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편

성경
시편1권

곤란 중에 너그러움

시편 4편

우리는 고난을 겪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공을 일구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고난도 없고 어려움도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들, 가정에도 문제가 없고 자신의 인생에도 시련이 없었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재벌 2세, 재벌 3세의 이야기는 흥미를 끌 수는 있을지언정 깊은 울림을 주지는 못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사람들, 그 극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며 불굴의 의지로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진정한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열광하며 공감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거기에서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도 저 사람과 같은 상황을 경험했는데, 나도 저분과 비슷한 처지를 겪었는데, 나도 저 사람처럼 저렇게 견디고 이겨내면 좋은 날이 찾아올까 하는 기대와 소망을 함께 품게 됩니다. 그 동질감이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응원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경이 우리에게 깊이 사랑받는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그 대부분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거의 비슷하고 차이가 크지 않은 평범한 인생들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을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소심하고 얼마나 두려움이 많은 사람인지,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까?

그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며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끝까지 붙들고 이끌어 가시며 세워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깊은 동질감을 느끼고 감동을 받습니다. 야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거짓말쟁이이고 비겁하며 야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도 그런 인간이고 야곱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가시고 그를 통해 역사하셨으며, 그의 자녀들 열둘이 모두 이스라엘 각 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것을 보면 우리는 야곱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런 야곱을 아끼시고 세워가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다윗 역시 나중에 왕이 되기는 하지만, 그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사람의 목동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이었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을 잘 극복하고 이겨내어 결국은 왕이 되기는 하지만, 우리와 똑같은 시련을 겪는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사람들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고난을 어떻게 다루어 가느냐, 하나님께 받은 이 시련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고난을 제대로 극복하면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고난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계속해서 답답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좁은 길의 유익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다윗이 훗날 자신에게 허락하셨던 고난을 하나님 앞에 감사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고난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었는지, 고난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오늘 이 시를 통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시 4:1)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이 곤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차르'입니다. '좁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곤란한 일을 당하고 어려운 고난을 마주하면 길이 좁아지지 않습니까? 그 길이 좁고 협착합니다.

그런데 이 고난의 좁은 길을 통과하면서 그가 너그럽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너그럽게 하다, '라하브'라는 말입니다. 이 라하브라는 말은 넓어지다, 공간을 만들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좁고 좁은 고난의 길을 잘 통과하자, 다윗이라는 사람이 넓어졌습니다. 그의 인생에 넓은 공간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고난을 통해서 다윗을 넓은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다윗이라는 인간, 그 사람 마음속에 넓은 공간을 만들어 주셔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그 마음속에 품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광야 생활을 하면서 자기 혼자 몸을 피하고 숨기에도 바빴는데, 다윗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400명의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오지 않았습니까? 아돌람 굴에서 원통한 자, 억울한 자, 환난당한 자들이 몰려왔는데 다윗이 그들을 모두 품어주었습니다. 그가 곤란 중에 너그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좁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놀라운 것은 다윗의 마음이, 그의 내면이 점점 넓어지면서 사람들을 품어 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곤란이 주는 유익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제대로 잘 통과하면 사람이 넓어집니다. 400명의 사람은 나중에 600명이 되었습니다. 그 600명의 사람은 다윗과 함께 이스라엘을 세워간 다윗의 1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나중에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나을 법한 일을 다윗은 넓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좁은 길을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좁고 협착한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걸어가면, 그 길을 온전히 통과할 때 그 사람 자체가 넓은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행하려 합니다. 넓은 길을 가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넓은 길을 가려 하지 말고 넓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을 잘 통과하는 사람은 넓은 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은 좁은 길이었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은 넓은 사람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가슴에 품어 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사용하시려 할 때 그 마음속에 넓은 공간을 만들어 주시어 많은 사람을 품게 하십니다.

내가 나이가 이만큼 되었는데, 이만큼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아직까지 소견이 좁고 아직까지 자기중심적이어서 단 한 사람도 내 마음속에 품을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고난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고난이 항상 다가오는데, 그 고난을 제대로 통과하면 이 사람도 품을 수 있고 저 사람도 품을 수 있으며, 그래서 큰 그릇이 되고 넓은 그릇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난이 주는 유익입니다.

