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장막
시편 15편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적 힘을 의지로 파악했으며, 그 가운데서도 권력을 향한 의지야말로 가장 궁극적인 동력이라 통찰했습니다. 인간의 권력 추구와 그에 대한 갈망이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실로 크고 작은 모든 공동체에는 권력이 존재하며, 그 권력이 창출하는 역동성이 문명을 전진시키는 에너지가 된다는 그의 사상은 깊은 설득력을 담고 있습니다.
니체의 권력 의지는 다윈의 진화론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습니다. 다윈 진화론의 본질은 살아남는 존재가 강한 것이며, 강한 존재만이 생존한다는 적자생존의 원리입니다. 결국 생존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확보해야 하며, 권력은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는 논리입니다. 니체의 권력 의지와 다윈의 진화론 안에는 대화나 타협, 협의나 협상 같은 여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힘 있는 자가 강하고, 강한 자가 살아남으며, 살아남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는 냉혹한 법칙만이 지배할 뿐입니다. 이 두 사상가의 이론을 오늘날 현실에 비추어 보면, 안타깝게도 우리 세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공동체마다 사람들은 권력을 향해 치열하게 투쟁하며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모습입니다. 정치인들로부터 시작하여 작은 조직의 미미해 보이는 권력조차도, 사람들은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으며 끌어내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군상을 지켜보노라면, 철학자와 과학자의 주장이 오늘 이 세상에 정확히 들어맞는 듯하여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이들의 주장과 오늘의 세상이 결코 정상이 아님만은 분명합니다.
영원한 특권
오늘 함께 읽은 시편에서 다윗은 이들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권력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며 살아남는 자가 진정 강한 것도 아님을 명확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이야말로 권력의 정점을 경험한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목동에서 시작하여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에까지 이른 인물입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승리가 뒤따랐고, 전장에서 그를 능가할 자가 없었던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다윗 치세의 이스라엘은 찬란한 통일 왕국으로서 위용을 드높였으며, 그 영토가 날로 확장되어 주변의 어떤 국가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강대국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 최고 권력자 다윗이 오늘 시편에서 무엇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시 15:1)
다윗은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을 언급하며 질문합니다. 주의 장막에 머물 자격, 주의 성산에 거할 자격을 누가 지니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다윗의 어조에서 우리는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주의 장막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막을 의미합니다. 주의 성산은 어디를 말합니까? 성막이 자리한 예루살렘 성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곳 주의 장막, 곧 성막에 머물 자격을 누가 지녔느냐는 질문입니다. 오늘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성전에 거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가 누구냐는 물음입니다.
왕으로 군림했던 다윗의 고백치고는 실로 소박하기 그지없습니다. 최고 권력을 손에 쥔 다윗이라면, 우리는 이런 고백을 예상할 법합니다. "여호와여, 이 장엄하고 화려한 왕궁에 거할 자가 누구입니까? 이 왕궁에 거할 자격을 지닌 자는 어떤 이입니까? 나처럼 강하고, 나처럼 권세가 있고, 나처럼 전쟁에 능하며, 나처럼 권력을 지닌 자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해야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왕궁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궁과 권력이 아니라, 오직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에 오를 자격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왕의 신분을 경험한 자, 왕의 권력을 손에 쥐어본 자가 전하는 이 고백은 우리에게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그는 왕이었는데 어찌하여 왕궁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그는 세상의 모든 권력을 누려보았는데 어찌하여 그 권력을 내세우지 않고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을 사모하며 자랑합니까? 그것은 왕궁과 주의 장막이 도저히 비교될 수 없는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사유해 보아도 명확합니다. 세상의 권력, 세상이 부여할 수 있는 권력은 자신이 노력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힘을 지녔거나, 혹은 태어날 때부터 왕족이라면 얼마든지 획득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하게 하시는 성막, 그 장막, 성도의 신분은 만왕의 왕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선택받아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 만물을 지으시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빚으시고 지금 이 순간도 온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많은 이들은 재물의 풍요로움, 권력의 소유, 세상의 위세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간이 추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의 노력으로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고 풍족한 환경을 누리며 권력 있는 집안의 일원이 된다면 누릴 수 있는 세속적 혜택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도 됨의 특권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그 어떤 세상 권력보다 더 고귀한 하나님 자녀 됨의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들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입술에서 끊임없는 감사로 고백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다윗이 전한 이 고백을 심도 있게 성찰해보면, 세상 권력은 이 땅에서 종결되는 한시적 권력임을 깨닫게 됩니다.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극도로 완벽하게 산다 해도 기껏해야 죽는 순간까지 왕후로서 존재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일입니까? 다윗조차 생전에 자신의 아들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도망쳐야 했던 아픔을 겪었습니다. 아무리 탁월하게 다스린다 해도 반대 세력은 존재하기 마련이며, 아무리 훌륭하게 통치한다 해도 권력을 탐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멈추지 않고 권력에의 의지를 불태우며 현 권력자를 축출하고자 온갖 책략을 동원합니다. 그래서 획득한 권력을 유지하는 일은 얻는 것보다 더욱 고된 싸움입니다.
