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
과거 은행 업무를 처리하려면 통장이 반드시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금통장, 적금통장, 대출통장 등 통장의 종류도 여러 가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소유한 통장이 여러 개에 이르렀고, 가정의 식구가 많으면 관리해야 할 통장의 수도 상당하여 이를 관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통장 하나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찾는다고 온 식구가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는 일도 흔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현금카드와 직불카드, 신용카드가 등장하면서 업무 처리가 한결 간편해졌습니다. 이제는 그마저도 번거롭게 여겨져 스마트폰 하나에 각종 카드를 통합함으로써 은행 업무부터 결제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분산된 것을 불편해합니다. 이것을 위해 저곳으로, 저것을 위해 이곳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한 번에 통합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갈망하고 선호합니다. 은행 업무는 이처럼 객관화되고 전산화되어 갈수록 효율적으로 통합되어 가는데, 정작 우리의 인생 문제는 어떠합니까? 의식주를 해결하고 생계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견고한 경제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정서적 안정을 누리려면 신뢰할 수 있는 친구와 지혜로운 상담자가 필요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건강한 자아 정체성과 탁월한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악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보호받으려면 권력 있는 든든한 후원자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네 가지를 동시에 갖추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모릅니다. 넉넉한 재정과 신뢰할 만한 친구를 확보하고, 건강한 자아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도 쉽지 않으며, 든든한 권력자를 배후로 두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이 네 가지를 동시에 소유하고 이 땅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난 후까지 온전히 책임질 존재가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세상을 아무리 샅샅이 찾아보고 두루 살펴봐도 그런 존재는 찾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다윗의 시편은 이 네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네 가지 문제를 해결하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향하게 될 영원한 천국까지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증언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부족함 없는 인생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돈이 아무리 풍족해도 사람은 여전히 부족함을 느낍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결핍을 경험하는 존재입니다. 이 부족함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을 세우기 위해 분투하며, 그렇게 쏟은 노력만큼 삶이 나아지고 자신을 성장시켜 갈 수 있습니다. 부족함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채워도 이 부족함은 끝나지 않습니다. 채우면 또다시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렇게 성장하면 거기서 또 부족함을 느끼며 더 성장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갈증을 느끼고 목마름을 경험하며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에게 부족함이 없다고 담대히 고백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은 그 전제로 내가 그 목자를 따르는 양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내가 그분의 양이 될 때 인생의 문제가 이처럼 해결된다고 다윗은 증언합니다.
공급하시는 목자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2)
양들은 푸른 풀밭에서 신선한 풀을 뜯어 먹어야 합니다. 목이 마르면 시원한 물을 마셔야 합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들인 우리를 이끌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목자를 잘 따라가면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이 목가적인 시는 그가 왕위에 오른 이후에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한창 사울을 피해 쫓기며 광야를 전전할 때 지은 시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광야에서 무엇을 소유했습니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가 빈털터리로 맨몸으로 왕궁을 빠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목자이신 하나님을 잘 따라가니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 없이 그분께서 해결해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고백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과 교훈은 실로 심대합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면 생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살도록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남들보다 더 부유하게 해주세요.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세요. 삼대, 사대가 먹고 마시며 누려도 남을 만한 물질을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에는 일절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생계 문제를 책임지시고 돌보시는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양들을 돌볼 때 과식해서 배가 터져 힘들어하며 뒹구는 것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마시며 적당히 운동하도록 목자는 양들을 섬세하게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는데, 너무 많이 먹어 물질이 너무 풍족해져서 그것 때문에 오히려 죄를 짓고 오히려 영혼이 병들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내버려 두시는 분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소생시키는 목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는 것은 생계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영의 문제까지 목자께서 책임지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양으로서 목자를 잘 따라다니면 우리 영혼이 외롭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공허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삼십 년 전만 해도 먹고살기가 참으로 힘겨웠는데 지금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삽니까? 그럼에도 우울증 환자는 늘어나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문제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자이신 하나님을 잘 따르면 우리 영혼을 시시때때로 소생시켜 주십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생기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항상 근원적인 갈증을 품고 살아갑니다. 마음이 풍족해지지 않으면 육체적으로 아무리 만족스럽다 하더라도 항상 불안하고 불편합니다. 그런데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양들이 목자를 따라가기만 하면, 목자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그곳에서 풍성한 열매를 누리고 먹고 마시며 우리 영혼까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보호하시는 목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기독교 신학은 고난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환영하고 고난을 정면으로 대면합니다. 다윗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지팡이와 주님의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지팡이와 목자의 막대기가 나를 든든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시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그 모든 날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니었습니까? 그럼에도 그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히 눕고 편안히 잠들며 편안히 깰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의 지팡이와 주님의 막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려면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고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고난을 거쳐가며 우리 인생의 불순물이 제거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결하게 되며 영적으로 깊어지고 성장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일꾼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키신 것처럼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돌보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혹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지팡이를 잘 따라가는 양이 되기만 하면 이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우리를 든든하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
원수를 갚아 주시는 목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5)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시는 방식이 이렇게 제시됩니다. 우리는 흔히 원수를 갚으려면 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칼로 원수의 목을 베어야 비로소 원한이 풀린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 원수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시는 방식은 원수의 목전에서, 그의 눈앞에서 우리에게 진수성찬을 차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시고 우리를 높이 들어 주십니다.
다윗에게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의 목전에서 다윗을 찬양했습니다. 사울은 실제로 왕이었지만 진정한 왕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는 자는 사울이었지만, 실제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은 다윗이었습니다. 이것을 사울이 알기 때문에 다윗을 그토록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 것이 아닙니까?
다윗의 원수를 칼로 해하지 않으셨어도, 그의 목을 베지 않으셨어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전에서 다윗을 더 높이 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 주시는 방법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내가 내 손에 피를 묻힐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내 손으로 원수를 갚을 필요가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원수 앞에서 나를 높이 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필요한 것들, 부족한 것들이 있습니다. 의식주와 생계 문제, 정서적인 문제, 고난의 문제, 악한 자와 원수의 문제, 이것들은 모두 현실적인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양이 되어 목자이신 하나님을 따르기만 하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인생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영원한 처소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이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영원까지 이어집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23:6)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며 왕궁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 고난이 지나가면, 내가 왕이 되면 왕궁에서 영원히 살리라." 이런 정도의 천박한 수준의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진정으로 기대하고 꿈꾸었던 곳은 여호와의 집이었습니다. 천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그는 기대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이유는 이 땅의 문제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의 문제까지 한 번에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자도 영생을 보장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니 우리는 영생을 보장받은 존재들입니다. 이 땅의 문제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생명까지 해결하시고 보장하신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늘도 우리가 양이 되어 목자이신 하나님을 잘 따라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시편 23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 인생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생계를 위해 돈을 찾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사람을 찾으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벗어나기 위해 실력을 기르고, 악한 자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권력의 손을 빌리는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목자를 따라가는 양이 되기만 하면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일꾼으로 빚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니 우리는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이 땅의 문제뿐만 아니라 영생까지 보장해 주십니다. 우리가 목자이신 하나님을 따라가면 이 땅에서의 삶만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까지 보장받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입니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마십시오. 다른 곳에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다른 곳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오직 목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만 따라가십시오. 그러면 우리 인생에 부족함이 없음을 누리고 경험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양의 사명은 목자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이 되어 목자이신 하나님을 잘 따라가며,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여호와의 집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