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날의 기도
시편 20편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바람과 파도를 마주하게 됩니다. 망망대해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렁이는 것은 자연의 순리입니다. 인생이라는 배가 세월이라는 큰 바다를 건널 때, 우리는 피할 길 없는 세월의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때로는 사납게 몰아치는 태풍과 높이 솟구치는 파도를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바람과 파도를 결코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우리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과제입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어려움이 찾아올 때 먼저 냉철하게 분별합니다. 이 문제가 과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내 손을 완전히 떠난 것인지를 먼저 살핍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담대히 해결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문제를 결코 고난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진정한 고난은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입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금 신중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니면 그조차 역부족인 것인지를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비록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더라도 용기를 내어 도움을 구하면 됩니다. 겸손히 손을 내밀어 부탁한다면 얼마든지 극복해 나갈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불가능하다면, 바로 그때부터 진정한 지혜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내 손도 떠났고 내 이웃의 손마저 떠났다면, 이제 과연 누가 나를 도와야 하겠습니까.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는 신적인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도우셔야 하고, 하나님께서 진실로 이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셔야만 비로소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내 능력 밖의 일인데도 여전히 내가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타인의 도움을 구하다가 결국 깊은 수렁에 빠져 더 이상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목도하고 있습니까.
응답하시는 하나님
모세가 바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신 곳이 홍해 앞바다였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추격해 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었겠습니까. 망망한 바다가 앞을 막고 칼을 든 군대가 뒤에서 따라오는 상황은 모세의 손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고, 주변 사람들이 도와도 도울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오늘 가만히 있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는 것, 그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잠잠히 나아가 기도하고, 하늘로부터 오시는 구원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환한 날과 어려운 날들을 회고합니다. 그가 어떻게 이겨냈는지,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시 20:1)
"환난 날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윗이 경험한 환난 날이 몇 가지 있습니다. 다윗이 소년 시절에 겪었던 골리앗과의 싸움이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모두가 골리앗 앞에서 40일 동안 침묵했습니다. 왕도 침묵했고 모든 사람이 다 침묵했습니다. 다윗 스스로도 골리앗과 맞서서는 이길 재간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도우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환난 날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사울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가 사울에게 쫓기면서 십수 년을 광야를 헤매고 다녀야 했을 때, 그때도 역시 환난 날이었습니다. 왕이 된 이후에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 때문에 왕위를 잃고 쫓겨나서 광야를 전전해야 했는데, 그때도 역시 환난 날이었습니다. 다윗이 말하는 환난 날은 자기가 해결할 수 없고, 주변 사람들도 도울 수 없을 때를 의미합니다. 바로 그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략된 것이 있습니다. "응답"이라는 말이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까. 우리가 상호 소통할 때도 우리가 말할 때 상대방이 그 말에 대하여 응답하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는 것은 다윗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말입니다. 즉 환난 날에 내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날에 다윗은 하나님께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갈 때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께 기도했고, 사울에게 쫓겨 다녔던 그 오랜 세월 동안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압살롬의 반란으로 광야를 전전할 때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결국 환난 날을 극복하는 첫 번째 열쇠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오직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밖에 없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환난 날이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하나님을 찾았을 때 일어난 변화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높이 드셨다"고 고백합니다.
1절 말씀을 다시 주목해 보십시오. 앞뒤를 생략하고 처음과 끝만 보면 "환난 날에 너를 높이 드시며"입니다. 환난 날에 다윗을 높이 드셨습니다. 우리는 내 손을 떠난 어려움을 겪으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무너졌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신비로운 사실은 환난 날에 부르짖기만 하면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내 이름을 높이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인생이 바로 이런 인생입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환난 날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결론은 다윗의 이름이 높이 들림받았습니다. 사울과의 싸움에서 십수 년 동안 상대가 되지 않게 쫓기던 세월, 그 마지막 결론은 다윗의 이름이 높이 들림받고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압살롬의 반란도 결국 다윗의 지혜가 높이 들림받는 것으로 결론났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환난 날의 끝이 좋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고 고난이 닥치고 내 인생에 해결할 수 없는 아득한 문제가 생기면, 그때 부르짖고 기도하면 결론은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높이 드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보여주신 말씀이었고 현장이었으며, 그것이 그의 삶의 생생한 교훈입니다.
나만의 성소
다윗은 이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시 20:2)
성소와 시온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성소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제단이 아닙니까. 이 제단이 있는 곳이 예루살렘 성 시온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공간적이고 장소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는 성소에 와서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왕위를 잃고 쫓겨났을 때도 예루살렘 성에 돌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성소와 시온은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입니까. 자기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할 수 있는 경건의 자리, 기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성소와 자기만의 시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바쁘고 분주하며, 우리 인생이 치열하게 흘러갈 때 시간을 지켜서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 나만의 성소와 나만의 시온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어디가 되었든, 그 시간이 언제가 되었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만의 성소와 나만의 시온을 붙들고 기도하는 그 아름다운 시간과 장소가 필요합니다. 다윗이 시간이 지나서 회고하며 고백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나를 도우시고 시온에서 나를 붙들어 주셨도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권면합니다.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시 20:3)
소제와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까. 너만의 성소와 너만의 시온을 만들고, 그 자리를 예배의 처소로 만들면 하나님께서 너의 소제와 번제, 네가 드리는 모든 예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윗도 얼마나 막막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잊어버리셨는가. 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그냥 던져두시고 내버려 두시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결국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이 모든 괴로움을 극복하고 난 뒤에 회고하는 고백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으셨고, 내 기도를 들으셨고, 결국은 내 이름을 높이 드셨도다." 이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인생에 증거가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다는 것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이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이렇게 높이 드셨도다." 이 고백만큼 아름다운 고백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경험과 이 증거, 이 찬란하게 넘쳐나는 내 인생의 훈장 같은 것들이 사랑하는 가족들, 자녀들, 이제 막 믿음을 시작한 분들에게 열매가 되고 그들에게 나누어 줄 나의 고백과 증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시 20:4-5)
결국 다윗이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다시 1절로 돌아가면,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시는 방식은 기도입니다. 환난 날에 네가 드리는 모든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너의 이름을 높이 드시기를 원한다는 것이 다윗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우리의 유일한 길임을 기억합니다. 내 손을 떠난 문제, 내 주변 사람들도 도울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뿐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환난 날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며,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둘째는 나만의 성소와 시온을 세워 경건의 삶을 지속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분주한 인생을 살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할 수 있는 나만의 성소와 나만의 시온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그 장소가 어디든, 그 시간이 언제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기도하는 아름다운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예배를 기억하시고 받아주십니다.
셋째는 환난 날의 끝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높이 드심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환난이 좋은 결말을 맺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길 때,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의 이름을 높이 드십니다. 다윗의 삶이 그것을 생생하게 증명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증거가 넘치는 인생이 되어, 이 아름다운 고백을 후대에 전하는 신앙의 선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하루가 진실로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앞에 닥친 환난을 피하지 말고 기도로 정면돌파하여 이겨내고, 그 끝에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높이 드시는 귀한 경험의 간증이 있기를 바랍니다. 환난 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심을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국 환난 날 우리의 이름이 높이 들림받는 은혜를 누리며, 나만의 성소를 만들고 나만의 시온을 세워가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