얻은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불철주야 분투하는 이들, 그것으로 인해 심신이 소진되어가는 이들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세상 권력은 이 세상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유한한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선택받은 존재, 주의 장막에 거하는 자, 주의 성산에 오른 자로 택함 받은 이는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이 땅을 떠나 천국에서도 영원히 누리는 권능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 자녀 된 이 특권은 영원히 우리에게 허락하신 천부적이며 영생하는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번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며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선언하셨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굳게 붙잡고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다윗이 남긴 수많은 시편 중에서 자신의 왕궁을 찬양하는 시는 단 한 편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세속적 권력을 자랑하는 시편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는 하나님의 장막을 노래하고 주의 성산에서 살아가는 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찬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이미 영생하는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임을 기억하고, 그 특권으로 말미암아 이 자리에 서 있음을 기억한다면, 물질이 다소 부족해도 세상 사람들이 소유한 것을 갖지 못해도 하나님 앞에 훨씬 더 깊은 감사와 감격을 올려드려야 마땅한 줄로 믿습니다.
진실한 삶
주의 장막에 거하는 자, 주의 성산에 머무는 자는 어떠한 이들인지 다윗이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 15:2)
한 가지에만 주목해 봅시다. 2절에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속 깊은 진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최측근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가족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품고 있는 계획과 생각을 완전히 터놓고 나눌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배우자라 해도, 부부 사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는 마음의 진실을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내 마음에 순간순간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들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장막이 지닌 아름다움입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시 15:3)
자신의 혀로 타인을 헐뜯지 않는 권력이 과연 존재합니까? 자신보다 더 강력해 보이는 권력이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한다면, 그 혀로 그 권력을 제압해 버리는 것이 권력의 본질입니다. 성장하는 세력을 방치했다가 훗날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혀로 허위를 조작하고 사실이 아닌 일을 과장하며 부풀리는 것이 권력의 숙명적 속성이자 특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주의 장막에 거하고 주의 성산에 머무는 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성도로 살아가는 자는 입이 정결하고 혀가 올바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우리의 혀를, 기도하는 우리의 입술을 거룩하게 지키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시 15:4)
주의 장막에 거하는 자는 서원한 바를 해로움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실행합니다. 하나님 앞에 맺은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한 것은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지켜내고자 온 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상의 권력은 어떠합니까? 오늘 오전에 체결한 약속도 점심 무렵이면 번복해 버립니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해 보고 불리하다 판단되면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어버립니다. 이것이 세상 권력의 본질적 속성입니다.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시 15:5)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권력에의 의지를 품은 자는 매 순간 동요합니다. 그 권력을 손에 넣지 못하면 견딜 수 없고, 고통스러우며, 그로 인해 마음의 평정을 잃고 흔들립니다. 그러나 주의 장막에 거하고 성산에 올라 있는 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서 삶을 영위하는 자는 흔들림 없는 견고함을 누립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선택하셨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내가 힘써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셨고,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삶이 끝난 이후에도 영원토록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경험한 다윗이 고백하기를, 하나님의 장막과 주의 성산에 거하며 사는 자가 가장 복되고 행복하다 증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택하신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그 구원은 영원토록 지속되는 구원이기에 우리를 오늘도 이 거룩한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둘째는 세상의 권력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주의 장막에 거하는 삶을 견지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권력을 추구하라고, 물질을 탐하라고, 세상 사람들이 소유한 것을 너도 획득하라고 집요하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 유혹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리심으로 구원해 주신 그 은혜 하나만을 기억하며, 오늘도 요동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셋째는 정직하고 진실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갑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는 자는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혀로 타인을 헐뜯지 않고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며 이웃을 비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서원한 바는 해로움이 있을지라도 변개치 않으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고 뇌물을 받아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영위하는 이 인생이야말로 가장 축복받은 인생임을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신분을 소유하고 흔들리지 않는 복된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