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시편 27편
삶에는 차원이 다른 경험들이 존재합니다.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 이들은 현재의 상황 앞에서 깊은 평안을 유지합니다. 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은 목숨이 오가는 극한의 순간들을 통과하셨기에, 지금 눈앞의 크고 작은 변화와 두려움과 걱정 앞에서 담담한 초연함을 보이십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며 폭격이 끊이지 않던 그 참혹한 세월을 견뎌내신 분들에게, 오늘의 어려움은 충분히 견딜 만한 것입니다.
형들이 많은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 역시 또래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다투는 일들 앞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습니다. 이미 형들이 노는 더 높은 차원의 세계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큰 사업을 경영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작은 손해 앞에서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사업에는 손실의 계절도 있고 풍성한 수확의 때도 있으며, 오르내림의 등락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법임을 체득했기에, 눈앞의 작은 이익이나 일시적 손실 정도에는 동요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차원이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 깊은 안정과 여유를 선사합니다. 신앙생활 역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고차원적 삶을 경험하게 하는 거룩한 여정입니다.
영원한 소망
오늘 본문 말씀 속의 다윗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눈에 보이는 현세를 넘어, 그보다 더 본질적인 세계, 죽음 너머의 영원한 생명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현실의 파고 앞에서도 깊은 평정을 유지합니다. 눈앞에 펼쳐진 이 삶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진리를 그는 확고히 붙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마주하고 있는 두려운 일들과 엄습하는 어려움들 앞에서도 그의 심령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라는 이 장엄한 선포는, 깊고 성숙한 신앙에서만 흘러나올 수 있는 고백입니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라는 이 담대한 선언 속에서 우리는 참된 믿음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믿음과 신앙을 잠시 제쳐두고 이 상황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지금 다윗은 분명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제삼자의 냉정한 시각에서 보면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상황이며, 실로 전율할 만한 위험 앞에 서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믿음의 눈으로 자신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위급한 상황을 '여호와는 나의 빛, 나의 구원'이라는 고백으로 승화시키며, 두려움을 넘어선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생명의 위협
그렇다면 그가 지금 직면한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그를 에워싼 객관적 상황은 과연 어떠합니까?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 27:2)
다윗은 단순히 악인들이 자신을 해하려 한다거나 넘어뜨리려 한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왔다고 고백합니다. 이 전율할 만한 표현은 곧 그들이 자신의 생명을 송두리째 빼앗으려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지금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절박하게 받고 있는 급박한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자신의 살을 뜯어먹기 위해, 생명의 숨을 끊어버리기 위해, 한순간에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악인들이 사방에서 그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실로 인생의 극한 위기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악인들은 결코 소수가 아닙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 27:3)
두렵지 않고 태연할 것이라는 고백이 있지만, 객관적 현실을 바라보는 제삼자의 눈에는 군대가 그를 완전히 포위한 절체절명의 상황이 펼쳐져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군대가 총동원되었습니다. 악인들은 결코 한둘의 개인이 아닌 것입니다.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찾아온 자들은 몇몇 자객이 아니라 조직적인 군대였습니다.
그가 인생의 여정 가운데 이런 극한 상황을 단 한 번만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십수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광야를 떠돌며 사울의 군대에 쫓겨 다녔던 그 처절한 날들을 떠올려보십시오. 사울의 군대가 그를 체포하기 위해, 그의 목숨을 끊기 위해 끊임없이 그를 추격하며 진을 쳤던 그 고통스러운 경험을 그는 오랜 세월 견뎌야 했습니다. 사실 그러한 경험은 사람을 심각한 노이로제로 몰아갑니다.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지속되는 세월 동안 군대가 자신을 포위하고 있으니, 얼마나 전율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겠으며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겠습니까?
그의 인생에서 이것이 유일한 경험도 아니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일으킨 반란 때 또다시 군대가 자신을 대적하는 참담한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자칫 한순간의 실수로 그때 이미 연로해진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 속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할 뻔했습니다. 이러한 극한의 위기를 그는 평생 동안 반복해서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런 상황을 직접 경험한다면 숨이 막혀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독 안에 갇힌 쥐처럼 매 순간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가야 하는데, 어찌 평안히 호흡할 수 있겠습니까?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집니다.
