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자유
시편 2장
어린아이들에게 엄중하게 경고하고 절대로 이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거듭해서 다짐받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주장대로 행하여 결국 문제를 일으키고 사고를 치면, 그때 부모들과 주변 사람들이 그 어린 자녀에게 똑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자고 이런 일을 했느냐",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했느냐",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하고 말았느냐"고 묻습니다.
과거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겨울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 얼음이 언 저수지에서 썰매를 탔습니다. 그때는 실내 아이스링크도 없고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도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겨울에 놀거리가 없어서 얼음이 언 저수지에서 썰매를 타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기겁을 했습니다. 저수지의 얼음이 깨어지기라도 하면 거기 빠지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절대로 저수지에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얼음이 언 저수지에서 썰매를 탔습니다. 그러다가 잡히면 등짝을 두들겨 맞고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하느냐"고 혼이 났습니다.
그런 느낌의 "어쩌자고" 하는 말을 오늘 이 본문의 시편 기자가 세상의 군왕들과 하나님을 등지는 자들을 향하여 쏟아내고 있습니다.
헛된 일을 꾸미는 자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시 2:1)
"어찌하여"라고 번역되었지만 사실 이 말은 "람마"라는 히브리어로 "어쩌자고"하는 말로 옮기면 훨씬 더 그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어쩌자고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고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하나님 앞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분노하며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나타내고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려고 하는가? 하나님 앞에서 어쩌자고 이런 일을 하는가? 시인은 이렇게 깊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혹은 하나님을 인식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벗어나고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주장을 큰 소리로 떠들어댑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주장을 큰 소리로 나타낼 뿐만 아니라 헛된 일을 꾸미고 헛된 일을 도모합니다.
그런데 여기 "꾸미다"라는 단어가 실로 의미심장합니다. "꾸미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하가"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어 "하가"라는 말은 이미 우리가 시편 1편 2절에서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 묵상하다라는 단어가 바로 히브리어 "하가"였습니다.
얼마나 의미심장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넣고 조용히 읊조리고 있으면 그것은 묵상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생각, 세상 일, 헛된 일을 자기 입에 넣고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으면 그것은 헛된 일을 꾸미는 것이 됩니다. 똑같은 단어인데 똑같은 단어 "하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면 거룩한 묵상이 되고 세상 일을 입에 두면 헛된 일을 꾸미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묵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헛된 일을 꾸미고 있는 중입니까? 여기서 헛된 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이 모든 것들을 다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 특별히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내 입에 두고 내 마음에 두고 우리 생각에 깊이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고 읊조리고 묵상하는 자는 삶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게 됩니다. 향방 없는 자처럼 살지 않고 어떤 방향이 올바른 길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기억하며 그 방향으로 길을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고 읊조리고 하가 하는 사람들은 믿음의 뿌리를 깊게 깊게 내리는 좋은 나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들을 입에 두고 읊조리고 그것을 씹고 또 생각하고 있으면, 그러면 그 모든 일들은 헛된 공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아닌 세상 것들이 얼마나 헛되고 허무합니까? 물질로 큰 집을 짓고 권력으로 집을 짓고 내 공상으로 그 모든 것들을 도모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한 번 바람을 일으키시면 모든 것이 다 한순간에 날아가는 허사가 되지 않습니까?
