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2편

성경
시편1권

침묵과 응답

시편 22편

드라마나 영화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제 중 하나가 배신입니다. 배신당한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내게 이럴 수 있습니까? 내가 베푼 그 모든 은혜를 당신은 원수로 갚는단 말입니까?" 이러한 절규는 인간 내면에 깊이 자리한 하나의 믿음을 드러냅니다. 선행에는 선행이 돌아오리라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그 기대 말입니다. 우리 역시 이 믿음 위에 서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을 베풀면 언젠가 그도 나의 어려움에 손을 내밀어 주리라는, 그 은밀한 기대를 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삶은 이토록 단순하지 않습니다. 세월을 거듭하며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선행과 보답 사이의 등식이 언제나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냉엄한 진실을 말입니다. 한없는 은혜를 베풀었건만 돌아오는 것은 감사가 아닌 배신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한 이들이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행하고, 줄 수 있는 것을 나누며, 베풀 수 있는 것을 드리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웃을 향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다했노라 여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평안케 하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걸음씩 성숙을 향해 나아갑니다.

인간관계를 이처럼 정리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전혀 다른 차원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시며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은연중에 이런 기대를 품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구하는 만큼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며, 내가 간절히 부르짖는 만큼 하나님께서 반드시 귀 기울여 주실 것이라는 기대 말입니다. 사람들이야 내 소리를 외면할지라도 하나님만은 결코 그러하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믿음이 제때에 응답받지 못할 때, 우리는 깊은 당혹감에 빠져듭니다.

버림받은 느낌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편은 메시아 고난시로 불립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먼저 겪었고,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침묵 앞에 서 계셔야 했습니다. 그 깊은 당혹감과 견디기 힘든 고통이 이렇게 토로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 22:1)

다윗이 하나님께 곧바로 질문을 던집니다. "어찌 나를" "어찌 나를" 같은 말을 두 번이나 되풀이하며 절규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를 멀리하시어 돕지 아니하시며 내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십니까? 사울 왕에게 쫓겨 십수 년을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던 그 시절, 다윗의 영혼을 짓눌렀던 것이 바로 이러한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까닭은, 이전의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러하지 않으셨다는 데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집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을 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셨습니까? 사자나 곰이 양 떼를 덮쳐 물고 갈 때마다, 소년 다윗은 맹수들을 끝까지 쫓아가 그 날카로운 발톱에서 양들을 건져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지 않으셨습니까? 다윗에게 사자와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있었겠습니까? 곰과 겨루어 이길 장사의 기운이 있었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기에, 사자와 곰의 위협 속에서도 양들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골리앗과의 대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게 소년 다윗이 전장의 거인이요 용사 중의 용사인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으며 함께하셨기에 그 놀라운 승리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울 왕의 군대 장관으로 섬길 때도, 전쟁터에서 거둔 모든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그의 간구에 응답하셨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신실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전혀 응답하지 않으시고 깊은 침묵 속에 계십니다. 이것이 다윗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습니다. 이는 그 후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서 겪으신 처절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셨고 다윗이 겪었던 이 고통을 오늘 우리 역시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하나님 앞에 절규합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이토록 버려두시는 것입니까?

끊임없는 부르짖음

그렇다고 다윗이나 예수님이나 우리가 기도를 멈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22:2)

낮에도 밤에도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며 끊임없이 기도를 올립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에게 그리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토록 고난 가운데 버려두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그를 이렇게 방치하시어 주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손가락질 받는 처지로 내몰으시는 것입니까?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시 22:4-6)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고 백성들에게 조롱받는 신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연단의 의미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처럼 고난 가운데 머물게 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연단하시고 훈련하시어 진정한 왕으로 빚어 가시는 거룩한 과정 가운데 계셨기 때문입니다. 홀로 서는 것을 견디게 하시고 광야의 고독을 버티게 하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신실함을 배우게 하시어, 훗날 더욱 견고한 왕으로 세우시려는 섭리였습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는 그가 참된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며, 이러한 연단 없이는 그가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요 자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버리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견디게 하시고 단련시켜 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시편 22편을 자주 마음에 새기셨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시 22:14-15)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처절한 고통이 이렇게 예언되어 있지 않습니까? 시편 22편은 메시아 고난시로 불리며, 예수님께서 자주 묵상하셨고 선지자들도 많이 인용했던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시편의 정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겪으신 고난과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셔서 울부짖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께서도 깊은 당혹감 속에 계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버리시는 듯한 아버지 하나님을 경험하시면서 우리 주님께서도 그렇게 부르짖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하나님의 때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버리신 것이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진리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서 버리신 것이 아니라, 결국 무덤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죽으셔야 했고, 그 생명을 다하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셔야 온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었기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내어주시는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시면서 그분을 그대로 십자가에 두셨다가, 마침내 무덤에서 그를 건져 올리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버리신 것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다윗을 이 혹독한 고난 가운데 머물게 하셨다가, 마침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영광 가운데로 이끄셨습니다.

사람은 우리가 베푼 만큼 돌아보지 않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까닭은, 하나님의 구원의 때와 우리가 원하는 때 사이에 간극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광야를 떠돌 때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달랐습니다. 이 광야의 훈련을 온전히 견뎌내고 나서 훗날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완전한 때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에 마치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듯 느껴지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장 아름다운 시점이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때와 시를 믿음으로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견디고 기도하며, 이겨낼 능력을 구할 뿐입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시 22:27-29)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믿고 확신하며,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충성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룩한 결심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침묵이 버림이 아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에 즉각 응답하지 않으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욱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빚으시는 연단의 과정입니다. 다윗이 광야의 훈련을 통해 위대한 왕으로 성장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절한 고난을 통과하여 부활의 영광을 입으셨듯이, 우리 역시 이 침묵의 시간을 거쳐 더욱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기다립니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표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시간표는 다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을 갈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전한 때에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십수 년의 혹독한 광야 생활을 견뎌야 했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들을 영광의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완전하신 때를 믿고 인내로 기다리는 영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고난 중에도 경배를 멈추지 않습니다. 다윗이 가장 깊은 절망의 심연에서도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라고 고백하며 찬양을 올렸듯이, 우리 역시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찬양을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이 우리를 무릎 꿇게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거룩한 자세로 무릎을 굽힙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의 성숙함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가 다를지라도, 하나님께서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때에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을 믿고 소망하는 가운데, 오늘도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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