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열매
시편 35편
"뿌린 대로 거둔다"는 오랜 격언을 우리는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세월을 거듭할수록 이 진리가 얼마나 정확한 삶의 법칙인지를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학창 시절 성실하게 학업에 정진한 학생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결실을 거두게 되고, 청년기에 선한 씨앗을 부지런히 뿌린 이는 연륜이 쌓일수록 그 수고의 열매를 풍성히 누리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씨를 뿌린 자는 결국 그 악함의 대가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사의 법칙이 그러한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영적 세계 역시 이 뿌린 대로 거두는 원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다윗이 시편 35편을 통해 우리에게 증언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영원한 진리입니다.
원수 앞에서 지혜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시 35:1)
다윗은 지금 원수로 인해 극심한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원수와의 버거운 대결 가운데 있으며, 때로는 도피의 길을 택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만약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 이 원수 문제 앞에서, 다윗은 결국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참으로 탁월한 신앙의 태도입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의 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난제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고집하며 붙들고 있으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우리 자신이 그 문제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 그 문제를 온전히 내어드려야 합니다. 나와 다투는 자와 하나님께서 다투시게 하고, 내 인생의 중대사를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로 숨어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신앙의 길입니다.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시 35:2-3)
다윗이 "나를 쫓는 자"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는 지금 급박한 추격의 대상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버겁고 도저히 풀어낼 수 없었던 난제, 그것은 아마도 사울 왕의 질투와 집요한 핍박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와 대면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을 간절히 탄원했습니다.
솔직한 기도
다윗의 시편은 그 성격에 따라 찬양시, 제왕시, 원수시편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찬양시는 순수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송축한 시편들이며, 제왕시는 왕의 위엄과 권능을 찬양한 시편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이 원수시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수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막연히 "알아서 처리해 주시옵소서"라고 의탁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원수시편은 매우 구체적이고, 때로는 과격하다고 느껴질 만큼 솔직합니다.
"내 생명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그들을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몰아내게 하소서 그들의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며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뒤쫓게 하소서" (시 35:4-6)
다윗은 원수가 낭패를 당하고 미끄러져 넘어져서, 자신을 추격하는 것을 멈추게 해달라고 절절히 기도합니다. 얼마나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으면 이토록 강렬하게 표현했겠습니까? 원수라는 존재로 인해 깊은 상처를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은 이러한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시시각각 조여오는 생명의 위협, 아무런 잘못도 죄도 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겪어야 하는 억울한 고난과 부당한 수난, 그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우리를 힘겹게 하는 원수 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를 갚는 권한을 우리에게 결코 위임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원수라 할지라도 내 손에 피를 묻히도록 허락하신 일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원수로 인해 괴롭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고상한 미사여구로 꾸며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다윗처럼 날것 그대로, 순전하고 투명하게 우리 내면에 있는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쏟아붓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기도라는 것이 언제나 미사여구로 치장되어야 하고, 고상하게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윗의 시편이 우리에게 이 소중한 진리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격식을 차리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신중하게 가리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염려할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 계획하는 것, 간절히 바라는 것을 낱낱이 살피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순전하게 나아오기를 가장 기뻐하시는 자애로운 아버지이십니다.
"멸망이 순식간에 그에게 닥치게 하시며 그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시 35:8)
다윗은 원수가 완전히 소멸되기를 하나님 앞에 이토록 과감하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깊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신 이유는 바로 이러한 솔직함 때문입니다. 원수를 향한 이 강렬한 표현까지도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내어놓는 그의 투명한 진실성을, 하나님은 무엇보다 사랑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돌아오는 기도
그런데 다윗이 처음부터 원수를 증오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다윗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선으로 대응하려 노력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시 35:13)
다윗은 사울이 병들어 고통받을 때, 금식하며 영혼을 괴롭게 하면서까지 간절히 기도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사울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울이 악한 영에 시달릴 때 다윗이 수금을 타며 위로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 이후에도 사울이 힘들고 어렵고 병들었을 때, 다윗은 금식까지 하며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다윗의 선의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이처럼 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윗은 사울을 향한 중보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기도는 결단코 내 입에서 한 번 발설되면 땅에 떨어져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원수를 위한 중보기도, 나를 이토록 끈질기게 추격하며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이를 위한 중보기도가 그가 받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기에, 그 기도는 내 품으로 고스란히 돌아온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중보기도를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우리는 자신을 위한 기도만으로도 벅찹니다. 내 자녀들을 위한 기도, 내 가정을 위한 기도, 나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지평을 넓히고 기도의 경계를 확장하여 타인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 이것이 실로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그 기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사울처럼 기도를 담을 만한 영적 그릇이 되지 못했다면, 그 기도는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다시 내 품으로 온전히 돌아옵니다. 다윗이 바로 이 놀라운 진리를 체험한 것입니다.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기도는 뿌린 대로 거두는 영적 수확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오늘 이 새벽, 이 자리에 나와서 우리가 소중한 시간을 드리고 건강을 드리며 함께 나를 위해서, 또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가 그 사람에게 응답으로 이루어지면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기도는 결코 허공에 흩어지는 헛된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드린 중보기도가 그분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분의 인생이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을 때, 낙심하고 절망하며 영적으로 꺾이기도 합니다. 다시는 중보기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불안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아직 그 기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갖춰지지 않았고, 그 은혜를 담을 영적 그릇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고백한 그대로, 그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우리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원수 문제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성숙한 믿음을 소유하가 바랍니다. 우리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버거운 문제와 대면했을 때, 스스로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하나님께 그 문제를 온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보호 아래로 숨어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신앙의 자세입니다. 다윗이 원수 앞에서 보여준 이 탁월한 지혜를 우리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투명하게 기도하는 자세를 견지하기 바랍니다. 기도의 본질은 격식이나 미사여구가 아니라 진실한 솔직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낱낱이 살피시는 분이기에,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순전하게 나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고상한 표현으로 치장하는 것보다 진실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어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훨씬 더 기뻐하십니다.
셋째는 중보기도를 멈추지 않는 성숙한 신앙인이 됩시다.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 기도가 상대방에게 응답으로 성취되지 않을 때에도, 그 기도는 땅에 떨어져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옵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영적 원리가 기도의 영역에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를 결코 멈추지 말고 꾸준히 지속해야 합니다.
오늘 이 거룩한 새벽,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사로 상달되고, 온전한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깊이 신뢰하며, 더욱 힘차게 기도하고 간구하는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