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자하심
시편 48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철저하게 구분하였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현상세계라 불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라 명명하였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과들은 각기 다른 향기와 맛과 모양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록 미세한 차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의 모든 사과는 저마다의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과를 다 모아놓는다 하더라도 그중에서 완벽하게 동일한 사과 두 개를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데아의 세계,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는 모든 사과를 대표하는 완전한 원형이 존재한다고 그는 주장하였습니다.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꽃들은 향기도 모양도 크기도 이파리도 저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에는 완벽한 꽃의 원형이 존재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플라톤이 이렇게 현상세계와 이데아의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는 통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도 불완전하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건물과 물건도 불완전하며, 자연조차도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이데아의 세계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완전하기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느꼈던 불안과 결핍은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그는 확신했습니다. 물론 플라톤의 철학이 모두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통찰했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는 명제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진실입니다. 사실 믿음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 사람도 사랑도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의 참된 믿음은 시작됩니다.
그런데 간혹 고대의 사람들, 특히 성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이 존재한다고 여겼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성전을 바라보며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건축물이라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성전에 거하신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믿음이 균형을 잃고 지나쳐서, 건물로서의 성전 자체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푼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발생합니다. 돌로 쌓아올린 성전 그 자체가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한다고 착각할 때, 심각한 영적 위기가 찾아옵니다. 오늘 이 시편 기자의 고백은 바로 그러한 왜곡된 신앙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영적 교훈을 전해줍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위용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시 48:1-2)
하나님의 성, 곧 성전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그 자체로 천연의 요새였습니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여부스 족속이 거주하던 그 성을 점령하여 다윗성이라 명명하고, 그곳을 예루살렘 성으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도로 정했습니다. 그 성은 애초부터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래서 이민족의 침략에도 견고하게 버티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 안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성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 성 안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성전은 더욱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바라볼 때마다 깊은 자부심과 경외심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시 48:4-6)
급히 지나가는 왕들, 떨며 두려워하고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과도 같은 고통을 느끼는 왕들, 그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 그 성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전율하는 왕들은 모두 한 번씩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패배를 맛본 경험이 있는 자들입니다.
사실 다윗의 치세에 주변의 모든 왕들이 이러한 경험을 했습니다. 다윗은 전장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셨기에 다윗이 향하는 곳마다 승리가 따랐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치세에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 때에 성전이 건립되었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한 모든 준비를 완료해두었고, 솔로몬은 그 재원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화려하게 건축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패배를 경험했던 왕들은 그곳에 감히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전율하고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이 엄습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변 왕들이 이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품었던 자부심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특별히 다윗과 솔로몬의 태평성대를 누렸던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나라와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자긍심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을 것입니다.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시 48:11)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주변 열국의 왕들을 심판하셨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환희와 감격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보라. 그의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의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시 48:12-13)
후대에 전할 만큼 예루살렘 성전의 견고함을 후손들에게 전승하고, 하나님의 성전이 지닌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대대로 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그들에게는 충만했습니다.
진정한 자랑
여기까지만 보면 성전 중심의 신앙이 지나쳐서 성전 그 자체가 하나의 우상으로 변질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진정으로 전파되어야 할 분이 과연 누구신지를 명확하게 증언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시 48:9)
이 신앙 고백이야말로 핵심입니다. 주의 전 가운데 머물면서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주의 전 가운데서 우리가 온 마음으로 기억해야 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 주의 한결같으신 사랑을 생각하였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아무리 위대하고 장엄하다 할지라도, 다윗이 모아놓은 풍성한 재물로 솔로몬이 레바논의 백향목과 귀한 상아로 하나님의 성전을 화려하게 꾸몄다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본질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선포되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며, 전해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인자하심이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시 48:14)
성전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솔로몬 성전의 운명은 어떠했습니까? 위대했던 솔로몬의 성전, 그 화려했던 건축물은 이제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실물은 단 하나도 현존하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습니까?
기원전 586년, 바벨론의 침략으로 성전은 잿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성전에 보관되어 있던 금은 보화와 각종 성물들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약탈당하고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성전을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종교 지도자들—그들 가운데 올바른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전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믿음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을 보존하지 않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상징이었던 성전을 아낌없이 이방 나라의 손에 내어주셨습니다. 화염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도록 허락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후 헤롯 성전이 건립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헤롯이 성전을 재건해주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특별히 제자들조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을 때 헤롯 성전을 바라보며 예수님께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보십시오, 이 성전이 얼마나 장엄한지요! 이 돌들의 크기가 어떠하며 이 성전의 건축 양식이 얼마나 웅장합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엄숙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서기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헤롯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쌓아올린 건축물로서의, 돌로 만든 성전은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 성전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우리 성도들의 믿음입니다. 성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전에서 경배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자손만대에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자랑
오늘 우리는 무엇을 자랑합니까? 우리가 믿음 생활하면서 자랑하는 것들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 그들이 건물로서의 성전을 자랑했다면,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자신이 신앙생활하면서 쌓아올린 업적들을 자랑합니다. 나는 이런 일도 감당했고 저런 일도 완수했으며, 헌금은 얼마를 드렸고 봉사는 얼마나 많이 했다고, 내가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하면서 일구어놓은 것들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허무한 것들입니다.
진정으로 자랑해야 할 것은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변함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이름만을 우리는 자랑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영원히 사라지고 썩어 없어질 나 같은 죄인을 이처럼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삼으신 그 하나님의 능력, 오직 그것만이 자랑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건물도 업적도 우리가 이루어놓은 모든 것도 다 허무하며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의 거룩하신 이름만이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온 세상에 널리 선포되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전 자체가 아니라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과거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바라보던 자들, 헤롯이 재건한 성전을 우러러보던 자들은 성전의 화려함과 위용만을 자랑했습니다. 그 성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망각하고 건물의 아름다움과 위대함만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성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널리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사탄의 종이 되어 영원히 사라질 죄인으로 살 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아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고백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만이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만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분명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해야 합니다. 허무하게 사라지고 썩어 없어질 우리의 업적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 구원받은 은혜를 힘입어, 그 능력으로 지금도 일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가 주의 영광을 찬양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온 세상에 널리 전파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