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7편

성경
시편2권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시편 57편

어른과 어린아이를 가르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상상력에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으나, 어른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린 시절의 그 찬란했던 상상력이 서서히 빛을 잃으며 점차 빈곤해져 갑니다. 어린아이들에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우주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려보라 하면, 탁월하고 기발한 아름다운 그림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생활의 테두리 안에서만 사고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상상이라 부를 수 없는, 빈곤한 생각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적이며 거룩한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믿음이란 본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를 따라 걸어가는 영적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는 듯이, 우리의 육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고 느끼며 경험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상상력과 영적인 통찰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거룩한 상상력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에게는 눈앞에 잡히는 것,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굳게 붙잡고, 거룩한 상상력을 품은 채 하나님과 더불어 믿음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아직 낳지 못해 걱정하고 번민하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밖으로 데리고 나가 저 광활한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셨습니다. "너의 자손이 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아브라함은 저 무수한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보면서, 자신의 후손들이 펼쳐질 장엄한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붙잡고 믿음으로 그려냈습니다.

설령 그것이 그의 생애 동안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먼 미래에 성취될 영적인 자손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윗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다윗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 놓여 있고, 어려움의 한복판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는 영적이며 거룩한 상상력을 통해 이 시련을 견디어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표제를 보면,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을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절대 권력자인 사울을 피해 다윗은 날마다 이리저리 떠돌며 도망다니지만, 유대 광야에는 몸을 숨길 만한 곳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험준한 산악 지형이라면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은신처를 찾기가 수월하겠지만, 그 땅에는 척박한 사막만이 펼쳐져 있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들어가자니 막대한 현상금 때문에 주민들이 곧바로 다윗을 신고해버립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매 순간 절체절명의 위기와 긴박한 상황을 겪으며, 피하고 도망다니다가 어느 날 깊은 굴 하나를 발견합니다. 굴속 깊숙이 들어가 사울의 군대가 지나가기를 숨죽여 기다립니다.

객관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한번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슬프고 참담하며 고통스러운 처지입니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윗은 사울 왕의 군대 장관으로 승승장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백성들에게는 한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었던 영웅이었습니다. 여인들이 거리에서 노래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그토록 온 백성의 환호를 받던 다윗이, 지금은 사람들에게 쫓기고 사울에게 쫓기며,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그는 동굴 속에 몸을 숨긴 채 떨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매 순간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객관적으로만 보자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다윗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 57:1)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한다고 고백합니다. 한마디로, 그가 처해 있는 이 처참하고 처절한 상황, 제삼자의 눈에는 참으로 불쌍하고 비참해 보이는 이 상황을, 그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병아리가 어미 닭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안전하게 피하고 있는 것처럼,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따뜻하고 든든한 품속에 깊이 안겨 있는 것처럼, 그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상상력입니다. 이것은 거룩하며 영적인 상상력입니다. 지금 상황적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다윗만큼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만큼 억울한 사람도 없습니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상황 아닙니까? 자신이 지은 죄는 하나도 없고 잘못한 것도 전혀 없는데, 이토록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피하고 쫓겨다니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한심하고 한탄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피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한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시시때때로 세심하게 돌보아주셔도 주의 날개 그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러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앞에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목이 마르면 반석에서 물을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배가 고프면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더우면 구름 기둥으로 햇볕을 가려주시고, 해가 떨어져 추우면 불기둥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입술에서는 늘 원망과 불평만이 흘러나왔습니다. 항상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 구워 먹던 그 시절만을 그리워했습니다. 같은 상황인데,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이었는데,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의 상황이 참으로 힘겹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렇게까지 해서 어떻게 견디느냐"고 탄식할 만한 그런 상황을,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백성들은 언제나 다윗과 같은, 보이지 않는 실재를 보는 영적이며 거룩한 상상력을 지녀야 합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제가 피합니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시 57:2)