곤란 중에 너그럽게 하신 하나님을 다윗이 훗날 시간이 흐른 후에 찬양합니다. 만약에 그때 그 고난이 없었더라면 하나님, 저는 좁고 좁은 인생으로 살다 죽었을 텐데, 그 고난을 허락하셔서 제가 이렇게 너그럽고 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 고난을 잘 통과해서 더욱 넓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 고백이 다윗의 고백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습관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시 4:3)

고난을 통한 다윗의 또 다른 유익은 하나님을 부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그가 들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고난당하는 자는 언제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이 고난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지 않습니까? 배고프면 누군가가 돈 몇 푼이라도 주어서 밥이라도 사 먹게 해 주어야 하고, 이런저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광야로 내몰렸습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습니다. 사울이 포위망을 좁혀 오는데, 어디 가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광야로 내몰아 가신 이유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너를 광야로 몰아가신 그 하나님께만 도움을 청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가 사는지 죽는지 한번 벼랑 끝에 서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은 그래서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고난을 겪으면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사람은 우리의 궁극적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다윗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드 왕 아기스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윗을 전쟁터로 끌고 나가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의지해서 성공한 인생은 없습니다. 결국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 부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도 고난당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통해서 힘을 얻고 기도하며, 거기에서 답을 찾고 그곳에서 새로운 능력과 은혜를 덧입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마음에 두신 기쁨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 4:7)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곡식과 새 포도주보다 더하다고 했습니다. 기쁨은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숫자로 셀 수 없으며 계량화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곡식과 새 포도주는 달아볼 수 있습니다. 잴 수도 있습니다. 무게가 있고 양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며 달 수 있고 팔 수 있으며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그런 기쁨보다, 고난을 통과하고 난 후에 얻는 기쁨이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쁨, 고난을 온전히 통과한 자가 누리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는 제대로 고난을 통과한 자만이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비밀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이 빌립보서를 감옥에서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고 불립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내가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마 미쳤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갇혀서 무엇이 그렇게 도대체 기쁘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고난을 온전하게 제대로 통과했기 때문에 기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기쁨은 곡식과 새 포도주로 가득 찬 기쁨보다 훨씬 더 충만한 기쁨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훗날 하나님 나라에 갈 그날이 임박해져서 내 인생을 돌아볼 때, 고난으로 얼룩진 인생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 정말 기쁩니다. 기쁘고 기쁘고 또 충만합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어야 제대로 이 땅을 살아간 성도일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고난을 면제받는 인생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은 고난이 있지만 고난을 잘 견디고 이겨내서, 그 고난을 통해서 내가 넓은 사람이 되고, 고난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을 찾으며, 고난을 통해서 참된 기쁨을 수확하는 그런 은혜의 삶이 성도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앞에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피하지 말고, 그 좁은 길을 당당하게 우리 주님과 함께 온전히 잘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난을 제대로 통과하면 우리가 넓은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진리입니다. 다윗은 좁고 협착한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그의 마음이 넓어졌고, 400명, 600명의 사람들을 품어 안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넓은 공간을 만드시어 많은 사람을 품게 하십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고 신앙생활을 오래 해왔는데도 아직까지 소견이 좁고 자기중심적이라면, 그것은 고난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넓은 사람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귀한 도구입니다.

둘째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만을 부르는 습관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기에 오직 하나님께만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결국 허무합니다. 가드 왕 아기스조차 결정적인 순간에 다윗을 위해 서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해서 성공한 인생은 없습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 부르게 하며, 그곳에서 참된 도움과 새로운 능력을 얻게 합니다.

셋째는 고난을 온전히 통과한 자가 누리는 기쁨은 물질적 풍요보다 훨씬 크다는 진리입니다. 다윗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보다 더한 기쁨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제대로 고난을 통과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충만한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도 감옥에서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성도의 삶은 고난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넓어지고 하나님을 찾으며 참된 기쁨을 수확하는 은혜의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 고난이 있을지라도 피하지 말고, 그 좁은 길을 당당하게 우리 주님과 함께 온전히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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