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4편

성경
시편2권

나를 돕는 이

시편 54편

인간관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것은 은혜와 도움을 온전히 기억하는 능력입니다. 누군가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을 때, 그 은혜를 마음 깊이 새겨두었다가 적절한 시기에 진심으로 보답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란 본래 주고받는 상호성의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받은 은혜를 단순히 시간의 흐름 속에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마음에 소중히 간직했다가 때가 이르면 정성껏 갚고 도움을 베푸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완성되어 갑니다.

그러나 현실에는 이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절대적이고 꼭 필요한 순간에 결정적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은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모른 척하며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고, 신뢰는 깨어지며, 아름다웠던 관계는 상처로 남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결정적 도움을 베풀었는데, 정작 내가 절박한 순간에 그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때 느끼는 배신감과 절망, 그 깊고 어두운 낙심을 과연 누가 위로해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는 시편의 저자 다윗이 바로 그러한 아픔을 겪으며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절망 속의 배신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십 사람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가 있는 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던 때에" (시 54:표제어)

이 시편은 사무엘상 23장의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을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 지방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그곳을 침공하여 무자비하게 유린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사울 왕의 군대가 신속히 출동하여 그일라 백성들을 구원해야 마땅했습니다. 사울의 군대가 즉각 파견되어 블레셋 군대를 격퇴하고 백성들을 건져내는 것이 왕의 책무요, 당연한 순리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울은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의 모든 관심과 집중은 오직 다윗에게만 쏠려 있었습니다. 다윗을 추적하고, 다윗을 찾아내고, 다윗을 제거하는 일에만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울의 주력 부대는 백성들의 위기를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백성들이 침공을 당하고,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강토를 어지럽히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다윗 한 사람만을 잡으려는 어두운 집착에 온전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 엄연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로 묻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일라를 구원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나눈 이 대화를 함께한 사람들에게 전하자, 그들은 펄쩍 뛰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숨어 지내는 것도 이렇게 위태로운데, 우리의 위치가 곧바로 탄로 날 것이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 위험천만한 일을 감당하겠느냐고 절박하게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냥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재차 간구했고, 하나님은 다시 한번 확고하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다윗과 함께한 군사들이 일어나 블레셋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일라를 위기에서 구원해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선한 행동으로 인해 다윗의 소재가 완전히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사울에게는 더없이 좋은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다윗을 추격할 명분과 정확한 위치를 동시에 얻게 된 것입니다.

그 불길한 소식을 듣자 다윗이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그일라 사람들이 저를 숨겨주지 않겠습니까? 그일라 사람들이 저와 저의 군대를 사울에게 넘겨주겠습니까?" 하나님의 대답은 참으로 냉혹했습니다. "그럴 것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너를 사울의 손에 넘겨줄 것이다."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깊이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낙심할 수 없었습니다. 즉시 길을 떠나 십 광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목에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습니다. 십 사람들 역시 다윗을 사울에게 서슴없이 고발했습니다. "다윗이 지금 우리 땅에 와 있습니다. 속히 와서 잡아가십시오." 사울은 지체 없이 말머리를 돌려 십 광야를 향해 진군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시간문제였습니다. 포위망은 무섭게 좁혀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윗은 사울의 손아귀에 넘겨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도하는 자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 54:2)

다윗이 사울에게 완전히 포위되었을 때, 사울의 대군이 십 광야로 서서히 다가오는 그 숨막히는 순간에,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은 실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윗의 군대로는 도저히 사울의 막강한 군대를 맞서 싸워 이길 수 없었고, 용기를 내어 저항해본들 그 저항은 얼마 가지 못해 허무하게 사그라지는 불꽃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절망적인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구원해주시고 나를 건져주소서."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극적인 상황으로 인도하시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을 완전히 건져주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기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제한적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자신의 능력을 착각하고 과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온하고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크고 작은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어려움을 겪으면, 심각한 위기를 정면으로 맞이하면,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뿐입니다.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적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기도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어떤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가장 무력하고 연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 실상으로는 가장 강력하고 능력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깊은 위기에 처한 다윗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은혜로 건지셨으며, 그를 온전히 살려주셨습니다.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셀라)" (시 54:3)

