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2편

성경
시편1권

죄사함의 복

시편 32편

우리가 통상적으로 품는 복의 개념은 부와 권력, 명예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계시하는 복의 본질은 이러한 세속적 가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에 자리합니다. 시편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는 '복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근원적 물음이며, 시편 1편은 이 복의 정의를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자리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야말로 진정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길어 올려 그 생명수를 마시며 자라고, 때를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반면 악인은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아서, 방향 없는 자유는 있을지언정 열매는 전혀 없으며, 뿌리가 없기에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허망한 존재입니다.

죄용서의 행복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시편 32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또 다른 차원의 정의를, 다윗의 뼈저린 실존적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 다시 말해 죄 용서받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치열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은 영적 통찰입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이라는 인생의 가장 치욕스러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욕정을 품어 그녀를 불러들여 간음의 죄를 범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밧세바로부터 임신 소식이 전해지자, 다윗은 죄를 은폐하기 위해 전쟁터에 있는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급히 소환했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군인이었던 우리아는 동료들이 전장에서 고난받는데 자신만 편안히 집에서 쉴 수 없다며 왕궁 문 앞에서 잤고, 다윗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다윗은 더욱 악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아를 전쟁터의 가장 치열한 최전선에 배치하라는 밀서를 사령관에게 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살인 교사였습니다.

간음과 살인이라는 두 가지 중대한 죄를 저지른 후, 다윗은 그 죄를 은폐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최고 권력자가 덮어버린 죄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감히 의심하거나 추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의 은밀한 죄를 백일하에 드러내셨습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유일한 어린 암양을 빼앗아 손님 접대에 사용했다는 비유를 통해, 나단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준엄하게 선포했습니다. 그제야 다윗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토설하며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후에 그가 경험한 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이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이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은폐하고 있을 때, 내 죄를 다른 사람은 모를지 몰라도 나 자신과 하나님만은 정확히 알고 계신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밥을 먹어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즐거운 일을 보아도 마음이 기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가 가려진 이후에 깨달은 것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이라는 심오한 영적 진리였습니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2)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이 말씀의 깊은 의미는 무엇입니까? 정죄란 죄가 있다고 고발하고 판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며 빠짐없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있다고 하시면 그것은 실제로 죄가 있기 때문이며, 죄가 없다고 하시면 정말로 죄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죄 없는 자에게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러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정죄를 당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죄를 토설하고 진심으로 회개하여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죄를 짓고 난 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받은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경험했고, 그 자유를 복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회개 없는 자의 고통

다윗은 자신이 죄를 짓고 나서 회개하지 않았을 때 겪었던 극심한 고통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시 32:3-4)

'입을 열지 않을 때'라는 표현은 죄를 인정하지 않을 때, 고백하지 않을 때, 용서를 구하지 않을 때를 의미합니다. 사무엘하를 읽으면서는 다윗이 이러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외형적으로 그는 밧세바 사건을 은폐하고 우리아 살해를 성공적으로 감추고 여전히 왕으로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뼈가 쇠하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양심이 살아 있는 자만이 경험하는 거룩한 고통입니다.

신앙양심이 살아 있을 때, 우리 마음속에 계신 성령께서 활발하게 역사하시며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괴롭다는 것은 아직까지 내 영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다윗은 밧세바 사건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와중에도 여전히 그의 양심은 살아서 그를 괴롭혔습니다. 입을 열지 않고 토설하지 않고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신호를 주시고 마음을 찔러주실 때 그는 깊은 고통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가 입을 열고 솔직하게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반면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은 어떠합니까? 입을 열지 않고 고백하지 않아도 전혀 양심의 가책이나 신앙양심의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받았을 때, 그 명령은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명령을 선택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아말렉을 멸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눈에 탐스러워 보이는 것들, 곧 좋은 양과 소, 그리고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찾아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을 책망했지만, 사울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온갖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했고, 백성들을 탓하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그는 인정하지 않았고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가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화인 맞은 양심의 무서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는 죄를 짓고 난 후에 마음속에 가책이 있을 때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주시는 거룩한 신호입니다. 그때 즉각 회개해야 합니다. 즉시 하나님 앞에 입을 열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되고 그 자유가 곧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시 32:4)

주의 손이 다윗을 주야로 압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처럼 그를 계속해서 누르시는 것입니까? 회개하라고, 돌이키라고,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까 지속적으로 주의 손이 그를 압박하고 짓눌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한동안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자, 마침내 하나님은 때가 무르익었음을 아시고 그의 선지자 나단을 보내신 것입니다.

즉각적인 사죄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시 32:5)

이 구절에서 '곧'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죄악을 숨기지 않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곧', 다시 말해 '즉시'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죄 용서에는 유보나 지체가 없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마치 기다리셨다는 듯이 즉각 우리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다윗이 이 놀라운 사죄의 은총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너무나 감격스러웠기에 이 시를 지어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동시에 모든 이들에게 죄 용서야말로 진정한 복이라는 것을 선포하며,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죄 사함의 은총을 경험하라고 간곡히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러한 자유와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다윗은 죄 용서받은 후 완전히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시 32:6)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은 자를 특별히 지켜주십니다.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 재앙으로부터 그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의 자녀됨을 다시 인정받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고 돌봐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자녀됨의 특권을 온전히 누리기를 원한다면, 작은 죄부터 큰 죄까지 하나님 말씀이라는 거울에 날마다 자신을 비추어 보고 매일같이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3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를 살다 보면 우리의 발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 몸에 영적인 때가 묻고 죄가 우리를 뒤덮고 지나갑니다. 그때마다 하루를 시작할 때 혹은 하루를 마칠 때, 그날 지은 죄들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바라보고 회개한다면,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 자녀됨의 특권을 새롭게 깨닫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의 은총과 용서의 특권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매 순간 누려야 하는 필수적인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고 말씀을 통해 자신을 비추는 훈련, 이러한 영적 작업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시 32:10)

여기서 말하는 악인이 과연 누구겠습니까? 시편 32편의 문맥에 따르면, 악인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입니다. 시편 1편에 의하면 악인은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은 사람입니다. 악인이란 흉악하게 칼을 들고 누군가를 위협하는 폭력적인 존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악인은 항상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하는 자, 회개를 거부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악인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복은 부와 명예와 권력과 관계되어 있지만, 성경이 선포하는 복은 죄 용서받는 것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가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밧세바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인생의 가장 귀한 진리였습니다.

둘째는 영적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를 확인해야 합니다. 죄를 짓고 나서 마음이 괴롭고 양심에 가책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우리의 신앙양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뼈가 쇠하는 듯한 고통과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는 압박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은혜의 표징입니다. 사울처럼 화인 맞은 양심으로 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실 때 즉시 응답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셋째는 매일의 회개가 필요합니다. 하루를 살다 보면 우리의 발이 더러워지듯이, 우리의 삶에는 크고 작은 죄가 끊임없이 묻어납니다. 하나님 말씀의 거울에 날마다 자신을 비추어 보고 회개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 자녀됨의 특권을 누리는 길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는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안전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를 사방으로 두를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입술에 진실한 회개가 항상 있어서, 죄 사함의 복을 날마다 누리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발이 닿는 모든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머물러 주시며, 우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과 칠배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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