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

성경
시편1권

복된 인생

시편 1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무척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든지 상관없이 노래를 부르고 듣는다는 사실입니다. 기쁠 때 노래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보면,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시상이 떠오르고 연인을 만날 때 노래를 불러주며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도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정말 깊은 사랑에 빠졌던 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이별의 아픔을 겪을 때, 그때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까? 힘겨운 노동을 할 때는 노래가 목구멍으로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노동요가 존재합니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때, 논밭에서 힘겨운 노동을 할 때, 그때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을 만났을 때, 사랑하는 이와 영원한 이별을 했을 때,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장례식장에서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이처럼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에 노래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노래 없이는 살 수 없는, 노래와 뗄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시편은 바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노래입니다. 가장 오래된 시편은 모세가 지은 시편으로, 기원전 1400년경에 불렸습니다. 가장 늦게 기록된 시편은 기원전 약 500년경에 부른 시편입니다. 포로기에서 귀환한 후 순례자들이 부른 노래였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의 스펙트럼은 기원전 1400년경부터 기원전 500년경까지 약 90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있습니다. 이렇게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편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고 있습니다. 기쁠 때, 환희가 넘칠 때, 슬플 때도 노래합니다.

회개할 때도 노래로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임을 자각했을 때, 그때도 하나님 앞에 시로 노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책망하실 때도,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음을 깨달았을 때도, 회개하며 성전에 올라갈 때도, 너무나 기쁜 나머지 순례자들이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런데 참으로 특별한 것 중 하나가, 원수가 있을 때 그 원수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제대로 서지 못할 때, 그때 원수를 저주하는 저주 시편도 시편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은 인간의 각양각색,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담고 있는 아름다운 노래이자 슬픈 노래이면서, 또한 이를 통해서 우리 인간의 겹겹이 쌓인 감정들을 모두 들추어볼 수 있는 노래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주제입니다. 시편은 이러한 주제를 향해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전체의 주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주제시의 첫머리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전체의 주제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노래하는 자들입니다.

슬플 때도 하나님 앞에서, 원수로 인해 힘겨울 때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깨닫게 될 때도 하나님 앞에서, 성전에 올라갈 때도 하나님 앞에서 노래합니다. 결국 복 있는 사람,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사람은 우리 인간의 다양한 모든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 토설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쁠 때만, 행복할 때만 하나님 앞에 나오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감정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 그를 복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악을 멀리함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

세 번에 걸쳐 '아니하고'를 반복합니다. 따르지 아니하고, 서지 아니하고, 앉지 아니하고. 악인, 죄인, 오만한 자라고 이름을 바꾸어 가며 부르지만, 결국은 동일한 대상을 가리킵니다. 악인들의 길을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것은 악의 본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따라갑니다. 다른 이들이 한번 가자고 하니 아무런 경계심 없이 따라갑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서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립니다.

죄라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침투하는 과정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그저 가볍게 산책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길에 스며들지만, 그것을 붙잡아 버리는 순간 함께 동행하고 서게 되며,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게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바로 이 지점부터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죄가 인간에게 스며드는 과정이 실로 이와 같습니다.

다윗이 지은 죄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얼마나 큰 죄를 지었습니까? 간음을 저질렀고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밧세바와 간음했으며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거운 죄가, 죄의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이 무서운 일이 처음부터 이토록 크게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태만의 죄로부터 시작됩니다. 왕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있을 때,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자신의 왕궁에 머물러서 실컷 자고 해가 질 무렵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죄가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작고 미미한 태만이 크고 무서운 간음과 살인죄로 치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이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것은 대수롭지 않은데', '이것은 남들이 다 하는 것인데', '이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인데'라고 생각하는 그 처음의 작고 미미한 죄, 이것부터 다스리는 자가 진실로 복 있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사탄은 처음에 우리에게 크고 무서운 죄를 범하라고 던져주지 않습니다.

흉악범들, 세상과 격리되어 감옥에 갇혀 있는 범인들 중에서도 극악무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흉악범들도 처음부터 그런 무서운 죄를 저지르려고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대수롭지 않은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 흉측하고 무서운 죄인으로 전락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처음 죄의 시작부터 뿌리를 뽑고, 그 시작부터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것이 실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악인은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4)

우리는 악인을 떠올리면 무서운 인상을 지니고 온몸에 문신을 하고 양손에 칼을 들고 무기를 든 사람, 그런 사람들을 악인이라고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바람에 나는 겨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방향성이 없습니다. 바람에 나는 겨는 새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새를 한번 주목해 보십시오.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는 명확한 자기 방향성이 있습니다. 철새들이 떼를 지어서 북쪽을 향해 날아가거나 남쪽을 향해 날아갈 때, 그들은 뚜렷한 자기 방향성을 지니고 날아갑니다. 때로는 창공의 거센 바람을 뚫고 고되고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기도 합니다. 새는 그러합니다.