이 고백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이 신앙 고백입니다. 다윗은 깊이 성찰했습니다. 이 피할 곳 없는 유대 광야에서, 그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굴을 내 눈에 보이게 하시고 나를 안전하게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 바로 이 하나님께서 결국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어주시겠구나. 그러므로 그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행하실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상상합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돌파구도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윗과 같은 이러한 거룩한 상상력이 우리 마음속에 항상 생생하게 살아 숨 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보실 때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보시는 거룩한 믿음과 상상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처음 만나셨을 때, "너는 게바라, 장차 게바라 불리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반석 베드로, 페트라라는 이름 아닙니까? 처음 시몬을 대면했을 때, 그는 얼마나 볼품없고 보잘것없어 보였습니까? 그는 평범한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였고, 세상이 주목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연약하고 거친 외모는 보지 않으시고, 그의 깊은 마음속 저 밑바닥에 잠재된 반석 게바를 발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현재의 약점보다는 미래의 장점과 가능성을 보시고 그에게 위대한 소망을 두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사람을 대하실 때 가지셨던 거룩한 상상력이요, 영적인 통찰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기대와 소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상황 속에는 끝도 없이 불평거리가 넘쳐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과 기대를 품고 상상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못 할 것이 없고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미래를 바라보고 꿈을 꾸며 상상하고, 하나님과 함께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뛰어넘어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과 기대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새벽을 깨우리로다

이렇게 되니 다윗은 이제 다가올 다음 날 새벽을 간절히 기대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 57:7-8)

만약 다윗이 이러한 거룩하고 영적인 상상력을 갖지 못했더라면,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다시 새벽에 여명이 밝아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두려웠겠습니까? 어제는 어떻게든 간신히 하루를 잘 견뎌냈는데, 사울에게 잡히지 않고 간신히 생존했는데, 오늘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해가 떠오르는 것 자체가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주의 날개 그늘이라는 거룩한 상상력을 품기 시작하자, 새벽이 두려움이 아닌 기대와 소망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어제도 나를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품어 지켜주셨는데, 오늘은 또 어떠한 놀라운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다가올 다음 날을 기대하며 소망합니다.

혹시 오늘 우리 가운데 아침에 눈 뜨는 것이 두렵고 힘겨운 분이 계시다면, 오늘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면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다윗의 그 굳건한 믿음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온전히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 57:9)

감사와 찬송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옵니다. 이 굴속에서, 축축하고 습기 가득하며 캄캄한 이 동굴 속에서, 사람들이 볼 때는 무슨 감사거리가 있느냐, 찬송할 거리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이 굴속에서, 다윗은 뜨거운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변한 것은 오직 한 가지, 그의 믿음의 눈이었습니다.

그는 이 어두운 동굴을 하나님의 날개 그늘로 바라보았고, 그 순간부터 감사가 샘솟았으며, 찬송과 감사가 그칠 줄 모르고 흘러넘칩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감사와 찬송을 현실이 되도록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날개 그늘을 믿음으로 상상했고, 이 거룩한 상상이 참으로 그의 삶 가운데서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꿈과 상상이 아름다운 현실로 성취되는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거룩한 영적 상상력을 회복합니다. 다윗은 캄캄하고 음습한 굴속에서도 자신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있다는 영적 상상력을 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때로 피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음습하고 어둡고 캄캄한 굴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힘겨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내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 이 고백이 오늘 우리 자신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을 갖습니다. 치열한 현실 속에서, 고단하고 힘겨운 우리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눈과 영적인 상상력을 잊어버리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이 상상력을 다시 온전히 회복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실재를 마치 보는 것처럼 굳게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실제 현실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결단이 오늘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는 기대와 찬송으로 살아갑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고백했던 다윗처럼, 우리도 다가올 다음 날 아침에 눈 뜨고 해가 밝아오는 것을 설렘과 기대로 맞이해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억지로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소망을 품고 오늘 이 하루를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잃어버렸던 감사와 찬송을 온전히 회복하여,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상황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찬송이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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