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손
시편 28편
같은 물건이나 도구라 할지라도 누가 그것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목적과 용도를 갖게 됩니다. 요리사의 손에 들린 칼은 수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음식을 만드는 아름다운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강도의 손에 들린 칼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야구선수가 휘두르는 방망이는 안타와 홈런을 만들어내며 팀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훌륭한 도구가 되지만, 범죄자의 손에 들린 방망이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로 변질됩니다. 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돈 그 자체에는 선악의 구별이 없으나, 선한 이가 가진 돈은 사회 경제를 윤택하게 하는 축복의 도구가 되는 반면, 악덕 사채업자가 가진 돈은 사람의 생명을 짓밟는 저주의 도구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시편 28편에는 세 가지 종류의 손이 등장합니다. 다윗의 손과 악인의 손, 그리고 여호와의 손입니다. 같은 손이지만 다윗의 손과 악인의 손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악인들이 하나님의 손을 어떻게 외면하는지가 이 시편의 핵심 주제입니다.
부르짖는 다윗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시 28:1)
다윗은 절박하게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께서 자신에게 잠잠하시면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보아, 지금 다윗은 정상적인 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깊은 고통의 나락에 빠져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다"는 절절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을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일생 가운데 가장 깊은 어둠의 계곡이라고 하면 두 시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장인인 사울 왕에게 쫓겨 광야를 떠돌던 때이고, 다른 하나는 말년에 아들 압살롬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다시 광야로 내몰린 때입니다. 이 둘 중 어느 상황인지 특정할 수는 없으나, 이 두 고통은 다른 어떤 고난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둘 다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받는 배신의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의 장인이었습니다. 그의 장인이 다윗을 죽이려고 십 년 넘게 집요하게 추격했으며, 광야 구석구석까지 쫓아다니며 그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끊임없이 악한 계략들을 펼쳤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깊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주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면 자신이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다름없다고 절규했습니다. 압살롬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자식에게 왕위를 빼앗긴 이 치욕 역시 비교할 수 없이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따가웠겠습니까? 젊어서는 장인에게 쫓겨 다니고 늙어서는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했다는 비난의 칼날이 그의 마음속 깊이 비수처럼 꽂혔을 것입니다. 육체적 고통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심리적으로는 더욱 평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왕의 체면과 위엄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다윗은 이러한 극심한 고통을 오랫동안 견디고 있었습니다.
지성소를 향한 손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시 28:2)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응답하고 대처했습니까? 그는 무엇보다 먼저 방향을 정했습니다. 주의 지성소를 향했다고 고백합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지극히 거룩한 영역입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대제사장이 되지 않으면 지성소에는 감히 발을 들여놓을 수조차 없습니다. 다윗이 지성소를 향하여 방향을 전환했다는 것은 실로 의미심장한 영적 선택이었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고, 그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의 두 돌판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성소를 향했다는 고백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시선을 전환했다는 뜻입니다. 원수를 향하여 바라보고 있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장인을 응시하고 있으면, 아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목도하고 있으면,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라 감당할 수 없거나 혹은 절망에 빠져 침몰할 수밖에 없기에, 그는 과감히 말씀을 향하여 얼굴을 돌렸습니다. 방향의 전환이 곧 돌파구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고통에 직면하고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게 할 때, 그 사람을 향하여 응시하고 있으면 마음이 어떠합니까? 어떤 이는 마음이 산산조각 난다고 하고, 어떤 이는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 없다고 합니다. 두 반응 모두 우리를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그 순간,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시선을 전환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향하여, 지성소를 향하여 방향을 바꾸고 고개를 돌리면, 바로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던 방향과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진리라고 고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며 고난을 겪을 때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이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지만, 주의 말씀을 바라볼 때는 그 말씀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자기 손을 들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든다는 표현은 곧 전적인 항복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군대 장관 출신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 당시에도 그는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이었습니다. 그가 손에 무기를 들고 원수를 향하면 못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전쟁에 능한 장군인 그가 칼을 빼들고 활을 겨누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어떠한 무기도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두 손은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높이 들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항복한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긴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문제가 있고 고통이 밀려올 때 자기 손으로 무기를 움켜쥐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항복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해 주실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편 23편 5절에서 다윗은 원수 앞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아름답게 노래했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5)
다윗이 원수를 향하여 손을 들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다윗에게 풍성한 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오히려 그에게 영광스러운 승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다윗의 손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높이 들린 손이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어떠한 무기도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악인의 손과 하나님의 손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시 28:4)
그렇다면 악인의 손은 어떠합니까? 다윗을 괴롭게 하는 악한 자들의 손이 지은 것이 무엇입니까? 악한 이들이 손으로 지은 것은 오직 악한 일뿐입니다. 악한 자들의 손에는 악독이 가득하고, 그들의 손에는 살상의 무기가 단단히 움켜쥐어져 있습니다. 사울도 그러했고 압살롬도 그러했으며, 다윗 주변을 에워싼 악한 무리들이 흉기를 손에 들고 선량한 이들을 위협하며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다윗의 손은 지성소를 향하여 높이 들려 있지만, 악인들의 손은 다윗을 향하여 무기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들의 손이 지은 악행을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갚아달라고 기도합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결국 사울도 패망했고 압살롬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으며, 다윗을 죽이려 했던 모든 악한 자들은 스스로 파멸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결국 다윗의 손과 악한 자들의 손, 무기를 내려놓은 손과 무기를 움켜쥔 손 중에서 누가 승리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을 높이 들어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전적으로 항복하는 그 손의 위력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우리는 목도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손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혹시 우리 손에 사람을 위협하는 무기를 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손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악을 짓는 일로 전락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히려 우리의 손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높이 들려, "하나님, 제가 항복합니다. 내 마음에 품었던 악한 생각들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려 주시고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제압해 주시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승리를 허락하소서"라고 고백하는 귀한 기도의 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28:5)
여기서 "그들"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바로 악인들입니다. 악한 자들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으로 지으신 것이 무엇입니까? 천지창조의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만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손으로 직접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손으로 지으신 것,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손으로 빚으신 이 귀한 존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파멸시키려 합니다. 다윗의 원수들이 하나님께서 손수 빚어 만드신 다윗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손은 창조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있는 모든 피조물을 멸시하고 파괴하려 하는 악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어찌 그냥 두시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있는 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빚으신 피조물들입니다. 나의 길에 걸림돌이 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의 몸에,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 안에 새겨져 있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지으셨으니, 그들이 지금은 악한 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려 주시고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사랑으로 품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여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다윗은 원수를 향하지 않고 지성소를 향했습니다. 언약궤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여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문제가 밀려오고 어려움이 엄습하며 주변의 악한 자들과 원수가 우리를 시험할지라도, 과감히 방향을 전환하고 고개를 돌려 지성소에 안치된 언약궤를 향하여, 말씀을 향하여 우리의 눈을 들어야 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향하여 손 들고 전적으로 항복해야 합니다. 다윗의 손에는 어떠한 무기도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두 손은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높이 들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손처럼 보일지라도, 기도하는 손에는 하늘의 능력이 임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손 들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은총으로 우리를 친히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 손에 세상의 무기를 움켜쥐지 말고, 하나님을 향하여 항복하며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는 깊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외면하고 멸시하며 파괴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손으로 빚으신 귀한 피조물임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지금 악한 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려 주시고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구하며,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으로 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창조의 손이시기에, 우리는 그 손으로 빚으신 모든 사람을 귀히 여기며 그들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고 헌신하며 중보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손들이 있지만, 우리 모두는 다윗의 손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높이 들려진, 기도하는 거룩한 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