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기준
시편 58편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매할 때, 우리는 저울의 정확성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원하는 만큼의 고기를 저울에 달아 그 중량만큼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거래입니다. 그런데 만약 저울이 고장 났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실제 중량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면, 더욱이 주인이 악한 마음을 품고 저울의 눈금을 임의로 조작했다면, 그 가게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주인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그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집행하는 자의 올바른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의라고 부릅니다. 정의롭다고 말할 때는 반드시 그 정의의 기준이 명확해야 합니다. 기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우리는 결코 정의롭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법을 집행할 때도 그 법의 기준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될 때, 우리는 비로소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잠잠한 통치자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다윗의 시편이며, 저주시로 분류됩니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세상의 권세 잡은 통치자들, 곧 스스로가 정의가 되어버린 통치자들을 강력하게 저주합니다. 본래 통치자들이라면 정확한 법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공의롭게 통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다윗은 이 저주의 시편을 지었습니다. 누군가를 저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다윗 자신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토록 강렬한 시를 하나님께 올려드린 것은, 그들로 인해 극심한 고통과 아픔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공의대로 판단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시 58:1)
통치자들이 잠잠합니다. 판결해야 할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말해야 하는데,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는데, 그들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법의 기준에 따라 정확하고 정직하게 통치하고 판결해야 하는데, 그들은 정의를 삼켜버리고 어떠한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정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기준이 있듯이 고대 사회에도 분명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 기준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법전이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나라의 법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이 이 시를 기록할 때도 하나님의 법전인 모세오경이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통치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다스리고 정치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오히려 그 법전 위에,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기 자신을 군림시켰습니다. 내가 곧 기준이요, 내가 곧 법이 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다윗에게 그러한 사람은 바로 사울 왕 한 사람이었습니다. 법에 의한다면 다윗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전인 말씀을 기준으로 살펴보아도 다윗에게서 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통치자들, 판결해야 하는 사람들, 왕 곁에 서서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간언해야 할 소위 배운 사람들, 법에 대해 알 만한 사람들조차 모두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중심의 악
"아직도 너희가 마음으로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시 58:2)
그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마음으로 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 중심에 악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 밖으로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으로 악한 행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 어찌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늘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은 곧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하셨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다면, 그 마음은 언젠가 반드시 말로, 행동으로, 혹은 표정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 중심에 악을 품고 있으면 그 악은 분명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치자들, 법에 의해 정확하게 판결해야 할 그들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나는 통치자가 아니니, 정치하는 사람도 아니고 권력을 가진 자도 아니니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에게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우리 마음속에 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선이 기준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먹은 독사 같으니 술사가 아무리 능숙하게 술법을 행할지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시 58:3-5)
그들의 독은 뱀의 독과 같으며, 더욱 무서운 것은 귀먹은 독사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뱀의 독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 독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습니다. 귀먹은 독사는 얼마나 더 무섭겠습니까?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직 목표물을 향해 자신이 가진 독을 뿜으려고, 그 독을 쏘려고 무섭게 달려드는 귀먹은 독사, 다윗에게 이러한 귀먹은 독사 같은 존재가 바로 사울 왕이 아니었겠습니까?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며, 독을 가지고 한 사람을 죽이려고 끊임없이 달려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에게는 아무런 방어할 무기가 없습니다. 귀먹은 독사를 제어할 능력도 없고 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독을 가진 독사는 끊임없이 그를 노리고, 앞에서 뒤에서 시시각각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원수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으소서" (시 58:6)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이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귀먹은 독사 같은 맹독을 품은 자가 통치자이기 때문에, 그가 힘과 권력과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이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맞서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그들의 이를 꺾어버리소서. 독사의 맹독이 있는 이를 꺾어내어 주소서."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힘쓰고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맹독을 품은 독사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신앙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셨으면 그 건강을 가지고 내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하려고 애를 쓰다 보면 문제만 생깁니다. 그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맡겨버려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끌어안고 붙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염려와 근심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염려하고 근심한들 문제가 해결됩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염려하고 근심했습니까?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 문제를 해결받은 것은 단 한 건도 없었을 것입니다. 진실로 할 수 없는 것,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시원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겼는데도 그 마음의 분노가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나무든지 불붙는 나무든지 강한 바람으로 휩쓸려 가게 하소서" (시 58:7-9)
저주 시편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누군가를 저주하는 시편이 시편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 누군가는 대부분 사울과 그 무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누군가를 저주한다는 것, 우리가 생각할 때 선한 왕 중의 선한 왕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왕이 어떻게 이런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한 말을 다윗이 쏟아냅니다.
"의인이 악인 당한 보수를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시 58:10)
여기서 의인은 다윗 자신을 가리킵니다. 악인은 사울입니다. 즉, 다윗 자신이 사울이 보복당하는 것을 보고 기뻐할 것이며, 자신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겠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늘 이 시를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에서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직접 원수를 갚아 내리지 않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다윗은 원수 갚는 일을 이처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가 사울을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여러 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있는 억울한 것들, 힘든 것들, 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기도로, 원수 시편으로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생명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억울한 마음이 있다면, 내가 직접 원수를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골몰하고 그것 때문에 뼈가 쇠하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만이 아는 나의 언어로 어떤 말을 쏟아내든지, 하나님께서 내 마음 중심을 다 이해하시고 붙들어 주시며 받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 이후에 나머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면, 전능하신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선하고 올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함을 기억합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권력을 가지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진실로 정의가 없었습니다. 마음에 악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선이 우리 마음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을 가집니다. 맹독을 품은 귀먹은 독사처럼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을 끌어안고 염려하고 근심하기보다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셋째는 억울하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 솔직하게 기도하며 원수 갚는 일을 맡깁니다. 다윗은 사울을 향한 극심한 분노와 억울함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토로했지만, 직접 자신의 손으로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 주권을 인정하는 참된 신앙입니다. 우리에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나 억울한 마음이 있다면, 나와 하나님만이 아는 우리의 언어로 솔직하게 기도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전능하시고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선하고 올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