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를 지키는 지혜
시편 39편
말은 인간을 여타의 피조물과 구별하는 가장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고대로부터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 사회를 이끌어가며 공동체의 지도자로 우뚝 섰습니다. 언어 구사 능력이 곧 공동체를 이끌 수 있는 결정적인 리더십의 자격이 되었기에, 철학자들은 수사학을 연마시켰고 수많은 청년들이 그들의 문하에서 웅변술을 배우고자 열망했습니다. 그렇게하여 뛰어난 언변으로 사회를 이끌고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기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소망하며 살아갔습니다.
이러한 사회 풍토 속에서, 말재주가 부족한 이들은 늘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회 공동체의 지도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이 언제나 축복만은 아니었습니다. 언어가 내포한 위험성은 모든 시대에 걸쳐 존재해 왔습니다. 말을 경솔히 사용하면 자신의 삶이 파탄에 이를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마저 위기의 나락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공인들이 과거에 경솔하게 내뱉었던 한마디가 빌미가 되어 심각한 문제로 비화하고, 진심 어린 사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용서를 구하지 못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시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혀로 범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준엄한 징계를 받았던 경험을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깊은 회개를 올려드리며, 다시는 자신의 언어로 범죄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이 시편에 새겨 넣고 있습니다.
혀의 범죄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시 39:1)
다윗은 자신의 행실을 삼가고 혀로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여기까지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다짐입니다. 사람이 신중히 자신의 행위를 살피고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언어를 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않는 것 역시 마땅히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깊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다윗은 악인 앞에서조차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엄숙히 결단했다는 점입니다. 악인을 대면하고 있을 때에도 결코 악한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정황에 대한 평가도, 설령 악인 앞에서라 할지라도 그를 저주하는 언사조차 입 밖에 내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입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악한 사람 앞에서는 할 말을 서슴없이 하지 않습니까?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저 사람이 명백히 악하다고 여겨진다면—나의 판단으로, 혹은 타인의 시각으로, 또는 공동체의 평가로 볼 때 그가 분명히 불의한 자라면—우리는 그로부터 받은 상처나 고통에 대하여 온갖 말들을 쏟아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악인 앞에서도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서약합니다. 이러한 비상한 결단 뒤에는 분명 어떤 깊은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시 39:9-10)
다윗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그가 자신의 혀로, 언어로 인하여 하나님의 엄중한 징계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쇠락했던 뼈아픈 기억이 있었기에, 그 이후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심지어 악인을 마주할 때조차—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절대로 그 어떤 악한 말도 입 밖에 내지 않겠다는 엄숙한 서원입니다.
사실 악인 앞에서 이러한 침묵을 지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악인에게는 당연히 준엄한 언사로 정죄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래야만 우리 내면의 분노와 울분이 비로소 조금이나마 가라앉지 않겠습니까? 없는 말까지 지어내어 타인을 모함하는 세태에서, 악인 정도라면 얼마든지 그가 저지른 불의를 낱낱이 폭로하고 널리 알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조차도 금하셨습니다. 다윗은 바로 그 일로 인하여 자신의 몸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삶이 쇠락하는 참담한 경험을 겪었기에, 다시는 그러한 과오를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시 39:11)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화를 마치 좀이 옷을 갉아먹듯이 소멸시키셨다고 절절히 고백합니다. 만약 그가 왕위에 오른 이후에 이러한 징계를 받았다면, 왕으로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영광과 번영을 하나님께서 서서히 앗아가셨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삶이 쇠락하였다는 고백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자신의 생애가 참으로 허무하고 허망하기 그지없다는 통렬한 자각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불의 세계
이처럼 혀와 입술은 자신의 전 생애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의 세계"라고 말입니다. 혀가 얼마나 크고 위험한 것을 자랑하는지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혀가 입술 사이에, 입 안에 자리하고 있기에 자신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혀를 제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사실 혀는 분명 우리의 지체이지만 우리가 함부로 주장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혀를 경유하여, 입을 통하여 밖으로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누가 다스립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성령께서 주관하시도록 내어드립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 내면에는 늘 거짓된 영과 악한 영,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치열하게 대립하며 다투고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끊임없이 갈등하는 장소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여 마음을 성령께 온전히 내어드리지 않는 순간, 우리의 심령은 사탄의 도구로 전락하여 영적 전쟁터가 되고 맙니다. 그러한 순간, 우리의 입술과 혀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악한 영에게 내어준 마음이 혀를 장악하고 통제하게 됩니다. 그 순간 혀를 통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거대한 불의 세계가 되어 수많은 나무를 순식간에 태워버립니다.