여호와의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 나의 구원'이라는 찬양을 노래하며, 두려워함이 없다고,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어떤 일도 겁내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도대체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 승리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여호와의 집, 바로 그곳에 승리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집에 거하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금 그가 당면한 엄혹한 현실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영적 능력의 원천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집, 그가 승리하며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되는 여호와의 집은 단순히 지성소와 성소가 있는 지상의 성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진정으로 노래하는 여호와의 집, 그 궁극적이고 영원한 여호와의 집은 그가 이 땅을 떠나 들어갈 천국, 영원한 소망의 처소인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광스러운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가 겪고 있는 현실은 실로 비참합니다. 객관적 시선으로 볼 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절망적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세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비록 이 땅에서 이렇게 끊임없이 쫓겨 다니다가 결국 사울의 칼날에 쓰러질지라도, 비록 내가 이러한 고난 속에서 이 땅에서의 생명을 다할지라도 조금도 두렵지 않은 것은, 내가 이곳에서 마지막 호흡을 내쉬고 생명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천국에서 새로운 눈을 뜰 것을 확고히 믿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영원한 집이 나를 위해 예비되어 있음을 의심 없이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곳에서 겪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의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시편 23편 6절에서도 그는 동일하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의 중심 주제가 바로 이것이 아닙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그 유명한 고백 말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이 땅에서는 실로 부족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물질도 충분하지 않고 권력도 미약하며 힘도 능력도 의지할 곳도 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 하늘의 소망을 굳게 붙들고 있으면 그곳에서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다윗이 지금 이러한 절체절명의 극한 상황을 이토록 아름다운 시편으로 노래하고 영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호와의 집, 천국의 소망을 마음 깊이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망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우리가 품고 있는 소망이 오직 이 땅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우리는 안타깝게도 현세주의자들일 뿐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위인들 한 분 한 분의 삶을 살펴보면, 이 땅에서 그들의 소망이 있는 그대로 성취된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 역시 적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분을 생각해보십시오. 평생을 오직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한 영혼 한 영혼을 전도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헌신하셨는데, 그분의 최후는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비참한 죽음이었습니까? 베드로도, 스데반 집사도, 수많은 사도들도 순교의 피를 흘리며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왜 저토록 억울하게 죽어야만 하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담대하고 평안하게 이 세상과의 이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오직 여호와의 집, 영원한 천국에 대한 확고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작은 유익 앞에서 지나치게 기뻐하지 않으며 작은 손실 앞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은, 여호와의 집, 천국의 소망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심령 깊은 곳에 천국 소망이 풍성히 넘쳐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야만 이 별것 아닌 세상의 일들 때문에 불필요하게 고통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물질이 조금 있으면 궁핍한 이들에게 기쁨으로 나누어주고,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그 귀한 시간으로 이웃을 섬기며, 건강이 허락되면 몸이 아프고 연약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여유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천국 소망이야말로 믿음의 백성들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영적 무기가 됩니다.
만약 천국 소망이 우리 안에 없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인생의 전부이자 마지막이라고 여기게 되어, 얼마나 현실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겠습니까? 이 현세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적지 않게 목격하지 않습니까? 집착하는 인생만큼 추하고 악한 모습은 없습니다. 부디 우리의 인생 전체에 천국 소망이 넘치도록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굴
다윗은 천국 소망을 가슴에 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뵐 그 영광스러운 날을 이렇게 기대합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 27:8)
천국에 이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얼굴을 제한 없이 바라볼 수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면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며 기다렸던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찬양하고 함께 노래하며 예배드리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누리게 됩니다. 천국 소망이란 결국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 뵙는 것, 그분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지금 이러한 위기의 순간, 악인들이 그의 살을 뜯어먹으려 하고 군대가 그를 죽이려고 진을 치며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는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천국 소망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합니다. 부디 오늘 우리도 하루를 살아갈 때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심령으로 살아가며, 천국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 우리 삶에 깊은 여유를 선사합니다. 다윗을 에워싼 현실은 실로 숨 막히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악인들이 그의 살을 뜯어먹으려 하고 군대가 그를 제거하려고 진을 치며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의 심령에는 평안과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흔들림 없는 안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여호와의 집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호와의 집에서 마주하게 될 하나님의 거룩하신 얼굴을 소망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천국 소망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가 됩니다. 우리는 천국 소망을 품고 있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소유하지 못한 것들을 더 움켜쥐려고 아귀다툼하며 지내왔습니다. 오늘 이 하루를 시작할 때, 넓고 넉넉한 마음, 천국 소망으로 충만한 심령을 가지고 시작하며, 하루 종일 우리 안에 참된 여유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천국 소망을 진정으로 소유한 이는 물질이 조금 있으면 궁핍한 이들에게 기쁨으로 나누어주고,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섬김으로 그 시간을 투자하며, 건강이 허락되면 연약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아름다운 여유를 누립니다.
셋째는 고난의 시간을 천국 소망으로 승리합니다. 천국 소망과 부활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이 땅에 낮아지사 고난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며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그 믿음을, 우리도 깊이 본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고난과 연단의 시간들을 천국 소망을 굳게 붙들고 넉넉히 이겨내는, 참된 믿음의 백성들로 서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