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
시편 37편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익숙해지려 애를 써도 좀처럼 쉽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다리는 일입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스마트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는 기다림이 더욱 낯설고 어려운 덕목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 준비해야 할 음식이라 하더라도 이미 대부분 인스턴트화되어 있습니다. 마트에서 구입하여 전자레인지에 넣고 몇 분만 돌리면 손쉽게 훌륭한 요리가 완성됩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막연히 기다려야 할 필요도 사라졌습니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버스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하고 정확한 시간에 맞춰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즉각적인 편리함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기다림은 더욱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다가옵니다.
기다림 못지않게 실천하기 어려운 또 한 가지는 바로 맡기는 일입니다. 고학력 사회가 된 오늘날,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배우고 풍성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저는 이것을 잘 모르니 도와주십시오"라고 겸손히 도움을 청하거나,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타인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일을 맡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기다리며, 하나님의 강력하신 능력과 완전하신 섭리를 신뢰하고, 그분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생활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악인의 멸망
오늘 우리가 묵상한 시편에서 다윗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깊이 있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 37:1)
악인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왜 악인 때문에 불평하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게 됩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형통하고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악인이 즉시 망하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곧바로 징계를 받는다면, 우리가 무슨 이유로 불평하고 시기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인이 더 번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저 악인을 속히 심판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그러한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런 자들은 거침없이 승승장구하며 더욱 형통하고 번성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는 끊임없이 불평의 말들이 터져 나오고, 오히려 그들을 부러워하는 마음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시기하는 감정도 불쑥불쑥 일어납니다.
다윗에게도 그러한 악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 저토록 악한데도 하나님은 그를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마음 깊은 곳에서도 불평이 솟아올랐습니다. 시기심도 일어났습니다. 때로는 심각하게 혼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미워하시는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더 기뻐하시는가?' 그럴 때면 신앙의 근본적인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 37:2)
다윗은 단순히 독자를 위로하기 위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신이 생생하게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풀과 같이, 푸른 채소와 같이 순식간에 베임을 당하고 마르고 쇠잔해지는 것을 그가 목격했습니다. 자신의 관점에서는 끝없이 긴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결과적으로 세월이 흐른 후 자기 인생을 그토록 괴롭히던 사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았을 때, 다윗은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악인을 완전히 베어버리시고 모든 것을 의롭게 해결하신다는 사실을 생생한 체험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확신에 찬 노래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적극적인 기다림
이러한 상황에서 성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기다림입니다. 그런데 기다림은 겉으로 볼 때 상당히 수동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만 우러러보며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무력하고 나약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다림이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시 37:3)
선을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라고 가르치십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선을 행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리되,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기다리되,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선을 행하며 기다리라는 의미입니다.
사무엘상 23장을 보면 그일라 사람들에 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며 도피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일라 지방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침략을 받았다는 긴급한 소식을 듣습니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그들을 구원하고 싶은 뜨거운 열망이 있었습니다. 가서 그들을 건져내고 싶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직접 맞서 싸워 그들을 쫓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그의 형편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마땅히 왕 사울이 이끄는 정규 군대가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겸손히 여쭙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대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가서 그 일을 담대히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두려움 때문에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합니다. 성실하게 그 일을 온전히 감당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면서, 악인의 멸망을 기다리면서도, 그가 실제로 행한 것은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매 순간 우리는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강력하게 개입하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선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누고 베풀고 섬기고 돕고, 믿음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들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기다리는 자가 지녀야 할 경건한 태도입니다.
예배하는 삶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37:4)
여호와를 기다리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갈망하는 사람이 또한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이 말씀을 신학적으로 깊이 살펴보면, 곧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기다린다고 해서 그저 무기력하게 드러누워 시체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일어나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고 예배드리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입니까? 구약 시대의 예배는 오늘날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드리는 예배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예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짐승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잡아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이보다 더 능동적이고, 이보다 더 적극적이며, 이보다 더 헌신적인 예배가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기다린다면, 하나님의 때를 신실하게 기다린다면, 우리 삶의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기다리는 자들을 진심으로 기뻐하십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 37:5)
기다리는 것과 더불어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다리는 것과 함께 성도로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맡기는 일입니다.
다윗은 얼마나 탁월하고 유능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처음에 아버지의 집에서 평범한 목동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의 예리한 눈에 발견된 이후 자신 안에 숨겨진 놀라운 잠재력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을 굳게 의지하며 사울의 군대 장관이 되어 가는 곳마다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장군이었고, 탁월한 시인이었으며, 뛰어난 연주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으며,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여기서 '맡긴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내가 하되,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겸손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인내하며 기다렸을 때, 그에게 놀랍고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 37:10-11)
두 가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악인을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악인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어진 것입니다. 누가 이 일을 행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주변의 모든 악인을 깨끗이 소탕하셨습니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고, 정말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눈을 크게 부릅뜨고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아도 악인을 찾을 길이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놀라운 일입니다. 기다리고 맡겼더니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변화입니다.
둘째, 또 다른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온유한 자들이 땅을 차지한다고 노래합니다. 온유한 자란 과연 누구입니까? 맡기고 기다리는 자입니다. 기다리고 맡기는 자입니다. 기다리되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고, 성실하게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예배드리는 자입니다. 바로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다윗이 온 이스라엘 영토를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온 땅의 영토가 모두 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리로다"라는 이 놀라운 말씀은 훗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산상수훈의 팔복 말씀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다윗의 이 깊은 신앙 고백에서 흘러나온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러한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길들여진 자,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복하는 자, 바로 그런 자가 진정으로 기다리는 사람이며, 진정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복된 인생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기다리되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은 수동적인 나태함이나 무기력함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하게 맡은 바 일을 감당하고 선을 베풀며 섬기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의 자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때를 신뢰하고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다림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그분을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다리는 자는 예배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예배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예배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헌신의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온전히 예배드리는 가운데 우리 마음의 소원이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셋째는 내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탁월하고 유능하며 재능이 풍성하다 하더라도, 내 능력의 명확한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해야 합니다. 그렇게 인내하며 기다리고 온전히 맡길 때, 하나님께서 친히 악인을 소탕하시고 우리에게 땅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길들여진 온유한 자가 되어 풍성한 화평과 넘치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 인생 앞에 펼쳐진 모든 영역이 우리의 믿음의 영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진정으로 그것을 원하신다면, 오늘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십시오. 기다림과 맡김이라는 이 두 가지 신앙의 본질적 핵심을 굳게 붙들고,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온전히 예배드리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복되고 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