낯선 자들, 포악한 자들이 다윗을 치고 끈질기게 수색했습니다. 다윗이 겪었던 그 두려움과 불안감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하나님 앞에 토로했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을 목숨 걸고 구원했지만 그곳에서 안전하지 못했고, 십 광야로 간신히 도피했지만 낯선 자들이 그를 다시 무정하게 고발했으며, 사울의 대군이 그를 잡으러 몰려왔습니다. 이러한 극심한 불안감과 절박한 위기 상황을 다윗은 있는 그대로 고백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시 54:4)

이 고백은 다윗의 신앙 고백 가운데 더없이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언뜻 평범한 고백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절박한 상황에서 이 고백은 진실로 깊고 무게 있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처음에 기대했던 것은 그일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가 그일라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원하지 않았습니까? 왕도 그들을 건져주지 않는 상황인데, 사울이 그일라를 완전히 버리고 외면한 상황인데, 블레셋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쳐들어와서 그 성을 유린하고 거기에 주둔하며 터를 잡아버렸는데, 그일라 백성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블레셋 사람들의 가혹한 압제를 받을 것이고, 혹은 귀한 생명을 잃을 위기에도 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은 그들을 전혀 돕지 않습니다. 그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다윗이 목숨을 걸고 그일라를 건져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그일라 백성들이 생명을 다해 다윗을 숨겨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다윗을 지켜주는 것이 당연한 순리이고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차갑게 말씀하십니다. "그일라 백성들이 너를 사울의 손에 넘길 것이다."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처절하게 무너졌겠습니까? 그 배신감이 얼마나 깊고 아팠겠습니까?

십 광야로 떠나서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십 사람들이 다윗의 목에 걸린 현상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다윗을 냉정하게 고발했습니다. 다윗은 지금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극한의 고립 속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뼈아픈 상황을 극복하고 나서 다윗이 고백하는 이 말씀, "하나님만이 나를 돕는 이시다. 하나님이 나를 건지시는 분이시다." 이 고백이야말로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사람을 우리가 온전히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진리를 알면서도 여전히 지속적으로 사람을 의지합니다. 내 가족을 의지하고, 자녀를 의지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고, 그들에게 마음을 온전히 주고, 때로는 내 모든 것을 다 의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믿음과 의지가 나중에 뜻하지 않은 배신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을 때, 그때 우리가 느끼는 절망은 얼마나 깊고 어둡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매 순간 깊이 깨닫습니다. 사람은 결코 완전히 의지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엄숙한 진리를 배웁니다. 진실로 우리가 온 마음으로 믿고 따르고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이 시편을 통해서 우리에게 간절히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절박한 권면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도 역시 이러한 배신의 아픔을 공생애를 통해서 깊이 겪으셨고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왕이시여"라고 열광하며 외치고 손을 흔들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잔인하게 소리쳤습니다. 같은 입으로 호산나라고 열렬히 외쳤던 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철저히 배신했습니다. 도망가고, 떠나가고,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은 삼십에 팔아버렸습니다. 끝까지 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제자들에게도 완전히 버림받으셨습니다. 결국 사람은 결코 완전히 믿을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엄중한 진리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만이 참된 도움이심을 깊이 믿어야 합니다.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과 십 사람들에게 철저히 배신당하는 뼈아픈 경험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진실로 돕는 분이심을 온전히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사람을 의지하다가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을 반복하지 말고, 매 순간 오직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순수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가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확실히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을 때, 기도하는 자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가장 무력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강력하고 능력 있는 자입니다. 어떤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포위망이 무섭게 좁혀오는 절박한 순간에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그를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단코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 안에서 우리의 모든 염려와 걱정을 온전히 맡기며, 하나님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살게 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권능을 늘 깊이 기억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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