시인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쩌자고 세상의 군왕들,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그런 일 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결박을 벗어버리려는 자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시 2:2)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어떻게 이들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을까요?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를 대적합니다. 다윗 왕을 대적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셨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삼중직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는 왕이시오, 제사장이시오, 선지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고 다윗왕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시 2:3)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매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받아서 전한 모세의 율법, 다윗왕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섭리대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이것이 답답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맨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버리자, 우리가 자유하자고 외칩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대적합니다. 그런데 율법 안에 있는 것이 자유롭습니까? 율법 밖으로 나갈 때가 자유롭습니까? 아담과 하와를 보시면 명백해집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살았습니다. 거기는 모든 것이 다 그들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단 한 가지, 선악과는 먹지 말라. 선악과는 에덴 동산 한가운데 두셨습니다. 에덴 동산을 지날 때마다 선악과 나무가 보이고 선악과 열매가 보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통치를 기억합니다. 이 모든 것을 나에게 주셨지만 이것만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신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뱀이 유혹합니다. 너 그것 때문에 자유롭지 않구나. 저것 먹으면 하나님처럼 높아지고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고 모든 것을 환히 볼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들은 답답해서 선악과 열매에 손을 댔습니다. 자유롭기 위해서. 그런데 그것 먹고 자유했습니까?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죄에 매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단코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에덴 동산 율법 안에 있을 때, 말씀 안에 있을 때 그들은 자유로웠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을 보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참으로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보혈의 피의 능력 아닙니까? 보혈의 피 능력 안에 있어야 우리가 죄의 권세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롭습니다. 예수님을 떠나 살면 자유할 것 같은데, 실상은 죄에 구속됩니다. 죄의 노예가 됩니다.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합니다. 죄짓는 것이 자유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죄짓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죄짓다 보면 죄에 매여서 삽니다. 죄에 매여서 벗어나려고 하되, 떠나려고 애써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중독에 빠지면 중독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것과 똑같지 않습니까?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죄지으라고. 그것이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이것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고,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것이니 죄 지으라고, 결박을 벗어버리라고, 율법 안에 매여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유혹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참으로 자유합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의 보혈의 공로, 십자가 아래 있을 때 우리는 죄에서 자유롭고 죽음의 권세에서 진실로 자유할 것입니다. 그런 자유가 우리 믿음의 백성들의 영원한 자유의 언약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비웃으시는 하나님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시 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십니다. 그런데 그 웃음은 호탕한 웃음이 아니고 즐거운 웃음이 아니고 비웃음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 하나님이 어찌하여 비웃으십니까?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결박을 벗어버리고 그들이 자유하자고 외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비웃음이 나는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살면 그들은 죄의 노예가 되는데 어찌하여 그렇게 사는지, 하나님은 한탄하시다가 이제는 헛웃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최후의 방법으로 이렇게 하십니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시 2:9)
철장으로 깨뜨리고 질그릇같이 부수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그릇입니다. 인간은 원래 흙으로 빚어졌습니다. 인간의 원래 재료가 흙 아닙니까?
흙은 티끌이고 먼지입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님을 자기 눈으로 뵈었고 하나님께 고백할 때 그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내가 티끌과 재 가운데서 스스로 회개한다"고 말했습니다.
티끌은 자신의 존재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죽음 이후에 사람을 다 태우고 나면 한 줌 재밖에 남지 않습니다. 존재의 근원, 원래 내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는 결단이고 회개의 언약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 주장을 도모하고 자기가 하나님 없이 사는 것같이 사는 자들을 질그릇같이 부수어 버리겠다, 원래 너의 존재 근원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고난이 선포되는 일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철저한 밑바닥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낮추시는 분입니다. 교만에서 눈이 하늘 끝까지 가 있는 자들을 하나님은 낮추시고, 또 낮추시고, 나의 존재 근원이 원래 티끌이었음을 하나님은 끊임없이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 2:11-12)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여호와께 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 날개 그늘 아래 들어가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시편 전체는 복 있는 자를 노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자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 하나님께 뿌리를 깊이 내리고 나무가 되어서 열매를 맺는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시편 2편에서 진정으로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 여호와께 피하는 자,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자, 그 안에서 진리를 경험하는 자, 그가 참으로 복 있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머금고 있을 때 우리는 진실로 묵상하는 자가 되고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참된 진리 안에 사는 자가 됩니다. 똑같은 히브리어 "하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면 거룩한 묵상이 되고, 세상 일을 입에 두면 헛된 일을 꾸미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입술에 생명의 말씀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둘째는 우리는 진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율법 안에 있을 때가 진정한 자유입니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 어리석은 자들이 예수님을 거절했던 것처럼, 모세의 율법을 거부했던 것처럼, 다윗의 통치를 거절했던 것처럼 미련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우리에게 있으며 진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자유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진리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는 여호와께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비웃으시고 철장으로 깨뜨리시고 질그릇같이 존재의 근원으로 돌리시는 일, 그런 심판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전에, 그렇게 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날개 그늘 아래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복된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