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얼굴
시편 24편
어린 시절 친구의 집을 찾아가면, 적어도 그 공간만큼은 친구가 절대적 주인이었습니다. 친구가 허락한 물건만 만질 수 있었고, 친구가 허용한 영역에만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허락 없이 물건에 손을 대거나 출입이 금지된 곳에 무단으로 들어선다면, 다시는 그 집에 초대받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관계가 깊어지고 우정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그 친구는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장난감을 기꺼이 내어주었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비밀 아지트까지 공개했습니다. 이는 관계가 충분히 무르익고 신뢰가 견고해진 후에야 가능한 특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은 온 세상과 만물이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장엄하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며 사랑하시는 거룩한 공간, 성소에 들어갈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성소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가장 깊은 인격적 교통을 나눌 수 있는 영적 상태를 상징합니다. 다윗은 이 본질적 질문을 제기하며,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만물의 주인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다윗은 이 땅과 그 안에 충만한 모든 것이 여호와께 속해 있다고 선포합니다. 하늘과 땅, 강과 바다, 그 가운데 숨 쉬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믿는다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고백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강과 바다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손에서 빚어졌다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은 자명한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받은 우리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께 여쭈어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마음을 따라 자연 만물을 관리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연 만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신 것은 우리 뜻대로 군림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청지기로서 이 자연을 세심히 돌보고 지혜롭게 관리하라는 거룩한 위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자연을 어떻게 대해왔습니까? 사람도, 자연도, 동식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탐욕대로 무분별하게 착취해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의 절박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수많은 먹거리가 우리 식탁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으며, 삶은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여호와께 속해 있다고 고백했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관리하며 하나님께서 빚으신 피조 세계를 아끼고 사랑했어야 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람 역시 하나님의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람을 무분별하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이유가 분명히 있으며,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을 함부로 대합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과 자녀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며,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라고 선포하신 것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본래 창조의 목적대로 회복하라는 엄중한 명령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할 때입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연을 보존하고, 창조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하나님, 이 사람을 왜 이 공동체에 두셨습니까? 이 사람을 왜 저와 가장 가까운 곳에 두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창조하신 의도는 무엇입니까?" 겸손히 물으며 여쭈어보고,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일구어가야 합니다.
거룩한 곳에 설 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시 24:3)
여호와의 산, 그분의 거룩한 처소. 이 표현만으로도 이곳이 얼마나 엄숙하고 중요한 장소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만나시는 그 성소는 가장 은밀하고 가장 깊은 영적 공간입니다. 물론 지성소도 있지만,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한 차례 들어갈 수 있는 지극히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소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을 경배하며 만날 수 있는, 가장 깊고 은밀한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성소를 단순히 공간적 개념으로만 논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소에서 하나님을 뵙듯이, 가장 은밀하고 깊은 차원에서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 하나님께 자신의 속마음을 온전히 열어 보이고 하나님 역시 당신의 마음을 계시하실 수 있는 사람, 하나님과 가장 깊고 친밀한 영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자가 누구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에게 당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 보이시며 계시하시는가? 다윗은 이 본질적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4)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한 자. 다윗은 손과 마음을 동시에 언급합니다. 손은 세상에 드러나는 보이는 행실이며, 마음은 내면 깊숙이 감추어진 보이지 않는 본성입니다. 즉, 하나님과 깊고 은밀한 영적 교제를 나눌 자격을 지닌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실과 내면에 감춰진 본성이 하나로 온전히 일치된 사람을 뜻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에는 누구나 발을 들여놓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도,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악한 마음을 품고서도 선한 척하는 사람도 누구나 와서 예배드리고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이 자리에 몸만 와 있을 뿐 마음은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깊은 성소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겉과 속이 온전히 일치한 사람, 손과 마음이 모두 정결한 사람입니다. 오직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과 깊은 영적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애쓴다면 보이는 외모는 얼마든지 치장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손을 깨끗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이런 영적 진실을 여러 차례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기름 부음을 받던 날, 그는 집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들판으로 양 치러 보내버렸기 때문입니다. 집에는 일곱 형제와 아버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찾아왔을 때, 큰 형부터 시작하여 한 사람씩 그의 앞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눈에는 장대하고 늠름한 큰 형이 왕감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일곱 형제가 모두 지나갔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심을 살피시고 그들 가운데서 택하지 않으시고, 들판에서 양을 치던 다윗을 불러오게 하셔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시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 마음의 청결을 살피시는 하나님,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다윗이 특별한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바로 그 하나님께 혹독한 책망을 받은 적도 있으며, 엄중한 징계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밧세바 사건이 그것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완전범죄처럼 보였습니다. 누구도 감히 왕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손과 마음의 청결함을 함께 저울질하시는 하나님을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과 행함이 온전히 하나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단지 몸만 이 자리에 나와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과 더욱 깊이,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성소에서 은밀하고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기를 진정 원한다면, 우리의 행동과 생각, 손과 마음이 반드시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우리 마음이 하나 되기를, 우리가 내뱉는 말과 속마음이 온전히 일치하여 누구에게도 거짓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얼굴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 24:5)
손과 마음이 온전히 일치한 자, 정결과 청결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의로움을 베푸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의로움은 우리 자신이 쌓아올린 의로움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우리를 온전히 덮어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선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시 24:6)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표현은 다윗의 시편에 빈번히 등장하는 깊이 있는 영적 표현입니다. 손과 마음이 온전히 일치한 자,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자는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얼굴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손에는 무궁무진한 권능과 힘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출애굽의 하나님을 하나님의 강한 팔, 하나님의 능력의 손과 오른팔로 표현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손에 온갖 기적과 선물과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진정으로 누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이 베푸는 능력이 없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주는 능력과 선물이 우리에게 베풀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 곧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로 충만히 만족하겠다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면, 그것으로 넉넉히 충분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어떤 선물이 베풀어져서가 아니라, 우리가 소원하는 것들이 즉각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과 이 거룩한 자리에서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 자체가 가장 큰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다윗이 이 놀라운 진리를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곳이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성소가 되기를,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사모하는 거룩한 자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충실한 청지기로 살아가야 합니다. 땅과 그 안에 충만한 것, 세계와 그 가운데 살아 숨 쉬는 자들이 모두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교만하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을 무분별하게 착취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마저 함부로 대해왔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달아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둘째는 겉과 속이 온전히 일치하는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성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거룩한 곳에서 깊고 은밀한 영적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한 자, 겉과 속이 온전히 일치된 자입니다. 우리의 이중성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바르게 서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손보다 그분의 얼굴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선물과 능력보다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로 충만히 만족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기쁨이자 특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우리와 늘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