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라
시편 49편
사람과 동물을 가르는 특성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본다면, 무엇보다 탁월한 의사소통의 능력과 본능을 이성으로 다스리는 힘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동물들에게는 상호 의사소통의 깊이에 한계가 있으나, 사람은 뛰어난 이성을 토대로 풍성하게 교감합니다. 또한 동물의 세계에서는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지만,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본능을 절제하고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특성은 실상 하나로 수렴됩니다. 이성이 본능을 다스릴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본능이 앞서는 곳에서는 참된 교감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각자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어찌 서로의 마음이 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동물과 인간의 본질적 차이라 규정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외형은 분명 사람이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면서도, 동물만도 못한 이들을 적지 않게 발견하게 됩니다. 본능이 이성을 짓누르는 사람, 그리하여 같은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서로 통할 수 없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늘 시인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멸망하는 짐승과 다름없다고 선언합니다.
귀를 여는 지혜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시 49:1-2)
이 시를 지은 시인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히 꿰뚫고 있는 사람입니다.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이고 들으라" 거듭 촉구하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들이 서로 교통하는 첫걸음은 보는 데 있지 않고 듣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음으로부터 시작되며, 들음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그 반석 위에 집을 세웁니다.
보는 것을 먼저 추구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의 근본을 올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늘 입버릇처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믿음의 삶이란 곧 하나님의 음성을 온전히 듣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리는 크거나 요란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시 49:3)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은 사람, 그리하여 그 은혜가 가슴 가득 넘실대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습니다. 작은 소리로나마 이 놀라운 은혜를 널리널리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는 크거나 요란할 필요가 없습니다. 작은 소리로 읊조려도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연 사람에게는 충분히 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백성들은 귀를 활짝 열고 하나님의 세미하고 미세한 음성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세상은 온통 화려함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소리로 들려주기에 앞서 화려한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그 화려한 것들의 속을 들여다볼 때 허무하기 그지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은 언제나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역사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소리가 비록 세미할지라도, 우리 예수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음성은 우리의 영과 혼과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는 능력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먼저 듣는 자에게는 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밀한 음성을 듣기 위하여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어리석음
그런데 시인은 그 반대편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시 49:6-7)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 곧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에 의존하는 자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자기의 재물과 부유함을 의지하는 자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소유한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것들을 자랑하느라 입술이 잠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지 않고, 자신이 거머쥔 부와 권력과 재산과 부유함을 남들에게 떠벌립니다. 신앙생활은 무엇보다 듣는 것이 우선인데, 자기 손에 있는 것들을 남들에게 자랑하느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왔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신앙생활이 본말이 전도됩니다. 먼저 듣지 않고 전하고 말하며 자기 것들을 자랑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많이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듣는 것이 먼저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하며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 49:11-12)
자기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는 자들, 멸망하는 짐승과 다름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자기 집이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 착각하는 자들,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열두 지파에게 분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영원히 자기 이름으로 등기하고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땅은 영원히 나 여호와의 것이라" 하나님께서 엄숙히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잠시 발을 딛고 살다 가는 것이지, 그것이 영원히 내 것이 되어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없다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법전을 엄밀히 정리하셨습니다. 50년이 되어 희년이 오면 땅은 반드시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거하는데, 그 땅을 가난하고 궁핍하여 생계가 막막해서 팔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팔린 땅이라 할지라도 50년이 지나면 반드시 원주인에게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거룩한 율법이 무색해집니다. 50년이 지나도 돌려주지 않습니다. 희년이 도래해도 그 땅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영원토록 토지가 내 것이라 여기며 자기 이름을 거기 새겨 넣고 사는 사람들,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규정하셨습니다.
그러한 자들은 자기 이름을 자랑하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과시하느라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줄 모릅니다. 마치 예수님 시절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과 같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그 부자 청년은 젊음도 소유하고 물질도 풍부하며 권력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을 얻고자 하거든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우리 주님께서 그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시며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이 청년은 근심하며 발길을 돌립니다. 작은 소리로 주님께서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귀영화 때문에, 권력 때문에, 물질 때문에 주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절 유대 권력자들과 종교 지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 권력에 기생하며 헤롯 권력에 몸을 의탁한 자들이었습니다. 주께서 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기적을 행하시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자들, 자신이 소유한 것이 많은 자들은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없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언제나 우선순위가 주의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깨닫는 자의 복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에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음에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시 49:16-17)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현세적 부와 권력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죽음 앞에 이를 때 권력도 부귀영화도 함께 가져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들이 멸망하는 짐승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 49:20)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며 겸손하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코 멸망하는 짐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별것 아닌 부귀영화, 남들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산다는 그 한 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주의 말씀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며, 세미한 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인생이 어떠해야 할지를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주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 세밀하게 우리에게 들려온다 하더라도, 그 작은 소리에 귀를 활짝 열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별것 아닌 재물과 부유함을 자랑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내가 소유한 것이 영원히 내 것이라 착각하는 자 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초는 듣는 것입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요란함에 눈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께서 작은 소리로 주시는 지혜와 명철의 말씀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들음으로 믿음이 시작되며, 들음으로 우리의 영혼이 소생합니다.
둘째는 재물과 부귀영화를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가 소유한 것을 자랑하고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도 자기의 생명을 속량할 수 없으며, 재물도 권력도 함께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이 땅의 것은 잠시일 뿐이요,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는 깨닫는 지혜를 소유해야 합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진리임을 깨닫고, 그 말씀 앞에 고개를 숙이며 순종하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그 말씀이 주는 빛을 따라 걸어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