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의 극복
시편 40편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을 우리는 삶 속에서 수없이 경험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은 기대와 실망의 무한 반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기대하다가 실망하기도 하고, 자녀들의 인생을 기대하다가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기대와 실망이라는 두 극단 사이를 매 순간 오가며 살아갑니다.
기대할 때의 설렘과 기쁨은 참으로 크습니다. 아직 결과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이번에는 이런 아름다운 결말로 마무리되기를 소망하는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은 황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기대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실망에 직면할 때 찾아옵니다. 그 아름다운 기대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실망으로 귀결될 때, 그 실망은 깊은 낙심을 동반합니다. 낙심이란 마음이 떨어지는 것인데, 그 마음이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그 깊이가 다릅니다. 어떤 이는 비교적 가볍게 떨어졌다가 쉽게 회복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급속도로 깊은 나락까지 끝없이 추락하기도 합니다. 추락한 마음을 어떻게 수습하고, 어느 지점까지 어떤 방식으로 끌어올려야 할지, 이것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므로 낙심을 지혜롭게 다루는 것이 신앙인에게는 더욱 절실한 과제입니다.
기대와 낙심, 실망의 진폭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의 영혼은 심하게 요동치며, 다시 일어서기가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낙심의 원인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낙심의 깊은 골짜기에 있을 때, 그 낙심을 극복하는 영적 방법을 시적 언어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시 40:12)
다윗이 자신의 낙심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낙심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앙을 허락하신 배경에는 바로 자신의 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그리고 그로 인한 재앙이 한데 어우러질 때, 사람의 영혼은 심각하게 요동치며 일어서기 어려운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실망이 몰려옵니다. 왜 나는 이토록 연약한 존재인가? 왜 나는 동일한 죄의 패턴을 반복하며,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또다시 넘어지는가? 어째서 나는 죄의 유혹 앞에서 이처럼 무력한가? 이러한 영적 불안감과 자기 혐오감이 일단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깊은 낙심의 늪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자기 자신조차 신뢰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런 연약한 자신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죄를 범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설 때마다, 자신을 징계하시고 재앙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영혼은 더욱 깊은 낙심의 나락으로 침잠해 들어갑니다.
사실 죄를 범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은 실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죄를 짓는 순간에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죄에서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내가 이 정도의 죄와 유혹도 견디지 못하고 이기지 못하는가? 이 작은 시험에도 거듭 넘어지고 쓰러지며 빠져드는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그 실망감과 낙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낙심의 늪 속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 낙심을 극복하는 영적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찬양으로 극복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 40:3)
다윗은 하나님께서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자신의 입에 두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그가 낙심의 순간에 하나님을 향하여 새로운 찬양으로 응답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역설입니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낙심할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의 노래입니다. 마음이 기쁘고 평안할 때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입술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쁨을 선율로 표현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묻지 않습니까? 무슨 그토록 기쁜 일이 있기에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낙심이 찾아오면 입술에서 기쁨이 증발하고 찬양이 멈춥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제시합니다. 마음이 낙심될 바로 그 순간에,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이 새 노래는 결코 공허한 멜로디가 아닙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시 40:5)
그가 부르는 새 노래의 가사는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윗 자신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하나하나 기억해내고 회상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깊은 나락으로 추락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한 낙심과 실망으로 헤어 나올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바로 그때 지금껏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선하신 일들을,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귀한 은혜들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노래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낙심에서 일어서고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탁월한 영적 처방입니다.
다윗이 이러한 방식을 택했을 때, 어떤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을까요? 그는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며 귀한 손길을 찬양합니다. 그렇게 하면 현재 자신이 죄로 인해 받는 하나님의 심판조차도 오히려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으면, 그것을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죄를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길로 지속적으로 나아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신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큰 위기입니다.
로마서 1장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죄 짓는 자를 심판하시는 가장 무서운 방식이 제시됩니다. 바로 "그들을 그 상태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범함에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감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시고 징계하지 않으시며 책망하지 않고 내버려 두신다면,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포기한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죄 짓는 자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적 진리를 새 노래로,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내지 않으면 깨닫기 어렵습니다. 사탄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고 나면 자신에 대해 깊이 실망하게 되고, 사탄은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이해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받아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너를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러한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책망하시고 재앙을 허락하셔서라도 우리를 다시 올바른 자리로 돌려놓으시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낙심할 때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하나 기억해내고 되새기며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은혜가 다시 회복될 것을 확신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다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40:9-10)
낙심을 극복하는 두 번째 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회중 가운데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결코 감추지 않는 것, 이것이 다윗이 선택한 낙심 극복의 두 번째 방법입니다.
첫 번째 방법, 곧 낙심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은밀한 교제입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방법은 훨씬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저 사람이 최근에 하나님께 징계받은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자기 인생이나 잘 돌보면 될 것을, 자기 형편도 저토록 어려운 상황인데 어찌하여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 하는가?" 하며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그러한 비난과 조롱을 뛰어넘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낙심이 깊어지고 마음속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이어서 공동체에서 스스로를 단절시키게 됩니다. 혼자 있기를 원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담스럽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피하고 싶습니다. "내 처지가 이토록 초라한데 어찌 다른 이들을 만나며, 어찌 내 삶을 나눌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점점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빠져듭니다.
혼자 있게 되면 온갖 부정적인 상상과 왜곡된 생각들이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사탄은 바로 이렇게 사람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영혼을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낙심될 때일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쁨으로 전하며 그 소식을 나누어야 합니다. 주님을 참되게 만난 사람들,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가를 먼저 살피지 않습니다. 자신의 형편과 무관하게 담대히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고,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바로 그러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오지 않는 한낮, 뜨거운 햇살 아래 홀로 우물가에 나왔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그녀의 인생은 극적으로 변화합니다. 물동이를 그 자리에 내버려 둔 채 마을로 달려 내려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사람들 사이로 주저 없이 들어갔습니다. 기쁜 소식을 선포했습니다. 그녀의 객관적 처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외형적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난 후 넘쳐나는 기쁨을 감당할 수 없어서 세상 속으로 담대히 걸어 나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낙심을 극복하는 참된 방식입니다.
결론
오늘 다윗이 우리에게 전하는 귀한 교훈을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이런저런 일로 인해 마음이 낙심의 골짜기로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바로 그때 다윗이 걸었던 이 길을 따라 걸어가시기를 권면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새 노래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 생애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새 노래로 찬양하며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기대와 실망의 끊임없는 반복입니다. 설레는 기대감을 품다가도 이내 실망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때로는 자신의 죄로 인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고, 그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홀로 고립되기를 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심이 우리를 홀로 있도록 방치하는 것은 사탄의 간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낙심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낙심의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다윗처럼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지금까지 우리 인생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들을 널리 선포해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일터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담대히 하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셋째는 낙심을 극복하고 회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낙심한 영혼들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깊은 골짜기로 떨어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반드시 그 떨어진 마음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낙심할 만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며 증거하는 은혜가 우리 입술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