독수리가 활강하는 것을 보십시오. 독수리가 땅에서부터 하늘로 치고 올라가고 또한 먹이를 향해서 내려오는 것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들은 뚜렷한 자기 방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람에 나는 겨는 자기 방향성이 전혀 없습니다. 바람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바람이 북쪽으로 불면 북쪽으로 따라가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땅에 주저앉고, 또 바람이 불면 일어서서 날아갑니다. 바람에 나는 겨는 이와 같습니다.

악인은 자기 방향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가 이리 가자 하면 이리 가고, 누가 저리 끌면 저리 끌려갑니다. 악인은 바로 자기 방향성, 철저한 자기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악인이 될 가능성이 실로 높습니다. 자기 주관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그리스도인인데,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방향성이 되어야 하는데, 말씀이 자신을 이끌지 않고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을 좌우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돈 된다고 하면 거기에 모두 몰려가지 않습니까? 돈이 된다고 하는 곳에 돈이 몰리고, 돈이 또 다른 돈을 낳는다고 하는 곳에 돈이 집중됩니다. 그래서 몰리다 보니 또 실패합니다. 그렇게 자기 방향성 없이 사람들은 세상의 풍습과 세상의 가치와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표류합니다. 그것이 악인입니다.

또한 바람에 나는 겨의 특징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보니 한 곳에 정착하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없습니다. 믿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 없는 인생이 바로 악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데, 심판 날이 되면, 시간이 한참 흘러가고 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가 되면, 혹은 1년 단위로, 혹은 우리 인생의 주기별로 우리에게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나무에 어떤 열매가 달렸느냐? 너는 어떤 열매로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바람에 나는 겨가 되어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뿌리가 없으니 어떻게 열매를 맺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자를 악인이라고 부르십니다.

악한 사람은 남을 해치고, 남을 죽이거나, 남의 재산을 빼앗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도덕적인 악인인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악인은 삶의 향방 없이 살아가는 자, 열매 없는 자가 분명한 악인입니다.

말씀을 묵상함

믿음의 사람들은 이러한 악인의 인생을 살아가지 않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 1:2-3)

2절과 3절 말씀은 바람에 나는 겨에 정확히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면 삶의 방향성이 생깁니다. 아무리 방향을 잃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씀을 읽고 말씀을 곱씹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끊임없이 묵상하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한 방향이 서지 않습니까?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묵상하다 보면, 내가 오늘 누구와 함께 동행해야 할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이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 자리에 서야 할지 피해야 할지, 그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방향을 잃은 사람은 말씀을 묵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새벽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이유는 인생의 방향을 잡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 동서남북 어디로 가야 할지 얼마나 막막합니까? 이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우리 자녀들이 부모에게 묻습니다. '이것을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그때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말씀을 붙들고 살면, 바른 방향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이끌고 갈 수는 없으나, 이 길이 옳은 길이라고, 손해 보는 좁은 길이야말로 참된 길이라고, 예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우리는 알려줄 수 있습니다. 방향을 정확하게 분별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또한 오늘 이 말씀을 살펴보면,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했습니다. 바람에 나는 겨는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만, 그러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자유가 없습니다. 그저 한 곳에 오랫동안 뿌리를 깊이 박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있지 않습니까? 자유 없음이 우리를 억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가고 흘러갈수록 나라는 나무에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악인의 인생과 얼마나 극명하게 대비됩니까?

바람에 나는 겨는 열매가 없지만,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 그 열매는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심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복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인이 되지 말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을 살지 말며, 복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의 길을 멀리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의 시작부터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작고 미미해 보이는 악도 결국 우리를 죄의 자리에 주저앉게 만듭니다. 다윗의 태만이 간음과 살인으로 치달은 것처럼, 우리는 처음부터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삶이야말로 복된 인생의 시작입니다.

둘째는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묵상하여 방향을 잡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가 아니라 뿌리 깊은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삶의 방향성이 명확해집니다.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따라 살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벽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인생의 나침반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셋째는 복 있는 사람은 열매 맺는 인생을 삽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바람에 나는 겨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열매가 없고, 시냇가의 나무는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만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맺는 열매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변 사람들을 복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서 열매를 찾으십니다.

시편 전체의 주제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은 어떤 감정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회개할 때도, 감사할 때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악인의 길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열매 맺는 인생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는 복된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복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지만,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복 있는 사람은 오늘 말씀이 보여준 인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복된 인생을 살기 원하오니, 제대로 한번 살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굳게 붙잡고, 주님의 자녀답게, 십자가의 군사답게 이 하루를 승리하며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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