한 번 깊이 성찰해 보십시오. 내 입에서 경솔히 내뱉은 말 한마디가 우리 가정을 활활 태워버린 경험은 없었는지를 말입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본심이 아니었는데, 사실은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그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분노케 하고 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 일은 없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은 내가 그러한 화를 당한 아픈 기억은 없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이 이토록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 일로 인하여 자신의 삶이 쇠락했고, 영화가 사라졌으며, 인생이 좀먹는 것 같은 깊은 후회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는 악인 앞에서조차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겠습니다"라는 각오를 다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다윗의 경험을 통하여 간접적인 깨달음을 얻습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다윗의 실패와 과오를 거울삼아 교훈을 얻는 자입니다. 반면에 미련한 자는 직접 징계를 받고 하나님께 책망을 당하고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자가 얼마나 어리석고 완고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참으로 감사하게도 먼 옛날 다윗이 겪었던 그 처절한 징계를 통하여 교훈을 얻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지혜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입술과 마음을 신중히 지켜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시 39:12-13)
다윗은 절절히 토로합니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자신이 혀로 범한 큰 죄악으로 인하여 육신의 건강마저 크게 손상되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눈물로 이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애절한 기도를 보면, 그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며 돌아볼 때,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였는지를 뼈저리게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입술로 내뱉은 말은 절대로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지 않습니까? 다윗 시대에 시므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궁을 떠나 도망칠 때, 다윗을 저주했던 자입니다. 그는 사울 왕의 친척이었으며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을 향해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말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왕위를 잃고 쫓겨나는 다윗에게 돌까지 던지며 모욕을 가했습니다. 다윗의 측근들과 신하들이 "저자를 죽이겠습니까?"라고 물었으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명하고는 묵묵히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을 평정하고 다시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므이가 왕 앞에 나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목숨을 살려주소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니 자비를 베풀어주소서"라고 애걸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그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입으로 시므이를 용서하고 살려주겠다고 선언했기에, 자신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시므이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마음속에 얼마나 깊은 분노와 상처로 자리 잡았던지, 그것이 내면에 얼마나 큰 아픔으로 남아 있었던지,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으로 이렇게 남겼습니다. "시므이가 평안히 세상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라." 그 정도로 한 번 입에서 나간 말은 절대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혀를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산상수훈 말씀에서 맹세에 관한 교훈을 주실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왜 이러한 금령을 주셨겠습니까?
인간이 본질적으로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시고 위대하시며 우리를 지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들여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하려는 맹세를 하는데, 우리가 그 연약함으로 인해 맹세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결코 맹세하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습니다. 대신에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옳은 것에 대하여는 옳다고 말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른 것에 대하여는 그르다고 말하면 됩니다. 거기서 처음과 끝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함부로 끌어들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인간은 언어 사용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살아가시면서, 우리의 심령을 신중히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혀에도 성령의 충만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마음이 불편하거나 염려로 흔들린다면, 입술에 재갈을 물리고 오늘 하루도 신중하게 살아가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래야만 불로 태우는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마음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는 항상 육체의 소욕과 성령께서 함께 공존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충만히 역사하시고 다스리시도록 우리가 마음을 신중히 다스려야 합니다. 성령께서 온전히 일하실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성령 충만한 자리를 항상 견고히 세워가야 합니다. 잠시라도 어리석게 방심하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이 육체의 소욕이 지배하는 영적 전쟁터로 변질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의 혀를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의 생각이 입술과 혀를 통하여 밖으로 표출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신중히 지켜야 합니다. 다윗이 엄숙히 고백한 대로 "악인을 향하여도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는 결단을 우리도 깊이 새겨야 합니다. 한번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결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거대한 불의 세계가 되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태워버릴 수 있는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의 말이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일터의 동료들에게, 하루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직 축복하는 말만을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높여주며 사랑하고 축복하는 말, 그들을 존중하고 인격을 세워주는 말들이 우리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와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 우리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