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
시편 53편
어린아이들에게는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성향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고, 보이는 대로 반응하며, 보이는 대로 행동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때로 어린아이들에게 놀라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장점이 된다는 것은, 보이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기에 정직하고 순수하다는 의미입니다. 어린아이들의 말과 행동에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점 또한 명백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말하고 행동하기에, 보이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식하는 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추상적 사고에 취약하며, 현상 너머에 숨겨진 본질을 통찰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은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보완됩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곧 추상적 사고 능력이 발전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에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그것을 움직이는 더 깊은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갑니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보이는 것이 때로 우리를 속일 수도 있다는 것, 보이는 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보이지 않는 추상의 세계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통찰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르며, 성숙이라고 이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그리스도인의 성숙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신앙이 어릴 때, 믿음이 미숙할 때는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으신다고 불평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고백하는데 내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단순하게 결론짓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깊어질수록, 보이는 세계 이면에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조금씩 느끼고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믿음의 성장, 믿음의 성숙이라고 부릅니다.
어리석음의 본질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시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은 이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명명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53:1)
다윗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즉 무신론자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단정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게 되었는지, 어떠한 경로를 통해 무신론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윗이 지적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무신론자가 된 사람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믿어보려 했으나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의지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성급하게 하나님이 없다고 결론 내려버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처음부터 보이는 것만이 실재라고 여기며 무신론자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로 그들이 무신론자가 되었든지, 다윗은 그들을 모두 어리석은 자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행동 양식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부패하고 가증하며 악을 행합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의 삶이 이러합니다.
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의 행동이 이처럼 타락한 것일까요?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니 자기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 되고,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며, 자기 자신이 왕 노릇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니 내가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도 상 주실 분이 없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니 내가 함부로 살아도 나를 벌하실 분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니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행동에는 통제력이 사라집니다. 누구도 그들을 제어할 존재가 없으며, 그들 스스로도 자제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입니다. 힘 있는 자, 세상의 통치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그들의 도덕적 통제력이 사라졌을 때 그 아래에 있는 백성들이 모두 깊은 고통을 겪고 힘겹게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을 독특한 위치에 놓으셨습니다. 목자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어야 했습니다. 왕이지만 진정한 왕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존재, 왕이지만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다윗은 평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셨던 왕, 왕이면서도 왕이 아닌 인생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왕이 그렇게 살아야 그가 다스리는 백성들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지각 있는 자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진정으로 우리가 지혜로운 자가 되려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자들은 스스로도 불행할 것이며, 다윗이 지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53:2)
다윗은 어리석은 자의 반대 개념을 설명합니다. 지각이 있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지각이 있는 자는 곧 하나님을 찾는 자들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찾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만나려 해도 하나님의 형상으로는 결코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각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찾지 않습니다. 온 세상 만물 속에서 하나님을 매 순간 경험하고 호흡하며 만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때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찌 하나님의 형상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하나님의 형상은 없지만, 이 피조 세계 속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그 사람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나와 더불어 생활하는 내 가족들, 내 배우자, 우리 자녀들, 그들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사랑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피조 세계를 보십시오.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시고, 새소리에 귀 기울이시고, 온 세상 만물을 관찰하시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우시고 자비로우신 손길이 드러납니다. 사계절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호흡을 주신 하나님, 그 모든 것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합니다.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 내재하시는 분입니다. 인간이 살아온 이 수천 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보고 연구하면서 하나님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제국이 영원히 존속할 것처럼 보였지만, 영원할 것 같던 제국도 몇 백 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폐허가 되고 무너진 집터와 궁궐 터가 그것을 증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천 년 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선포하셨던 그 사랑은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에게까지 흘러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호흡과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우리 주변 도처에 하나님의 숨결과 하나님의 손길이 있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미련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선악과와 말씀의 통치
이러한 자들은 창세기 처음부터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에 그들을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일을 위임하셨습니다. 동식물의 이름을 짓게 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시며 그들에게 거룩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제거하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너희가 이 땅의 절대적 주인이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특별한 장치를 마련해주셨는데, 바로 선악과였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선악과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떠올리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자신들이 다스릴 에덴동산의 모든 것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날 뱀의 교묘한 유혹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악과 금지 명령을 그곳에 두신 이유는, "너는 이곳을 다스리지만 너를 다스리는 자는 나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억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거해버린 것이며,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그들을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선악과 금지 명령을 통해서 아담과 하와를 다스리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말씀을 통해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미련한 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진실로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하십니까?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 (시 53:5)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주인 되신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자,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없다고 부정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어찌 보호하시고 돌보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며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손 안에서 보호받는 복된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각이 있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찾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피조 세계 속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눈을 활짝 열어 사람을 보며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연 만물을 보며 하나님을 경험하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고 깨닫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선악과 금지 명령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상기시키는 표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셔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보이는 것만을 좇아가며 하나님을 제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기억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는 미련한 자, 불쌍한 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인정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으신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것 이면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찰하지 못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가 되어 온 세상 만물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