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7편

성경
시편1권

주의 형상

시편 17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면, 우리는 며칠 밤낮을 이야기해도 그 깊이를 다 드러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껏 경험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 다양한 방식으로 만난 하나님, 타인의 간증을 통해 접한 하나님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면 실로 긴 시간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을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때, 그분은 참으로 독특하고 특별하신 분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는 인간의 이성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신비로운 속성들이 풍성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타종교의 신들은 예외 없이 사람의 손으로 빚어진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형상을 거부하시는 이유는 십계명 말씀 속에 명백하게 선포되어 있습니다.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엄중한 명령입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이는 지극히 타당한 진리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빚어진 것을 어찌 신이라 칭할 수 있겠습니까? 피조물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 어떻게 전능하신 창조주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참 하나님이시라면 형상이 없으신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질문은 그 다음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약하고 부족하며 무지한 우리가 형상 없으신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분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이 근본적인 물음이 우리 앞에 남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아름다운 통로를 통해 우리가 그분을 만나고 알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길

첫째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할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당신의 형상을 따라 빚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이미지, 하나님께서 품고 계신 본질을 사람 속 깊은 곳에 이미 새겨 넣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진지하게 알아가면 갈수록 그 내면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났을 때 감격 속에서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형님을 뵈옵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간증입니다. 그러므로 편견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경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분으로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을 육신의 눈으로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으나, 성경을 통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분께서 전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진지하게 깨달아 갈수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선명하게 알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예수님께 간절히 청했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저희에게 보여 주십시오." 그때 예수께서 의미심장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니라." 이 말씀 속에 놀라운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알아갈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납니다. 하나님은 곧 말씀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경건하게 읽고 깊이 묵상하며 그 말씀이 전하는 의미를 온 마음을 다하여 깨달아 갈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진 본문, '다윗의 기도'라는 제목이 붙은 이 시편을 통해서도 우리는 또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들으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 17:1)

다윗이 기도의 서두에서 간절히 외치는 표현들을 보십시오. "들으소서", "주의하소서", "귀를 기울이소서"라는 간청이 이어집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귀를 가지고 계시며, 듣고 계시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기도와 울부짖음과 탄원을 빠짐없이 듣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을 먼저 들으시는 분으로 제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입을 열어 소리 내어 기도하든, 큰 소리로 외치는 기도를 드리든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또한 침묵 가운데 눈물만 흘리며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때에도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심지어 우리 마음을 단 한 마디 말로 고백해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간구를 들으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반복하여 나타납니까? 다양한 형식으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모두 들어 주시고, 응답하여 주시며,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만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원망도 들으십니다. 불평도 들으십니다. 남을 비방하는 말도 하나님은 모두 듣고 계십니다. 멀리 떨어져 계신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다 들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여정을 걸을 때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이 원망했습니까? 얼마나 자주 불평했습니까? 마실 물이 없다고, 먹을 고기가 없다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 모든 원망을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같은 입술로 기도는 드릴지언정,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은 삼가야 합니다. 남을 헐뜯는 말, 원망하는 말,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는 말,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될 말들은 반드시 분별하여 가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살피시는 하나님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시 17:2)

다윗이 그려낸 하나님의 또 다른 형상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까운 곳에서만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인간의 시야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눈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것은 희미하게 보일 뿐 자세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한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멀리 계시면서도 우리를 세밀하게 살피시고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단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통찰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까지도 하나님은 환히 들여다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이 사실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한편으로는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두렵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발걸음을 옮기는 모든 곳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행동을 빠짐없이 감찰하고 살펴보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께 보여져야 할지 자명해지지 않습니까?

사람에게는 속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감출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을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계획하는 것도, 은밀하게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당당히 보여 드리십시오. 기왕에 보여 드리는 삶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 우리가 믿음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 하나님께서 흐뭇하게 바라보시기 원하시는 그런 모습을 믿음으로 잘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보시고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시 17:4)

다윗은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간다"고 고백합니다. 즉 다윗이 제시한 하나님의 또 다른 형상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말씀하십니까?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도 하셨고,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밝히셨고, 때로는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시대인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또한 자연 만물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선포되는 설교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 우리에게 영적 충고를 건네는 이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통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을 지닐 때, 우리는 늘 영적으로 깨어 있고 민감한 영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소리에 항상 민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음성이 어떻게 들려오는지를 섬세하게 감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를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입술로 주시는 말씀을 따라 자신을 삼간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도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만족의 근원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17:15)

다윗은 "주의 형상으로 만족한다"고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귀로 들어 주시며, 하나님의 눈으로 살피시는 주의 형상, 바로 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한다고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은 자신이 깎아 만든 신의 모습을 주머니에 넣어 지니고 다니거나, 자기 집에 조각하여 제단 위에 올려놓고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참되신 신이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신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형상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가 발걸음을 옮기는 모든 곳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그 입술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형상이 우리를 충만하게 만족시킵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기도하기 위해 나온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은 보고 계시며,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 형상이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아침에 깨어날 때 주의 형상으로 만족한다고 고백한 것처럼,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충만히 만족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깊이 깨닫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귀는 우리의 기도에 항상 활짝 열려 있으며, 우리의 울부짖음과 탄원을 한 치도 빠짐없이 듣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뿐 아니라 원망과 불평, 비방까지도 모두 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밀하게 살피시는 분임을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우리의 마음 깊은 곳과 은밀한 생각까지도 모두 아십니다. 사람에게는 숨길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는 감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 앞에 떳떳하고 담대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임을 늘 기억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설교 말씀을 통하여, 때로는 우리 곁의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잘 지키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손으로 조각한 우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세심하게 살피시며, 우리에게 생생하게 말씀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그 자체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충만히 만족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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