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9편

성경
시편1권

창조와 계시

시편 19편

우리 주변에는 화가, 조각가, 음악가, 작가 등 다채로운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사유와 철학의 세계를 펼쳐 보이지만, 한 가지 본질적인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상과 철학, 자연과 인간을 향한 깊은 감정과 애정을 저마다의 고유한 언어로 형상화한다는 사실입니다. 화가는 캔버스 위에, 조각가는 단단한 돌 속에, 작가는 문자의 흐름 안에, 음악가는 오선지의 음표를 통해 각자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빚어냅니다.

예술가의 정신세계와 철학, 그 내면의 깊이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들이 남긴 작품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가령 한 화가의 경우를 살펴보면, 초기 작품에서부터 중기와 노년기에 이르는 작품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례로 감상하고 분석할 때, 그의 생애가 걸어온 여정을 생생히 추적할 수 있으며, 사상이 변모하고 사유의 폭이 심화되며 확장되는 과정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품이야말로 창작자의 세계를 가장 진실하게 드러내는 언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 또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캔버스는 무엇이며, 하나님의 돌은, 하나님의 오선지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천지만물, 곧 광대한 피조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자이시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섬세한 마음이 이 모든 피조 세계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해 나가시는 이 세계,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창조의 질서 안에 깊이 연관된 존재로서 이 자연을 세심히 관찰하고, 자연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할 거룩한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연의 선포

오늘 읽은 시편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깊이 관조하며 하나님을 고백한 아름다운 찬양의 시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여기서 하늘과 궁창이란 다윗이 살아가던 시대의 세계관과 우주관, 당대의 과학적 이해를 반영한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펼쳐진 모든 공간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다윗이 면밀히 살피고 묵상한 결과, 하늘과 땅, 그 사이의 모든 공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증언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땅 위에 자라나는 꽃과 풀 한 포기 한 포기를 바라보니, 그 안에 하나님의 지혜가 명백히 깃들어 있습니다. 저 광활한 하늘을 날아다니는 창공의 새를 보아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음성이 명료하게 들려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영적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심을 믿으면서도 이러한 깨달음이 없다면, 그것 자체가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태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연을 관찰하며 이 자연을 닮고자 깊이 열망해왔습니다. 새를 바라보며 하늘을 날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실제로 하늘을 비행하게 된 것은 불과 한 세기 남짓한 시간 전의 일입니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 장치를 고안한 이후에야 인간은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 창공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들을 주목해보십시오. 육중한 철과 금속으로 제작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 거대한 기계를 하늘에 띄우기 위해서는 실로 막대한 에너지와 연료가 끊임없이 소모됩니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의 완벽한 설계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합니다. 새를 깊이 관찰해보십시오. 철새들이 엄청나게 먼 거리를 비행하는데, 그 연약해 보이는 몸으로 온갖 바람과 기류를 견디고 이겨내며 저 광활한 하늘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갑니다. 인간이 새를 보고 비행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어왔지만, 하나님의 피조 세계인 이 새의 존재에 담긴 모든 신비를 완전히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제작한 잠수함이 심해를 탐험하기 위해서는 핵연료라는 강력한 동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작고 연약한 물고기가 저 깊은 심해까지 잠수하고 그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상상을 초월하는 수압을 견디는 것, 우리는 그 오묘한 비밀조차 지금까지도 완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연만물을 깊이 관찰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심오한 신비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신체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사람이 제작한 보청기가 아무리 정밀하고 정교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의 귀가 지닌 완벽한 기능과 섬세함에는 결코 필적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자연만물,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접할 때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절대자이심을 깊이 고백하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무언의 증언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3-4)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기록된 말씀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선지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지 못했던 먼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지속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어지고 있었다는 깊은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기록된 말씀이 인간에게 주신 언어와 문자로 우리에게 전달되기 이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진리를 입에 담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선지자조차 없었던 그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피조 세계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당시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전달되었고, 그들은 이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느끼고 인식했습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오늘도 저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깊이 인식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성령의 임재를 함께 느낄 수 있으면 더욱 은혜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 또한 나의 이 연약함을 통해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며, 그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고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높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이 계시를, 우리는 일반 계시라고 부릅니다. 믿는 자에게나 믿지 않는 자에게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동일하게, 공평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일반 계시라고 명명합니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식이며 드러내시는 통로인데, 자연만물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일반 계시의 귀한 은총에 속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은총

다윗은 이 일반 계시만을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별 계시이신 하나님의 말씀도 함께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 19:7-8)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증거 등 다채로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표현들을 한마디로 집약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일반 계시인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지만,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보다 명확하고 확실하게 자신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특별계시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왜 특별계시냐 하면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만 허락하시는 특별하고 귀한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풍부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 탁월한 학벌을 자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어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그 말씀을 진리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무학의 어르신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순수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깊이 감동하고 감격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다양한 방식 중에서, 특별계시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인 오늘 우리에게 특별하고 귀한 은총으로 임하고 계신 줄로 확신합니다. 그런데 이 특별한 은총인 하나님의 계시이신 말씀은,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나 무분별하게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말씀이 주어지는 것은 진실로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고귀한 특권입니다.

저 북한 땅에 있는 동포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롭게 주어지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습니까? 읽고 싶으면 언제든지 읽고, 듣고 싶으면 언제든지 듣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입으로 암송하고 싶으면 24시간 하루 종일이라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보편적인 특권이 아니라는 엄숙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도 지구촌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말씀을 전혀 받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 매우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하고 귀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 말씀을 받은 복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흔하디흔한 말씀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무심히 흘려버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지극히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그 말씀 한 절 한 절의 무한한 가치를 깊이 기억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며 충실히 지켜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윗은 그러므로 이렇게 진실하게 고백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 19:14)

이렇게 하나님께 찬양하고, 이 은혜를 받은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리오니,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온전히 열납되고 올려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받은 우리도,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함께 올려드리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첫째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고 찬양합니다. 항상 보는 일상적인 자연이지만, 이 자연 속에 깊이 새겨두신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 그 사이의 모든 공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음을 늘 인식하며, 작은 꽃 한 송이,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를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특별한 은총으로 귀히 여깁니다. 항상 경험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이 말씀 한 절 한 절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특권이 아님을 명확히 깨닫고, 오늘 우리에게, 특별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고 귀한 은총임을 진실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충실히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날마다 추구합니다. 자연과 말씀을 통해서 일하시고 말씀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기대하고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우리 주 하나님 앞에 온전히 올려지고 열납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생각과 마음을 늘 지켜가며 항상 진실되고 올바른 마음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일반 계시와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특별 계시를 날마다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로운 하루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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