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우러러보다
시편 25편
모든 인생에게는 반드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없는 삶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끊임없이 갈등하며 살아가고,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며,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로 살아가기에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생겼을 때는 반드시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문제를 방치한 채 그대로 두면 우리 인생은 더욱 심각하고 위중한 상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돈이 없으면 일터로 나가 수입을 얻어야 하고,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아 의사의 진료와 처방을 받아야 하며,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 관계의 매듭을 찾아 풀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의 길입니다. 그러나 지금 열거한 이러한 문제들은 사실상 단순하고 간명한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노력하면 풀 수 있고, 마음만 바로 먹으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참된 의미의 문제라고 할 수조차 없습니다. 나만 결심하면 얼마든지, 언제라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심각한 문제는 바로 내 능력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싶어도, 하고 싶어도, 노력하고 싶어도 도무지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찾아올 때, 혼자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직면할 때, 그때가 바로 진정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다윗의 시편에서 다윗은 그러한 난제를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혜롭게 조언합니다.
영혼의 시선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시 25:1)
다윗은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본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우러러 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시는 존재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이시며 초자연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를 우러러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또한 우리의 영혼도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실체입니다. 우리 영혼이 어떻게 주를 우러러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하나님과 인간이 소통하는 방식에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분명히,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우리 인간과 소통해 오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인간과 소통하셨는지를 알게 되면 주를 우러러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소통하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바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와 소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인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자 한다면 성경 말씀을 잘 읽어보면 됩니다. 열심히 읽고 제대로 읽고 많이 읽으며, 그 말씀의 깊은 뜻을 묵상하고 그 말씀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특별히 나에게 바라시는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말씀에는 다른 차원의 것이 있는데, 바로 선포된 말씀입니다. 말씀을 풀어 일러주는 목회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주시는 이 말씀을 잘 풀어주는 설교를 듣고 느낄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포된 말씀과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과 소통하십니다. 여기서 주를 바라보라는 말씀, 주를 우러러 보라는 표현은 곧 말씀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도 우리와 소통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영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는데,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다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적인 흠이 한두 가지씩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갔고, 하나님과 소통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찾고 기도하는 자를 항상 귀하게 여기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를 우러러본다는 것,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본다는 말은 곧 기도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집중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원수 앞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시 25:2)
다윗이 왜 이 시편을 쓰면서 서두에서부터 내가 주를 우러러본다고,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집중하겠다고 표현했을까요? 바로 원수들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을 괴롭히는 원수들, 바로 그 원수들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본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할 때, 말씀을 읽고 선포된 말씀을 듣고 기도에 집중할 때는 마음이 편안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마음이 평온할 때, 이제야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을 때, 그때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경도 많이 읽으며 또 선포된 말씀도 제대로 듣겠다고 말합니다.
인생에 위기가 찾아올 때, 다윗처럼 원수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을 때, 사울 같은 원수들과 사울 곁에 붙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가 거느리고 온 군대들이 그를 에워싸고 그를 죽이려고 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걱정이 많아서, 일단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해서, 그래서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핑계거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은 돈을 벌어야 해서, 지금은 자녀들이 어려서, 지금은 자녀들을 위해 더 기도해 줘야 해서, 이제는 그들의 자녀들을 내가 또 돌봐야 해서 등등의 핑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사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집중하고 기도해야 할 때는 바로 내 능력 밖의 문제가 주어졌을 때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사울은 자기 능력 밖의 문제가 아니었겠습니까? 사울의 문제를 다윗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 혼자서는 결코 풀 수 없는 문제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였습니다. 그때 그는 오히려 방향을 전환하여 하나님께 집중하고 주를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풀어주십니다.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시 25:3)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원수에게 집중하면 오히려 더 큰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고난이 닥쳐올 때 내가 풀 수 없는 문제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그 문제에 걸려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표현을 바꾸어 다시 설명하는 것입니다.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시 25:5)
사울이 시시각각으로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는데, 주의 진리를 기대하고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린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태평스럽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가 인생에 큰 어려움이 닥치면 이렇게 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큰 폭풍과 풍랑을 만날 때는 잠잠히 하나님 앞에 있는 편이 훨씬 더 지혜로운 것입니다.
나 스스로 이 문제를 풀어 보겠다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다 보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버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잠잠히 주를 기다리겠다고 고백합니다. 오히려 더욱 말씀에 집중하겠다고, 주의 진리의 도로 나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표현을 이렇게 합니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시 25:15)
이 말씀은 은혜롭지만 곰곰이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내 발이 그물에 걸렸습니다. 이미 내 발이 그물에 걸린 상태입니다. 그런데 내 눈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주를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이것은 본능적으로 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발이 그물에 걸리면 눈은 자연스럽게 내 발을 향하게 됩니다. 여기서 벗어나려고, 여기서 헤어나오려고 발버둥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그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물을 찢으려 하든지 신발을 벗든지 애를 쓰며, 눈은 항상 내 발에 가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님을 향한 내 눈, 즉 말씀과 기도는 잊혀지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이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발이 그물에 걸렸을 때야말로 시선을 하나님께 두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큰 문제들, 내가 빠져나올 수 없는 그물에 걸린 내 몸과 내 영혼이 그렇게 느껴진다면, 바로 그때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하나하나 순리대로 풀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우리에게 전하는 역설의 진리입니다.
다윗의 후손 중에 남유다의 왕 가운데 히스기야 왕이 있었습니다. 그가 남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은 이미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후였습니다. 아시리아가 북이스라엘을 집어삼키고 남유다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복잡하고 힘든 문제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제국이 바로 눈앞에 와 있었고, 이제 그다음 차례가 남유다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의지하여 풀어나가지 않았습니까? 결국 남유다는 아시리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것만 경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이제는 끝났다고 느낄 때, 몸에 병이 찾아와 이제는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의원들이 그를 치료해 줄 수 없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발이 그물에 걸렸을 때 그 그물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엎드렸고, 그는 십오 년의 생명 연장을 허락받았습니다.
다윗도 그러했고 히스기야도 그러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발이 그물에 걸릴 때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풀 수 없는 그물에 걸리고,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힐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시선을 하늘로 향해야 합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깊은 기도로,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말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서 헤어나올 방법을 우리에게 분명히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의 문제는 내 능력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며, 그때 하나님을 우러러보아야 합니다. 단순하고 간단한 문제들은 우리가 마음만 바로 먹으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애써도 풀 수 없는 상황, 혼자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가 바로 진정한 문제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난제 앞에서 자신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본다고 고백했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해결의 열쇠입니다.
둘째는 발이 그물에 걸렸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발이 그물에 걸리면 우리의 눈은 그 그물을 향하게 됩니다. 거기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며 그 문제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발이 그물에 걸렸을 때야말로 시선을 하나님께 두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순리대로 하나하나 풀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경험해 온 진리입니다.
셋째는 평소보다 더 깊은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아시리아의 위협 앞에서, 그리고 죽음의 병 앞에서 하나님께 엎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내가 풀 수 없는 그물에 걸리고,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시선을 하늘로 향해야 합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고, 더욱 깊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헤어나올 방법을 분명히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인생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