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7편

성경
시편2권

야곱의 영화

시편 47편

지도자는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칭찬받을 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비난받을 가능성입니다. 최종 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있는 지도자는 그 결정이 옳을 때 칭송과 영광을 받지만, 잘못될 때는 모든 비난을 온전히 감수해야 하는 운명을 지닙니다. 이것은 현대의 지도자나 고대의 왕들이나 동일하게 짊어져야 할 숙명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고대의 왕들이 전제군주였기에 모든 일을 자의적으로 백성들 눈치 보지 않고 행할 수 있었다고 여깁니다. 물론 일면 그러한 측면도 존재했으나, 고대의 왕들 역시 백성들의 민심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왕들은 다채로운 정치적 행사를 마련하곤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대가 가져온 전리품을 백성들에게 고루 분배하기도 했으며, 로마의 황제들은 검투 경기와 전차 경기를 빈번히 개최하여 백성들의 관심을 정치 현실로부터 전환시키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 왕이 지닌 본질적 숙명이자 피할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시며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섭리로 다스리고 계신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적 한계와 무관한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은 완전무결하시며, 하나님의 결정에는 어떠한 오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대관식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왕의 대관식을 노래하는 장엄한 찬양시입니다. 시인은 왕의 대관식 광경을 지켜보며 깊은 영감을 받습니다. 왕이 백성들의 환호 속에 보좌로 오르는 장면을, 왕이 영광 중에 왕관을 쓰는 순간을, 시인은 가슴 벅차게 목도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간 왕의 대관식을 바라보던 시인의 영적인 눈은 천상으로 향했고, 하나님께서 천상 보좌에서 거행하시는 영원한 대관식의 장면을 생생하게 포착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하나님의 대관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시 47:5)

즐거운 함성은 백성들이 외치는 환호이며, 나팔 소리는 천상 군악대가 울려 퍼뜨리는 장엄한 선율입니다. "올라가심이여", "올라가시도다"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천상의 지극히 높으신 보좌로, 만유의 진정한 왕으로서 오르시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시인이 목격한 인간 왕의 대관식은 실로 화려했습니다. 왕이 영광 중에 왕관을 받기 위해 백성들의 우렁찬 함성과 나팔 소리에 호위되어 보좌로 향하는 모습은 장엄 그 자체였습니다. 이 광경을 보며 시인은 깊은 영적 통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 왕의 대관식도 이토록 영화롭고, 사람의 머리에 씌워지는 왕관도 이처럼 화려하고 찬란한데,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섭리로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대관식은 얼마나 더 위대하고 아름답고 찬란하겠는가!'

이 영적 깨달음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대관식을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시 47:6)

이 한 절에 "찬송하라"는 외침이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이 찬송하라는 소리는 원래 왕으로 군림하는 인간 왕을 향한 백성들의 환호였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인간 왕을 찬송하는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입술로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란 인간이 아니라, 완전하시고 무오하신 하나님만을 찬송하겠다는 신앙 고백을 이렇게 네 번씩이나 거듭하여 선포하고 있습니다.

찬송의 이유

시인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에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맹목적이거나 추상적인 찬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된 한 사람 한 사람을, 한 영혼 한 영혼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돌보시는지를 명확히 알기에, 이 깊은 신앙 고백을 담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시 47:4)

시인이 이처럼 찬송하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야곱의 영화로 택하시고 한결같이 돌보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영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야곱의 파란만장한 삶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시인이 말하는 야곱의 영화, 그 첫 번째는 역전의 은혜입니다. 야곱은 쌍둥이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장자권은 장자가 출생과 동시에 천부적으로 소유하는 절대적 권리였습니다. 형 에서가 장자의 모든 영광과 장자권에 수반되는 축복을 독점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불합리한 질서에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의 영광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복을 온전히 받아 누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영적인 갈망과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소망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드러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에서는 장자권에 대한 어떠한 소망도, 영적 열망도 지니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 가운데서 야곱에게 역전의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야곱은 천부적으로, 혈통적으로는 장자권을 가질 수 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적 은혜로 역전의 축복을 받아, 야곱이 이스라엘로 거듭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자녀의 참된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야곱의 영화와 같은 역전의 은혜를 허락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사도행전 이후 전개된 구속사 속에서,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차별 없이 복음의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총, 오늘 나에게 허락하신 이 놀라운 은혜는 분명 역전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지닌 것들, 내가 가진 부족함이나 결핍, 남들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한 현실, 가지고 있다 해도 미흡하게 보이는 것들, 이런 것들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낙심하거나 눈물 흘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야곱의 영광과 같은 역전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인이 노래하고 고백하는 야곱의 영광, 그 두 번째는 고난 중에도 한결같이 돌보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입니다. 야곱의 인생여정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야곱을 얼마나 세밀하게 돌보시고 도우셨습니까?

형을 속이고 아버지마저 기만하여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야곱, 들판에서 돌을 베고 잠들어야 했던 그 비참한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하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반드시 돌아오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확실하고 분명한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밧단아람 라반의 집에서 보낸 2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하나님은 야곱을 한시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교활한 사기꾼 라반이 열 번이 넘도록 품삯을 바꾸며 그를 착취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형 에서를 다시 대면해야 하는 두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은 야곱을 지켜주셨습니다. 고난의 현장마다, 세겜 사람들이 그를 치려고 몰려올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야곱을 보호하시고 건지셨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눈동자같이 세심히 살피시고, 순간순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 바로 그 은혜를 야곱은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시인은 이것을 '야곱의 영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돌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난의 골짜기를 지날 때, 외로움의 광야에서 방황할 때, 인생의 무게가 버거워 힘겨워할 때, 바로 그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은 야곱의 영화로, 야곱의 영광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며 외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두 손을 내밀고 담대히 걸어가신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돌보시고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번성의 축복

시인이 고백하는 야곱의 영광, 야곱의 영화, 그 세 번째는 번성의 축복입니다. 야곱 한 사람을 통해 열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야곱의 자녀들이 지닌 이름들은 훗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로 새롭게 명명되었고, 그의 자손들은 각 지파를 이끄는 족장들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야곱은 번성의 은혜로 누렸습니다.

도대체 야곱이 무엇이기에 이러한 축복을 받았습니까? 객관적으로 보면 그는 거짓말쟁이였고 기만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끊임없이 도우시고 변함없이 돌보시며, 그를 빚어가시고 연단하시며 끝까지 책임지셨습니다. 야곱의 영화, 야곱의 영광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입니다.

오늘 이것은 야곱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특별한 영광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참된 아버지로 모시고, 이 시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받들며, 왕의 대관식에 영광 중에 오르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온 마음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그 하나님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요 풍성한 은총인 줄로 확신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역전의 은혜를 굳게 붙잡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야곱에게 베푸셨던 것처럼 역전의 은혜를 오늘 우리에게도 허락하십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부족하게 보이는 것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야곱의 영광과 같은 역전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둘째는 고난 중에도 한결같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삶입니다. 야곱의 인생여정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하나님은 그를 눈동자같이 세심히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고난의 골짜기를 지날 때, 외로움 가운데 있을 때, 힘겨운 순간을 견뎌낼 때에도 하나님은 야곱의 영화로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셋째는 번성과 번영의 축복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야곱 한 사람을 통해 열두 지파가 일어나고 위대한 민족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도 풍성한 번성의 은총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굳게 붙잡고, 오늘 하루를 담대하게 승리하며 살아가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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