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6편

성경
시편1권

복의 근원

시편 16편

남들이 부러워하는 훌륭한 직장에 다니다가 갑자기 사직서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처럼 좋은 직장을 떠나느냐고, 아깝지 않으냐고 물으면 대개 이렇게 대답합니다. 업무 환경이나 처우는 모두 만족스럽지만 인간관계가 너무나 힘들어 더 이상 그곳에서 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직장을 떠나는 이유는 업무의 어려움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일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어느 조직에나 있는 일입니다. 힘든 업무는 견뎌내면 되고, 어려운 과제는 배워가며 익숙해지면 됩니다. 그러나 한 번 어긋난 인간관계, 한 번 틀어진 관계의 골을 바로잡고 새롭게 회복하는 것은 실로 지난한 일입니다.

그 어렵고 힘겨운 인간관계는 업무 자체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모든 일을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관계가 자신의 인생과 인격을 잠식하기 전에 빨리 그곳을 떠나야겠다고 결단하게 됩니다. 가정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정에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부부 관계만 건강하면 얼마든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문제라 할지라도 부부 사이가 불편하면 그 작은 문제가 가정 전체를 멍들게 하고 결국 함께 살아가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모든 공동체에서 관계만 좋으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고, 관계만 건강하면 어려운 일도 얼마든지 함께 붙들고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본문 시편은 바로 이런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다윗은 수많은 사람을 다스리는 왕으로 살았습니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군대 장관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휘하에는 무수한 부하들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많은 신하들이 있었으며, 온 백성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백성들과 함께했을까요?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었을까요?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그 지혜를 들려줍니다.

오늘 본문 시편은 '믹담'이라고 분류되어 있습니다. 믹담은 황금의 말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만큼 귀중하고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이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편집자들이 이 시편을 특별히 황금의 말씀이라고 분류했다는 것은 이 시편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복의 원천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 16:2)

다윗은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실로 깊이 있는 신앙고백이며, 복의 원천을 정확히 인식하는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생각해보면 다윗이 받은 복이 얼마나 풍성합니까? 그가 누린 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가 목동의 신분에서 한 나라의 군대 장관이 되었고, 나아가 온 나라를 통솔하는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장관으로, 또 왕으로 살아가는 동안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전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허락하셨을 만큼 그는 탁월한 지략가였고 용맹스러운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시인이었고, 악기를 훌륭하게 다루는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복을 누렸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런 복들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복도 있고 저런 복도 있으며 수많은 복들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복만을 고백하는데, 그것은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한 분이 자신의 복의 원천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신앙고백인지 모릅니다.

원천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며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주저하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사 풍성한 복을 주시면, 사람들은 그 복에 도취되어 복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에 주어진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았고 그 복을 지금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 주신 하나님은 망각하고, 복 주신 하나님은 철저하게 뒤로한 채, 복 자체에만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이삭은 그에게 복 중의 복이었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겠습니까? 그런데 이삭에게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을 제대로 찾지 않고 제대로 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신 이유는 복의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망각하고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들을 한번 헤아려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복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자녀들을 자랑하고 경제력을 자랑하고 외모를 자랑하고 손에 쥔 부귀영화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자랑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다윗처럼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부산물을 자랑할 것인지, 하나님 자체를 자랑하고 하나님의 성호를 높여 드릴 것인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부디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 한 분을 자랑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존귀한 백성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시 16:3)

땅에 있는 성도들이 다윗에게 누구를 가리키겠습니까? 바로 그의 백성들입니다. 그가 다스리고 있는, 다윗의 휘하에 있는 그의 백성들을 다윗은 존귀한 자들이라고 노래합니다.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우리는 이 고백을 선언적 고백이라고 부릅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먼저 선언하고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땅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어떻게 다윗에게 다 존귀하게 보이고, 그들이 어떻게 다윗에게 다 즐거움이 되겠습니까? 몇 명만 살펴봐도 다윗을 괴롭게 했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 있었던 요압 장군을 보십시오. 요압은 다윗의 휘하에 있었지만 그의 손아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뜻대로 행동했습니다. 자기 판단에 따라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했습니다. 다윗이 그를 전쟁에 내보내면 제 마음대로 행동하곤 했던 좌충우돌의 장군이었습니다. 그런 장군이 어떻게 존귀하고 아름답게 보이겠습니까? 다윗도 요압 때문에 한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시므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왕궁을 잃고 쫓겨 나갈 때, 다윗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돌을 던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름답고 존귀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이런 자들까지도 귀하고 존귀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윗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들을 주시어 그 나라 백성으로 다스리고 품으라고 하셨기에, 다윗은 먼저 그 사람들을 존귀하고 아름답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입으로 크게 선언하고 나면 그다음 태도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말이 우리의 눈을 결정하고, 우리의 태도를 형성합니다. 말부터 제대로 선언하고 나아가면 그 사람을 내가 품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너의 백성이니 네가 존귀하게 여기고 네가 아끼지 않으면 누가 그들을 아끼겠느냐."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들이 있고, 일터에 나가면 내가 품어야 할 사람들이 있고, 교회 공동체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존귀하다고 선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때로는 나를 힘겹게 하고 어렵게 하며 관계를 무척 어렵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사람들을 허락하셨으니 존귀하다고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선언하고 나면 상황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바로 그런 일이 아닙니까?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요한복음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땅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신 제자들 중에는 유다도 있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을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언젠가는 돌아오라고, 내가 너의 발을 씻어주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부디 깨닫고 돌아오라고, 주님께서는 유다의 발까지 씻어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다윗의 고백을 통해 우리 믿음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과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위로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하고, 또 땅으로는 내 주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으로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계명 율법의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것을 실천하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시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을 통해서 널리 넘쳐나고 퍼져나갈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복의 원천이신 하나님 한 분만을 자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관계들이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괴로워하는 인간관계들이 우리 인생을 옥죄며,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여기고,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 공동체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허락하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창조하셨으며,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다윗의 휘하에 있었던 사람들,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두 존귀한 자들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 모두가 즐거운 자들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먼저 그들을 존귀하고 아름답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존귀하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어 그들을 저주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입으로 그들을 존귀하다 여기며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앞세우고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위로는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 땅으로는 내 주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으로 존귀하게 여기는 것, 이것이 십계명의 정신이며 율법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을 통해서 널리 넘쳐나고 퍼져나갈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서 시작하며,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올려드리고, 남들은 알지 못하는 회개의 기도도 올려드리며,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 없는 우리 가정의 문제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받으시고 들으시며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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