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께 피하오니
시편 31편
인생을 고해(苦海)라 일컫습니다. 삶의 여정이 깊어갈수록 이 표현이 지닌 무게를 절감하게 됩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은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듭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가 바다의 거대하고 압도적인 힘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평상시 잔잔하고 따뜻하던 바다도 바람이 몰아치고 풍랑이 일면 감당키 어려운 위협으로 돌변합니다. 그러나 먼 바다를 오래 항해하다 보면 경험에서 우러나온 패턴과 지혜가 쌓이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생존할 수 있는지, 삶의 연륜이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불어닥치는 고난에 대처하는 양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이는 고난이 다가올 때 자신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면으로 맞서 돌파하려 합니다. 어떤 이는 고난 앞에서 우선 우회로를 찾으며 돌아가거나 피해 가는 길을 모색합니다. 또 어떤 이는 그러한 어려움이 예견되는 사람이나 장소를 아예 멀리하며, 관계 자체를 단절함으로써 고난의 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애씁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시편의 다윗은 고난에 어떤 자세로 임했습니까?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온갖 종류의 고난을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 대처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시 31:1)
다윗이 고난에 대처하는 방식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피신하여 그는 안전한 피난처를 확보하고, 그곳에서 안식을 누리며 고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견고한 산성
다윗은 또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시 31:2)
그는 하나님을 견고한 바위라 칭하고 구원하는 산성이라 노래합니다. 견고한 바위, 구원하는 산성이라는 표상 자체가 얼마나 든든합니까? 산성 안으로 피신하면 원수가 뒤쫓아 와도 그 견고한 성벽에 가로막혀 침입할 수 없습니다. 견고한 바위 뒤에 몸을 숨기면 원수의 칼날과 화살이 그 반석을 관통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안전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품는 심상일 뿐,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존재 자체가 우리 손에 감촉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피할 수 있으며, 그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실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그가 주께 피한다는 것이 곧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숨 쉴 여지가 열리고 피신할 거처가 마련됩니다. 사실 그가 사울을 피해 전전했던 곳은 광야였습니다. 광야에 은신처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 몸 하나 감출 곳조차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광야를 홀로 떠돌지 않았고, 아둘람 굴에서 합류한 사백 명의 용사들과 동행했습니다. 그 사백 명은 세월이 흐르며 점차 늘어나 결국 육백 명에 이르렀습니다.
광야를 유랑하는 이 육백 명의 무리가 어디에 몸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은신하고 싶어도 피신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산세가 험준한 지형도 아니고, 바위 뒤에 몸을 감춘다 해도 곧 발각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은신이 가능했고 피신이 이루어진 한 가지 이유는 바로 기도였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여시고 숨을 곳을 예비해 주시며 원수의 눈을 가려 주셨던 것입니다.
기도는 결코 소극적인 방편이 아닙니다. 다윗이 평생 전장에서 살아가며 온갖 역경을 헤쳐나갈 때,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전투를 수행하는 방략과 승리를 쟁취하는 길을 다윗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볼 때,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견고한 바위가 되시고 구원하는 산성이 되신다는 진리를 몸소 체득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이른 새벽 기도하고자 이 자리에 나온 이유가 바로 이 때문 아니겠습니까? 인생을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고난들과 어려움들이 집채만 한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드는데, 그것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오직 기도에서 나옵니다. 연약한 존재인 우리가 강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입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통로가 기도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엎드려 기도하며, 그 기도를 통해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을 우리의 피난처로 확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기도를 통해 새로운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시며 다시금 용기를 북돋워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혼을 부탁하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시 31:5)
다윗은 고난을 겪을 때 가장 염려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영혼이었습니다. 육체의 고난은 몸만 건강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상처 입고 병들어버리면 고난을 헤쳐 나갈 힘 자체가 고갈됩니다. 그래서 고난이 다가올 때 그가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자신의 영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돌보시고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정신만 또렷이 차리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영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소한 고난에도, 작은 문제에도 쉽게 넘어지고 쓰러지며 방향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영혼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치르고 극심한 빈곤의 세월을 견디던 20세기, 그 고난의 시간 동안 이 땅의 교회가 우리 민족의 영혼을 지키고 어루만져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로 모여들었고,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말씀을 듣고 기도함으로써 그 고통의 시절을 이겨냈습니다.
영혼은 우리 인생의 뿌리와도 같습니다. 뿌리만 온전하면 나무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뿌리만 견고하게 깊이 뻗어 있으면, 그 나무는 시들어 보일지라도 다시 소생하고 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고난이 닥칠 때 가장 섬세하게 돌보아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영혼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고 노래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가 부족함이 없는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을 돌보고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도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내 영혼을 돌아보고 들여다보며 어루만지고 다듬으며 돌보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세워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몸이 고단하고, 물질적 어려움을 겪으며, 인간관계로 인해 마음이 피폐해질지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소생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영혼을 의탁했던 것처럼, 우리의 영도 하나님께 부탁하여 새로운 승리와 소생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보시는 하나님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시 31:7)
고난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토록 극심한 고난이 있어 견고한 바위요 구원하는 산성 되신 하나님께 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데,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께서 내 고난을 보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고난에서 건져주셨기에 내가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하면 자연스러운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고난에서 건져주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 이유는 오직 주께서 내 고난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이처럼 고백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만일 내가 죄를 지어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지켜보고 계신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고 종국에는 끝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바로 그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픈데 원인을 모르는 것처럼 답답한 일이 없습니다. 여기저기 아픈데, 아무리 뛰어난 병원을 찾아가도 아무리 탁월한 의사를 만나도 도무지 왜 아픈지 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불안이 치솟아 오릅니다. 그러나 중병이라 할지라도 원인과 이유가 명확하고 처방과 치료법이 분명하다면 그다지 두렵지 않습니다.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고난과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지켜보고 계신다면, 그것만으로도 견딜 만합니다. 이것이 내 죄로 인한 것이라면 징벌이 끝난 뒤에는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내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훈련이 완성된 후에는 나는 더욱 성숙해 있을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러한 통 큰 믿음과 넉넉한 신뢰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고난에 대처하는 다윗의 이 자세를 깊이 새겨두시고, 우리 인생에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엄습해와도 기도로 돌파하며 기도를 통해 숨 쉴 여지를 확보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난이 올 때 하나님께 피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인생의 고난이 닥쳐올 때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하나님은 견고한 바위가 되시고 구원하는 산성이 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피할 길이 열리고 숨을 거처가 마련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고난을 극복해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앞에 고난이 닥쳐올 때 이리저리 분주히 뛰며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을 잊고 절망하며 낙심하여 주를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입술의 원망을 그치고 사람을 찾아 헤매는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며 주께 피하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고난 가운데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지켜달라 간구했으며, 기도할 때 고난을 받는 중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난을 지켜보고 계심에 안도와 위로를 얻었습니다. 영혼은 인생의 뿌리와 같아서, 영이 다치면 그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소생케 하셔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가 이 자리에 기도하러 나왔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 인생에 주께서 성령 충만한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보고 계심을 믿고 기뻐해야 합니다. 다윗은 아직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난을 지켜보고 계시며 환난 중에 있는 자신의 영혼을 아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통 큰 믿음이요 넉넉한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보고 계시면, 그 고난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종국이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우리의 어려움을 주께 의탁하고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