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4편

성경
시편2권

위축되지 않는 신앙

시편 44편

반려견을 기르는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강아지를 관찰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러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유기견 보호소의 모습이 간혹 화면에 담깁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곳의 유기견들은 어딘지 모르게 생기를 잃은 채 위축되어 있습니다. 좀처럼 짖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반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의 손길을 두려워하며 피하려 합니다. 그 눈빛에는 깊은 슬픔이 서려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행복한 가정에서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랑받으며 자란 강아지들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체구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대형견들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습니다. 마음껏 짖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합니다. 무엇이 이처럼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냈겠습니까? 결국 자신을 지켜줄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내가 마음껏 짖어도 나를 보호하고 함께해 줄 주인이 있다는 확고한 신뢰가 작은 강아지를 담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언제 위축됩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느낄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의 전 존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걸어가며 살아간다고 인식할 때, 우리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죄가 개입할 때 발생합니다. 죄가 침투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상황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가난이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도, 교육이나 소유의 부족이 우리 마음을 작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멀어지게 할 때,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 전 존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며 진정으로 위축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나는 위축되지 아니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 시인이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되었는지, 이 시편이 그 비밀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신앙 전승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 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나이다" (시 44:1-2)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떤 역사가 이곳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시편 1절과 2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던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들을 내쫓으시고 그들의 조상들을 이 땅에 세우시며 뿌리 박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시고 40년 광야 여정을 거치게 하신 후 가나안 땅에 정착시켜 주셨습니다. 그 땅에 거주하던 가나안 일곱 족속을 하나님께서 쫓아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조상들을 그 땅에 뿌리 박게 하시며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그들의 힘이나 능력으로, 혹은 모세의 탁월한 영도력이나 여호수아의 뛰어난 지도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가능했던 이유를 시인은 명확하게 고백합니다.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시 44:3)

이것은 참된 신앙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까닭은 그들에게 힘이 있어서도, 능력이 뛰어나서 가나안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기뻐하시고 여호수아를 기뻐하시며, 당신의 말씀과 언약을 성취해 가시기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위대한 역사를, 하나님의 이처럼 놀라운 섭리를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시 44:8)

하나님의 섭리를 이처럼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 여기까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영원토록 살아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44:9)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십니다. 그들의 군대가 아무리 많은 숫자로 모였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십니다. 과거 출애굽 당시에는 군대가 없이 오합지졸과 같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앞장서셨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펼치신 팔이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수많은 군대가 모여도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동행하지 않으십니다.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시 44:11)

어떤 역사적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방으로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들을 잡아먹힐 양처럼 적들에게 내어주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시 44:13)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상 두 가지 중대한 사건을 겪게 됩니다. 기원전 721년, 북이스라엘 왕국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원전 586년,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이 두 비극적 사건을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앙 이후 그들은 결국 바벨론 포로가 되어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그들의 군대와 동행하지 않으시고, 왜 그들을 조소와 조롱의 대상이 되게 하시며, 이방 백성들 가운데 넘겨주시고 사방으로 흩으셨겠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죄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셨기 때문이고, 그들이 부국강병하고 강성해지며 백성의 수가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군대와 함께하지 않으신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을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들을 심판하시고 이방 민족 가운데 넘겨주신 것입니다.

회개와 회복

바벨론 포로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깨닫고 고백하게 됩니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시 44:17-18)

이러한 참담한 상황에서 "우리 마음이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가 주의 길을 떠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벽은 완전히 불타버렸고 나라는 사라져버렸으며 하나님의 성전은 약탈당했습니다. 성전마저 불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들 모두는 포로가 되어 바벨론 땅에 노예로 끌려와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위축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특별히 시인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까닭은, 나라는 사라졌어도, 지금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게 포로가 되어 이곳에 끌려와 있어도, 죄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이렇게, 왜 우리 민족을 이렇게 심판하시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했습니다.

일반적인 나라들, 보통의 국가들은 나라가 멸망하면 역사도 함께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달랐습니다. 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주셨습니다. 포로기 이후에 많은 선지자들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에스겔 선지자, 학개 선지자, 스가랴 선지자, 말라기 선지자가 모두 포로기 이후에 나타나 예언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진짜 위축은 환경이 아니라 죄에서 비롯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재물이 없으면 위축됩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가난하면 움츠러들고, 자신의 환경이 어려워지면 주눅 들고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날 때 위축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처한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 그 사실만 깨닫는다면 우리는 결코 위축될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모든 회복의 근원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70년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 유다 백성들은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철저하게 회개한 이후에 더 이상 위축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 함께 있다면 우리 마음에 참된 평안이 깃들며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나라를 잃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있으면서도 마음이 위축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는 심판 이후에도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기 이후에도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죄가 있다면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가는 불행한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가 되어, 마음이 위축되지 않고 영혼이 건강하며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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