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6편

성경
시편1권

주의 날개 그늘

시편 36편

세상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평안하게 살아가고 불필요한 갈등 없이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양함을 인정한다는 것은 타인의 장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동시에 나 자신의 약함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성숙함을 뜻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가질 때 비로소 나의 부족함은 타인의 강점으로 보완될 수 있고, 역으로 타인의 연약함은 나의 은사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호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사회공동체는 다양함 가운데서도 조화롭게 함께 전진할 수 있으며, 갈등은 최소화되고 평화는 증진됩니다. 그러나 만약 다수가 자신들의 힘을 앞세워 횡포를 부린다면, 소수자와 약자들은 살아남기가 극히 어려워질 것입니다.

생태계를 보아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동식물이 공존하며 어우러지는 세계에서 건강한 생태계란 언제나 풍부한 다양성이 보존된 곳입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로 생태계 교란이 발생하면 이 다양성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곧이어 회복 불가능한 재앙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선과 악의 영역은 이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만약 누군가 "세상은 다양하니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음주운전과 마약을 다양성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면, 과연 사회가 이를 용인할 수 있겠습니까? 선과 악은 반드시 명확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빛과 어둠의 세계 역시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빛이 존재하거나 어둠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저절로 물러갑니다. 그러나 빛이 떠난 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직 어둠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는 선과 악만이 엄존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악인과 의인만이 구별됩니다. 하나님 앞의 악인이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기 스스로 주인 되며 자신을 왕으로 삼는 자를 가리킵니다. 반면 하나님 앞의 의인,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란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 속으로 자신을 피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를 성경은 의인이라 부릅니다. 오늘 다윗의 시편도 이처럼 악인과 의인을 명료하게 대비시키며 이분법적 구조로 전개됩니다.

하나님 없는 삶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시 36: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는 것은 영적으로 예민한 자들의 눈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 눈빛에는 거룩한 경외가 사라지고 위험한 광기만 서려 있으며, 선한 빛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곧 그의 내면에 하나님을 모실 성소가 전혀 마련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철저한 자기중심성 속에 살아가는 자, 오직 자신만을 절대적 주권자로 섬기며 살아가는 자를 뜻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시 36:2)

이러한 언행 이면에는 실로 중대한 영적 현실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아직 그에게 임하지 않았다는 것, 더 정확히는 가장 무서운 형태의 심판인 '유기의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려 할 때, 하나님은 즉각 개입하여 제동을 거시고 그를 붙드십니다. 때로는 부드럽게 권면하시고, 때로는 엄하게 책망하시며, 때로는 징계하시면서 그를 돌이키십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심판 아래 있는 자는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다. 나는 심판받지 않는다." 이렇게 고백하고 확신하는 자야말로 실은 가장 엄중한 심판, 곧 하나님께 버림받는 유기의 심판 아래 놓인 자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증언합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시 36:3-4)

악으로 치닫는 길에는 제동이 없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모실 자리가 없는 까닭에, 내면에 하나님을 향한 성소가 부재한 까닭에 오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죄악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의 종말은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생전에는 이렇게 살아간다 해도, 그 영원한 종말은 어떠하겠습니까? 육안으로 보는 죽음의 모습은 모두 동일해 보입니다. 다윗의 임종이나 사울의 최후나, 의인의 죽음이나 악인의 죽음이나 모두 생명의 끝으로 귀결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약하고 한계 지워진 우리 인간의 시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종말은 천양지차입니다.

우리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 소멸되지만, 영혼은 어찌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부인하고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를 거부하며 스스로 왕 노릇 하던 자, 자신이 절대 주권자였던 그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영혼의 향방은 어디입니까?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빚으신 흙과 하나님의 생기인 호흡의 신비로운 결합입니다. 죽음은 그 반대로 이 둘의 분리입니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 그 영혼을 과연 누가 주관하겠습니까? 생전에 스스로 왕이었으나, 죽음 이후 자신의 영혼조차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됩니다. 결국 그 영혼은 참된 왕이신 하나님 앞에 서서 엄정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고대 왕들의 어리석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스스로를 태양신이라 칭하며 백성들을 현혹했습니다.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이 기만을 지속하고자 자신의 육신을 미라로 만들었습니다. 영원불멸하는 신으로 백성들 앞에 군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한 일입니까? 결국 자신의 영혼마저 주관할 수 없는 존재였음이 드러날 뿐입니다. 종국에는 모든 것이 명백히 드러나 천양지차의 결말을 맞이합니다.

