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이유
시편 33편
평생을 함께 동행하며 걸어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더없는 행복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에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하나 둘씩 우리 곁을 떠나고 관계는 점차 멀어져 갑니다. 친구들과의 이별에는 저마다 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추구하는 가치관의 차이, 인생관의 불일치, 물리적 거리의 확대 등 여러 요인들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곁에 남아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깊이 교감할 수 있는 귀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함께 식탁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차 한 잔의 여유를 함께하는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이겠습니까?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흉허물없이 진솔한 교제를 이어갈 수 있다면, 그 관계 속에는 반드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서로가 지닌 미덕을 존중하고, 함께 있어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편안함이 있기에 우리는 오랜 우정을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본질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의 여정을 시작하는 이들은 적지 않으나, 그 걸음이 생의 마지막까지 지속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평생에 걸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동행하고, 그분과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 오랜 세월 동안 동행하며 서로 교제하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그 관계 속에 분명한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송할 이유, 하나님과 교제할 이유를 명확하게 기록해두고 있습니다.
정직과 진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시 33:1)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찬송하는 삶, 그것은 피조물의 근본된 소명이자 존재의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여호와를 진정으로 기뻐하며 찬송하는 이들을 그리 많이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순간적인 열정으로 반짝이는 이들은 있을지 몰라도, 이러한 태도를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그를 찬송하는 이유를 고백적 어조로 이렇게 드러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시 33:4)
정직과 진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정직하고, 행하시는 모든 일이 진실하십니다. 시인이 평생에 걸쳐 하나님의 정직과 진실하심을 체험하며 누리고 살았기에, 그는 하나님과 오래도록 깊은 교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정직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는 진실함이 충만합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본성은 이와 사뭇 다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불리한 상황을 마주하거나 어려운 일을 만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회피하려는 성향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우리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고자 애쓰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깊이 교제해보면, 그분은 결단코 그러한 방식을 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직하고 진실하십니다. 예외 없이,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이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정직한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위로를 받고 싶어 할 때, 하나님께서는 때로 추상같은 나무람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지금 그렇게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나님은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정직하게, 진실하게 직언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그 찔림이 너무도 아파서 우리는 "하나님, 저를 좀 위로해 주시면 안 됩니까?"라고 호소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결코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주저앉아 있는 우리를, 쓰러지고 넘어져 있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실 때, 위로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정직하게 자신을 직면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매 순간 우리에게 임합니다. 시인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체험하며, 하나님은 정직하고 진실하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공의와 인자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며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시 33:5)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며, 동시에 세상에는 그분의 인자하심이 충만합니다. 공의와 정의, 그리고 인자함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날카롭고 엄격한 공의와 정의를 지닌 분이, 동시에 따뜻하고 눈물이 있으며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인자함을 함께 품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우리 주변을 보면, 정직하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사람들 중에 마음이 냉정하고 따뜻하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한없이 인자하고 마음은 너그러우나 질서와 기준이 부족한 이들 역시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와 인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자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는 공의와 인자, 정의와 사랑이 완벽하게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뜨겁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우리 인간, 그런데 이 인간이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철저히 미워하십니다. 죄의 대가는 사망이며, 죄를 지은 자는 마땅히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멸망시킬 수 없으셨습니다. 너무나 깊이 사랑하셨기에 인간을 영원한 멸망의 심연으로 던져 넣을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를 계획하시고, 그곳에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하신 인자와 사랑이 드러난 자리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와 정의가 완전히 성취된 자리입니다. 언뜻 보기에 공의와 정의, 그리고 인자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이를 완벽하게 조화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이야말로 공의와 정의, 인자가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계신 분이라고 고백하며, 바로 이것이 자신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이유라고 말합니다. 결코 치우침이 없으신 하나님, 항상 이 기준을 가지고 언제나 우리를 살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우리 역시 이러한 하나님과 오래도록 깊은 교제를 나누며 우리의 마음을 진솔하게 아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9)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는 그 순간 현실이 됩니다. 시인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깊이 사모합니다. 하나님께서 입을 여시는 순간 모든 것이 실재가 되는 놀라운 능력,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렇게 행하지 않으셨습니까? 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존재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즉시 현실이 되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을 보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나인 성으로 들어가시다가 한 과부의 장례 행렬을 만나십니다. 과부가 하나뿐인 아들을 의지하며 살았는데, 그 청년 아들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과부는 얼마나 슬프게 통곡하고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울지 말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이 "울지 말라"는 말씀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울지 말라 하신 후, 우리 주님은 그 죽은 아들을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반드시 성취되고 책임지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고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은 종종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못합니다. 입 밖에 낸 말을 삼켜버리곤 합니다. 자신이 말을 내뱉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님은 말씀하셨으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 인생에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붙잡고 살아간다면, 그 말씀이 우리 삶에 온전히 성취되고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굽어 살피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시 33:13-15)
이 구절에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굽어 살핀다"는 말씀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찬송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 때문입니다. 굽어 살피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며 필요할 때 개입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조하신 후 "이제 창조했으니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며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세상의 창조와 운행, 그리고 현재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하나님은 항상 눈동자같이 귀히 여기며 굽어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살펴보시다가 문제가 있으면 개입하시고, 개입하시면서 동시에 해결해 주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도 살펴봐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나를 지으셨으며,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우리는 때로 불량품처럼 망가지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상하고 내 몸이 고통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제 나를 살펴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를 당연히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마음도 치유하시고 몸도 회복시키시며,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순간순간마다 우리 인생에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를 버리시겠습니까?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 세상 만물의 창조에 관여하시고 지금도 섬세하게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인생과 늘 함께 동행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정직하고 진실하신 분임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정직하게 말씀하시고 진실하게 대하십니다. 때로는 따끔한 나무람으로, 때로는 따뜻한 위로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평생 동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와 인자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그리고 인자와 사랑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곳입니다. 죄를 철저히 미워하시되 죄인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하나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랑을 날마다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굽어 살피시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고 필요할 때 개입하십니다. 오늘도 우리 인생을 눈동자같이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