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편

성경
시편1권

지혜와 어리석음

시편 14편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에는 자녀를 온전히 잘 키우고자 하는 깊은 소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양 가득한 음식으로 건강하게 먹이고, 아름다운 옷으로 단정하게 입히며, 수준 높은 교육의 기회를 열어주기를 갈망합니다. 그 모든 노력 가운데서도 부모들이 가장 지극한 정성을 쏟는 영역은 단연 자녀 교육의 문제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도록 인도할 수 있을까 밤낮으로 고심합니다. 그러나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교육의 영역은 부모가 직접 관여할 수 있는 범위가 근본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핵심을 이루기에, 부모의 역할은 훌륭한 학교를 선택하여 보내는 것과 자녀가 원하는 환경에서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든든히 뒷받침하는 것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육의 가치가 어찌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경계 안에만 갇혀 있겠습니까? 교실 밖에서 펼쳐지는 풍성한 배움의 세계 역시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선사할 수 있는 교실 밖 교육 중에서도 특별히 깊은 의미를 지닌 것이 바로 여행입니다. 교실의 벽 안에서는 결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하나님의 광대하신 창조 세계를 직접 눈으로 목도하고 온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여행은, 자녀들의 인격 형성과 세계관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서도 적절한 시기와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아직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미취학 연령의 어린 자녀들, 초등학교 문턱조차 넘지 않은 유아들을 데리고 미국의 저명한 명문 대학들을 순례하는 여행을 떠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곳에서 역사와 전통이 깃든 대학 캠퍼스를 함께 거닐며, 각 학교가 품고 있는 철학과 의미를 설명하고, 이곳에서 배출되어 세상을 변화시킨 걸출한 인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들,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이들이 그 귀한 내용을 온전히 마음에 담아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배경 지식과 이해의 토대가 없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유럽의 유서 깊은 박물관들을 순회하며 투어를 진행하는 것 역시 공허한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기와 때에 대한 분별이 실로 중요합니다. 그러한 경험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는 성숙한 시기가 무르익고, 마음의 그릇이 충분히 준비된 적절한 때가 도래했을 때, 자녀들을 동행하여 의미 깊은 장소들을 경험하게 한다면, 그 효과와 효율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할 것이며 받아들이는 폭과 깊이 또한 천양지차로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적기에 온전히 경험하고 체득한 내용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녀들의 성장 과정 속에서 든든한 뼈대를 이루고 풍성한 살을 더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 성숙과 하나님 인식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정 역시 정확히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갈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안다고 여기더라도 영적 성장이 더디다면, 하나님을 깊이 알 만한 영적 단계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단지 피상적이고 표면적으로만 인식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걸어온 신앙의 여정을 차분히 돌이켜보십시오. 처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던 그 시절,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마치 도깨비방망이나 요술램프와 같은 존재로 여기곤 했습니다. 기도만 하면, 원하는 것을 간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마치 신비한 도깨비방망이처럼 인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고 영적으로 성숙해지며 신앙이 깊어져가면서, 우리는 점차 하나님께서 단순히 그런 차원의 분만이 아니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침묵하심으로 우리를 기다리시기도 하고, 연단을 통해 우리를 훈련시키시기도 하며,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는 엄중히 책망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의 채찍으로 우리를 바로잡으시기도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실로 다양하고 오묘한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차츰 깨달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더욱 풍성하게, 더욱 온전하게 알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삶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1)

다윗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에서 어리석은 자의 본질에 대하여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를 다윗은 어리석은 자라고 단언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 부류는 의도적으로 극히 악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아예 부정하려고 작정한 자들입니다. 이런 이들은 실제로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생하게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영적으로 깊은 체험과 경험이 부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자들을 향해 다윗은 어리석다고 지적했습니다.

지혜로운 자세

그런데 자신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그런 이들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확신하며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이렇게 겸손히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경험하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당신은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그토록 확신에 차서 말씀하시는데, 그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까?" 이렇게 진지하게 배우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요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자신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그다음 잘못된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1)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지 않는 지경까지 나아가는 것, 바로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것과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한 것은 전혀 별개의 차원입니다. 하나님을 모른다면 마땅히 겸손히 배우고 깨달아야 하며,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게 진지하게 가르침을 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행전 2장에는 베드로의 강력한 설교 장면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진 베드로가 예루살렘 백성들을 향해 담대히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의 설교를 경청한 청중들은 마음 깊은 곳에 날카로운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베드로에게 간곡히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가 지극히 중요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러자 그들이 즉시 회개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으며, 그날 세례받은 사람의 수가 무려 삼천 명이나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이 태도가 극히 중요합니다. 모르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겸손히 물어보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신앙 성장 역시 정확히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성장이 더디다면,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만 하나님을 알고 그 이상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더 많이, 더 깊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며, 힘써 여호와를 알려고 분투하고, 깊이 하나님을 만나려고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입니다. 내가 아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하나님을 이해하려 한다면, 거기서 오해가 발생하고 갈등이 생겨나며 각종 문제가 야기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기를 갈망하는 자, 더 깊이 더 풍성하게 하나님을 배우기를 열망하는 자들을 오히려 지혜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잠언 1장 7절은 이렇게 명료하게 증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말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을 더욱 풍성하게 알려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혜롭게 하시고 그것이 참된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새벽 자리에 기도하기 위하여 함께 모였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깨달아감으로써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지혜로운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탐색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14:2)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자가 있는지 하나님께서 세심히 살피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보좌에서 하나님께서 지금 행하고 계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크게 눈을 뜨고 끊임없이 살피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편을 기록한 이가 다윗이 아니었습니까? 다윗이 살았던 시대를 한번 차분히 떠올려보십시오. 당시는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신 위대한 구원자이신 것도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 하나님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가 다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을 찾는지를 세심히 살피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다윗 시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는 있었으나, 더욱 깊이 하나님을 알려고 진지하게 노력하고 애쓰며 분투하고 추구하는 자들이 그만큼 드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찾고 또 찾으셔도 하나님을 제대로 온전히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희소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 4장에도 이와 유사한 맥락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성 수가 성읍의 한 여인을 만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배 문제로 인해 깊은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유대 지역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답변하셨습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런데 이것이 실로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들이 얼마나 수많은데,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자들을 여전히 찾으신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것은 형식적이고 피상적으로만 예배드리는 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의미입니다. 영과 진리로 온전한 마음을 다해 예배드리는 자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진실한 예배자들을 눈을 부릅뜨고 간절히 찾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려고 진심으로 갈망하는 자가 드물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온전히 예배드리는 자가 희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눈을 크게 뜨고 그런 자들을 찾고 또 찾으시며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내가 아는 것까지만 하나님의 전부라고 단정하는 미련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려고 끊임없이 애를 쓰고 힘써 여호와를 알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며,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더욱 풍성하게, 더욱 깊이 알고 경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알면 알수록,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놀라운 하나님의 오묘한 세계를 우리가 깨닫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하고, 그 귀한 은혜를 주변 이웃들에게 기쁘게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발견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보좌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시고, 지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항상 세심히 관찰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온전히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간절히 찾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살피고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간절히 찾으시는데, 그때 발견되는 복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영과 진리로 전심을 다해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온전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려고, 더욱 풍성하게 알려고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며 찾아서,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의 마음속에 발견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간절히 찾으시는 그런 복된 인생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 풍성히 경험하며, 영과 진리로 온전히 예배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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