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0편

성경
시편2권

하나님의 재판정

시편 50편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법정은 일생 동안 경험하지 않을 낯선 공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가면서도 판사 앞에 서는 일과는 무관한 삶을 영위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중 누군가가 재판정에 출두하여 판사 앞에 서게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억울함을 호소하는 원고가 되었든, 예기치 못한 고소로 피고가 되었든, 재판정에서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심적 중압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그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법정조차 이처럼 두렵고 무거운데, 하나님께서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법정에 우리가 서게 된다면 그 두려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셔서 우리의 명백한 죄를 기소하시고, 그 거룩하신 보좌 앞에 서서 하나님의 엄중하신 말씀을 들어야 한다면, 그때는 후회와 두려움은 물론이고 그 결과마저 예측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시편의 저자인 아삽은 바로 그러한 엄숙한 상황을 상정하며 이 시를 기록했습니다.

다윗 왕이 성전 찬양을 위해 세 명의 지휘자를 세웠을 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 그 영광스러운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중 아삽은 일생을 성전에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예배 음악을 창작하고 성가대를 지휘하며 훈련시키는 사역을 통해, 그는 무수한 예배자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성전의 지킴이로, 찬양의 지휘자로, 진실한 예배자로 살아가면서 아삽은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지, 그들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과연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로 서 있는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그는 자신의 삶을 깊이 반추하며, 하나님의 재판정이라는 엄숙한 상황을 상정하여 이 시편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시 50:4-5)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모으시는 목적은 상급을 주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말씀은 명확하게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판결하시기 위하여 위로는 하늘에, 아래로는 땅에 있는 백성들을 모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표현이 있습니다.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라는 구절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판결하시려는 핵심 이유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로 언약을 맺은 백성들을 모으시는 까닭은, 그들의 예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시 50:6)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장이 되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이 재판이 어떠한 편견이나 불공정함 없이 진행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심판주로서 주재하신다는 뜻입니다.

제물이 아닌 마음

그러나 시인은 말합니다. 예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불려 나온다고 해서 오해해서는 안 될 중요한 진실이 있다고 말입니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시 50:8)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불려 나오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 드린 제물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드린 제사에 어떤 흠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 좀 더 풍성하게 드려야 했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아 넉넉히 드리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일까?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나를 책망하시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명확하게 선포합니다. 우선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 때문에 백성들을 심판하고 재판하시지만, 제물의 많고 적음 때문은 결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시 50:12)

세계와 그 가운데 충만한 모든 것, 곧 이 우주의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이신데, 어찌 하나님께서 제물 때문에 백성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들을 모으시겠습니까?

이것은 오늘날 우리도 결코 오해해서는 안 될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겸손하고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질의 많고 적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시는 기준이나 잣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적 지도자라는 이들이, 그 옛날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이, 성전 중심의 종교생활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그러한 왜곡된 가르침을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증명하려면 많은 물질을 가지고 나오라고, 그렇게 백성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온 천지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며 주인이 되시는데, 어찌 짐승 몇 마리를 놓고 백성들을 재판정으로 소환하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결단코 그러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기에 아삽은 이 시를 기록하면서 백성들이 오해할까 염려하여, 이 점을 가장 먼저 명확히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버린 예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예배 문제로 판결하시기 위해 소집하시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시 50:17)

하나님의 교훈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등 뒤로 내던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에서 선포됩니다.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혹은 제사장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앞에 선포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자리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여기 불려 나온 사람들, 제사를 통해 언약을 맺은 사람들, 하나님 앞에 서서 판결을 받게 된 이들은 하나님의 교훈을 자신들의 등 뒤로 내버렸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아름답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발에 등불이 되고 길에 빛이 된다는 고백은, 말씀이 언제나 우리 앞에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우리 앞에 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우리가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끊임없이 갈림길을 만나게 됩니다. 두 갈래 길, 세 갈래 길이 우리 앞에 놓입니다. 그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앞에 두고 분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의 근거로,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마다 말씀이 기준이 되고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현재의 기분을 중심으로,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결정하고 분별합니다. 그러한 방식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나 취하는 태도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그 말씀이 언제나 우리 앞에 자리하여 그 말씀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오류가 없습니다. 그래야만 후회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왜 우리의 삶이 꼬이고 고통스러워지며, 해결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었습니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우리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자리에 부재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분별하고 그 말씀을 굳게 붙들며 어떻게든 그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최선을 다했다면, 우리는 후회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후회가 남는 이유는, 말씀을 등 뒤로 내던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말씀 없는 삶

아삽은 묻습니다. 말씀을 등진 채 살아가는 자들은 과연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까?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시 50:18-20)

얼마나 무시무시한 죄들을 범하게 됩니까? 참으로 끔찍한 죄악의 길로 빠져듭니다. 그런데 이 모든 죄의 출발점은 말씀을 등 뒤로 내던지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처럼 두려운 죄인으로 전락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뒤로 던져버린 그 이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게 된 바로 그 순간부터 이러한 어두운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예배란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제사로 언약을 맺은 자들을 판결하시기 위해 이 자리에 불러 모으신 까닭은, 그들이 진정한 예배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근거로 삼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예배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배가 예배당 안에서만 시작되고 끝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것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예배당 안에서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정립해줍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는 성전문을 나선 그 순간부터 그 깨달은 방향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전 안에서나 성전 밖에서나, 예배당 내부와 외부를 막론하고 우리의 예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지녀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우리 삶의 최우선에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발에 등불이 되고 우리의 길에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말씀을 근거로 분별하고, 선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의 처지나 감정, 과거의 경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인생의 확실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진정한 예배는 예배당의 경계를 넘어 삶 전체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방향을 정립하고 영적 통찰을 제공하지만, 참된 예배는 성전 문턱을 넘어선 순간부터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의 삶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물질의 풍족함이나 부족함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것은 겸손하고 회개하는 심령과 말씀에 순종하려는 진실한 마음입니다.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삶의 태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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