겼기에, 오해만 불식되면 다시 왕궁으로 복귀하여 이전처럼 왕을 보필하고 백성을 위해 싸우며 사울의 군대장관으로 직분을 다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런 준비 없이 맨몸으로 나섰던 것입니다.

그렇게 얼마 걸리지 않으리라 여겼던 시간이 한 달을 넘기고, 일 년을 경과하고, 십 년이 흘러도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그가 하나님께 절규하며 탄원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제가 언제까지 이러한 삶을 감당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망각하신 것만 같았습니다. 불러도 응답이 없었고, 아무리 방황하며 헤매도 하나님께서 그를 유기하신 것처럼만 느껴졌습니다.

다윗이 경험한 이 막막함과 방향을 잃어버린 듯한 절망감은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간절히 기도하고, 엎드려 부르짖고, 진력할 만큼 간구하는데, 즉각 해결될 것처럼 보였는데도 실상은 풀리지 않고 일 년이 가고 이 년이 가고 긴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그것이 우리 생애의 고질병이 되고 해묵은 과제가 되어버립니다. 일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하나님은 나를 잊으신 것 같고, 그런 세월이 우리에게도 늘 동일한 양상으로 되풀이됩니다. 다윗이 통과하고 있는 고뇌는 결코 그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보편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망의 두려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시 13:3)

하나님께서 자신을 망각하신 듯한 이 절망감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절망감은 곧바로 더욱 깊은 두려움으로 전이됩니다. 그 두려움은 바로 "내가 사망의 잠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실존적 공포였습니다. 다윗이 이 순간 체험했던 두려움은 "이대로 내가 목숨을 잃으면 어찌 되나, 이대로 내 생이 종결되면 어찌 되나" 하는 근원적인 불안이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상대는 이 나라의 모든 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왕에게 추격당하는 한 사람의 도망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숨어 있는 피신처가 노출되어 순식간에 생명을 잃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러한 위태로운 세월을 이미 십여 년 이상 감내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내 생애가 마감될까, 이대로 내가 허망하게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그에게 어찌 엄습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망의 잠에 빠질까 하는 그 공포와 전율이 그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어긋나는 데서 발생하는 실존적 고뇌였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이러했습니다. "조금 더 견디라. 조금 더 있으면 네가 왕이 될 만한 자질을 갖추고, 너의 심령의 그릇을 확장하고, 사울이 이러저러하게 시간이 경과한 후에 내가 너를 반드시 회복시키리라." 그러나 다윗의 시간표는 "지금 즉시"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시간표와 다윗의 시간표가 불일치할 때 발생하는 간극이 그를 깊은 고통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양상은 성경 전반에 걸쳐 부지기수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나사로 사건을 살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각별히 사랑하셨던 베다니의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의 가정에서 예수님께 기별이 전해졌습니다. "우리 오라버니가 지금 병들어 있습니다. 정황을 보니 위중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 속히 오셔서 제 오라버니의 질병을 치유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그 간곡한 기별이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연유입니까? 예수님은 당신이 계시던 그곳에서 이틀을 더욱 체류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의아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각별히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어 위독하다는데, 즉각 달려가지 않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서 유유자적 이틀을 더 머무르셨던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시간표는 "지금 즉시 오셔서 예수님께서 그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체류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도착해 보니 이미 나사로가 운명하고 없었습니다. 사망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운명한 지 이미 나흘이나 경과했습니다. 장례까지 온전히 마쳐졌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종결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윗이 염려하고 두려워했던 것처럼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다" 했는데, 실제로 사망의 잠에 잠들어 있는 나사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문을 굴려 열게 하시고 무덤 앞에 서셔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수족을 베로 감긴 채로 이미 운명한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그 자리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11장이 전하는 놀라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시간표는 나사로가 운명한 지 나흘 후에 그를 무덤에서 불러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시간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치 앞만 응시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시간표는 "지금 즉시"였고, 다윗의 시간표 역시 "지금 즉시"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간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우리는 지금 숨이 끊어질 듯하고 소멸될 것 같습니다. 내 시간표는 지금 당장인데, 하나님의 시간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미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보면 해피엔딩이라서 다 종결된 것처럼 여겨져 "그래, 기다리면 되겠지"라고 여기지만, 정작 그 순간을 통과하는 우리는 우리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불일치할 때 이것을 어떻게 풀어가야 합니까?

사랑에 대한 신뢰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시 13:5)

다윗은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오직 주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겠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온전히 불일치할 때, 그때 그가 붙들었던 것은 단 한 가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불변의 진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니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완전한 방식으로 응답하시리라는 전적인 기대와 신뢰를 품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표에 하나님의 시간표를 끼워 맞출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가지만 응시하는, 하나의 좌표에서 한 점만 바라보는 단견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입체적으로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조망하십니다. 우리의 미래도, 장래도, 우리의 과거도, 지금 내가 사유하는 것도, 기획하는 것도, 혹은 나의 대적들의 계략까지도 모든 것을 다차원적으로 통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 "하나님, 무조건 내 시간에 순응해 주십시오"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내 시간표에 맞추면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심대한 해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다윗이 이처럼 절체절명의 곤경 속에서,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부르짖는 그 절박한 정황에서도 그가 견고히 붙잡았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즉각 개입하지 않으셔도, 지금 즉시 해결해 주지 않으셔도, "이분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나를 사랑하시니 하나님께서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해결해 주시겠지"라는 그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그는 확고히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을 소유하자 놀라운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시 13:6)

아직 구원이 구체적으로 성취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실제로 가시화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서 찬송이 용솟음쳤습니다.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며 낙심하고 절망에 침잠했던 다윗의 입술에서 이제 찬송이 흘러넘친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놀랍고 경이로운 전환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내 시간표가 상이하다고 느낄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의 사랑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입에서 불평과 원망과 하나님을 향한 탄식이 아니라 찬송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 찬양이 오늘 우리를 기쁘게 하고 복되게 할 것입니다. 비록 다윗처럼 광야 같은 세상을 유랑하며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 입술에 찬양이 고갈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찬양으로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가 상이할 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탄원이 네 차례나 반복되는 이 시편은 사울에게 추격당하며 십수 년을 광야에서 살아야 했던 다윗의 절박한 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사망의 잠에 빠질까 두려워했던 다윗처럼, 우리도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망각하신 것 같고 그분의 얼굴을 가리신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고 더욱 큰 그릇으로 빚으시는 섭리의 과정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다윗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불일치할 때, 다윗이 견고히 붙잡았던 단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점만 응시하는 제한된 시야를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입체적으로 조망하시며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완전한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표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하며 그분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셋째는 절망의 나락에서도 찬송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직 구원이 성취되지 않았는데도 다윗의 입술에서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자 불평과 원망이 찬송으로 전환되었고, 낙심과 절망이 기쁨과 감사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만을 견고히 붙잡으면, 광야 같은 세상을 통과하면서도 우리 입술에 찬양이 고갈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찬양이 오늘 우리를 기쁘게 하고, 승리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하며, 그분의 사랑을 의지하고, 어떤 정황에서도 찬송을 상실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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