주의 날개 아래

그러나 하나님을 내면에 모시고 살아가는 자의 종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참된 왕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의지하여 살아온 자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원한 왕국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국에 이르면, 영원이 시작되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시 36:7)

이것이 곧 의인의 삶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믿음을 소유한 자, 참된 의인의 삶이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는 것이라고. 여기서 '피한다'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의인이란 곧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겸손한 자임을 뜻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자는 자연스럽게 피난처를 찾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홀로 살아남을 수 없기에, 나를 품어주고 보듬어 줄 안전한 처소가 절실히 필요하기에 주의 날개 그늘을 찾아 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날개 그늘은 가시적이지 않습니다.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지도에 표시된 주소로 찾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은밀한 처소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 비밀은 보이지 않는 전능자와 영적으로 교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통로는 오직 말씀과 기도뿐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수직적 은총의 통로요, 기도는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상승의 통로입니다. 이 말씀과 기도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면, 우리는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안으로 담대히 피할 수 있습니다. 이 통로가 막히면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물리적 공간이 아니기에 그곳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항상 깨어 있으라"고 명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말씀과 기도로 끊임없이 교통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연약하고 피곤하며 지칠 때 주의 날개 그늘 안으로 숨어들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그곳에서 생명의 숨결을 마실 수 있습니다.

풍성한 은총

시편 기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시 36:8)

주의 집에 머무는 자는 살진 것으로 풍족함을 누리고,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된다는 이 약속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원천, 곧 주의 말씀을 가리키지 않겠습니까? 시편 1편에서 시편 기자가 선포했던 복 있는 사람,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기억하십시오. 시편 전체를 관통하는 위대한 주제는 바로 이 '복 있는 사람'의 초상입니다.

주의 집에서 살진 것으로 배부르고, 주의 복락의 강물로 목마름을 해소하는 자, 이것이야말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형상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영혼이 살찌고, 그 말씀으로 갈증을 풀며, 하나님께서 풍성히 부어주시는 은혜로 충만하고 넉넉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는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이 있음을 믿습니다.

말씀은 더욱 심오한 진리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 36:9)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본다'는 이 선언이 실로 핵심입니다. 주의 빛, 곧 창조주의 빛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창조의 광명 속에 머물 때 우리는 결코 어둠으로 추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빛을 보게 됩니다.

빛을 보는 자에게는 놀라운 분별력이 생깁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수많은 갈래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심지어 무수한 선택지가 동시에 주어져도 어느 길이 생명의 길이고 어느 길이 사망의 길인지 명료하게 분별됩니다. 왜냐하면 주의 빛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이처럼 결정적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할 때, 기도생활을 소홀히 할 때는 단 한 갈래 길만 있어도 깊은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지금 내가 걷는 이 유일한 길조차 참된 길인지, 계속 나아가도 되는지 확신이 없어 두려움에 떱니다. 염려가 파도처럼 밀려와 영혼을 짓누릅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데도 갑자기 무너질 것 같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주의 빛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주의 빛 안에 머물 때 우리는 어디를 가든 염려와 두려움 없는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 핵심 비결은 바로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위한 넓은 공간을 마음에 마련해 두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연약한 자임을 인정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주의 날개 그늘 아래 부지런히 피할 때, 이러한 헤아릴 수 없는 은총과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자, 참된 의인이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 영혼에 새기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선과 악, 빛과 어둠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는 영적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처소를 영혼 속에 마련하지 않은 악인, 그 악인의 종말은 피할 수 없는 심판이며, 그 심판받은 영혼은 영원한 멸망으로 향합니다. 우리의 현세 삶이 모두 비슷해 보일지라도, 호흡이 멈추는 그 순간 이후의 영원은 천양지차로 갈라짐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의 삶이 악인의 길과 구별되도록 하나님을 기뻐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강함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연약함을 겸손히 인정하며 주의 날개 그늘로 피하는 것,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하며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는 참으로 지혜로운 삶,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된 인생을 영위해야 합니다.

셋째는 주의 빛 안에 거하며 영적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며 시작되는 복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간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오늘이 진정 은혜로운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책임지시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며, 종국에는 영원한 승리를 거두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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