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9편

성경
시편2권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다

시편 59편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이자 동시에 전쟁에서 패한 패전국이었습니다. 전쟁의 패배 이후 독일 국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상실감과 죄책감, 그리고 허무함은 실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 600만 명을 잔혹하게 학살했던 히틀러는 죽어 사라졌으나, 나치에 적극적으로 부역하고 동조했던 이들, 그리고 침묵으로 방관했던 이들은 엄청난 환란과 깊은 죄책감을 안고 긴 세월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독일 국민들이 부담해야 했던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국가의 완전한 붕괴라는 현실적 참담함보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그들 정신의 황폐화였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감과 영혼의 공허함이야말로 더 큰 문제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위기 속에서 한 젊은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희망의 신학"이라는 책을 저술하게 됩니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종말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종말론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몰트만은 이 종말론과 희망의 신학에서 개인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을 논하면서, 종말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요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임을 탁월하게 제시합니다.

개인의 종말이 시작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지만, 믿음 안에서 죽는 이들은 거기에서 새로운 천국 백성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참된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역사의 종말,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영광스러운 재림의 때가 되면, 지금까지 이 땅에서 희망도 소망도 없이 살아가던 모든 이들이 새하늘과 새 땅에서 이제는 눈물과 고통과 근심이 없는 곳에서 영원한 새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사실 희망의 신학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종말과 계시, 그리고 새하늘과 새 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독일 국민들에게 엄청난 소망과 희망을 선사했습니다.

이제는 끝났다고 여겼던 종말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들이 거기에서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가 끝났다고 여기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다시 일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 인생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내가 보아도 이제 나는 끝났고, 제삼자가 보아도 너는 이제 끝났다고 판단하는 순간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계십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할 힘을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다윗이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시편의 표제어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 (시 59편 표제)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 하였고, 그의 집을 감시하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과 위기를 벗어난 후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이 내용은 사무엘상 19장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자객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자객들을 다윗의 집에 매복시켜 두었습니다. 다윗이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거기에서 자객들이 나타나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 사울의 치밀한 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였던 미갈이 이를 눈치채고 집에 돌아온 다윗을 황급히 피신시켰습니다. 창문으로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잡혀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겨우 피신한 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이 시를 지어 올렸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안전한 안식처라 여겼던 집에 자객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객을 보낸 이는 다름 아닌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 왕은 또한 자신의 장인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그 나라의 군대 장관임에도 불구하고, 장인이자 왕인 사울은 자신을 죽이려 했습니다. 다윗의 코앞에 죽음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종말이 끊임없이 어른거렸습니다. 언제 죽을지, 언제 자신의 목숨이 끊어질지 알 수 없는 종말과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시 59:1-2)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사울왕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은 자기 힘으로는 이 절대 권력자를 막을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 사울에게서 자신을 건져 달라고 호소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자신의 역량을 완전히 넘어선 위기 앞에서 그는 오직 하나님께만 간절히 호소합니다.

내면의 성찰

그리고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나의 죄로 말미암음도 아니로소이다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펴 주소서" (시 59:3-4)

사울왕이 그를 죽이려 할 때 다윗은 자신을 철저하게 성찰합니다. 혹시 내게 허물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내게 어떤 문제가 있었던가? 이분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분이 나를 죽이려 하시는가? 그가 아무리 살피고 돌아보아도 자신에게 허물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아도 행동을 살펴보아도 그는 하나님 앞에 성실했고 국가에 충성을 다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누볐고 왕의 명령을 단 한 번도 거역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깊이 성찰한 후에 죄가 없으면 내면의 자신감이 솟아납니다. 내 죄로 말미암은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 그다음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확고한 담대함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일어납니다.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 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 그들의 입술의 말은 곧 그들의 입의 죄라 그들이 말하는 저주와 거짓말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 (시 59:11-12)

그들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께서 내 대적들을 죽여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자기 내면에 확신이 차오르자 그들을 쉽게 죽이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정의가 사람들에게 분명하고 바르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들이 얼마나 악한 자인지를 깨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공의롭게 심판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아뢰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을 철저히 성찰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청원하는 것입니다.

새 아침의 찬양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시 59:16)

아침에 주님을 노래한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아침을 기대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아닙니까? 매일같이 계속되는 고난과 환란과 어려움과 두려움, 언제 잡힐지 알 수 없는 불안함, 길을 가다가 모퉁이만 보아도 저 모퉁이에 누군가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공포가 그를 짓누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와 기쁨과 희망을 그가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고, 그 절망이 변화되어 희망이 되는 인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후사를 약속하신, 약속을 받은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100세가 될 때까지 아이를 얻지 못했습니다. 남자의 기력이 쇠하고 사라의 경수가 끊어진 후, 인간적으로는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이삭을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일 때 하나님은 그에게 희망을 선물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셨으며,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백성들은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바라보며 희망을 품고, 우리 예수님의 무덤을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희망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끝났다고 여기는 바로 이 순간, 우리가 모든 것이 이제는 다 마무리되었다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생각하는 바로 이 순간, 다시 새 아침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안 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내 손을 붙잡고 다시 찬란하게 비상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와 소망이 우리 인생에 새로운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견지해야 합니다. 다윗은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그를 죽이려고 자객을 보내고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 오는 극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님의 인자하심을 높이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어떤 낙심할 만한 상황과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둘째는 자신을 성찰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다윗은 환난의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을 철저히 성찰하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서 있었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이 찾아올 때 먼저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을 견지해야 합니다.

셋째는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소망해야 합니다. 죽음의 상황에서도 저 천국에서 눈 뜰 날을 기대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막다른 골목에서도 다시 이 골목을 넘어서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은혜와 능력을 더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기도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남은 한 해의 시간도 주님과 함께 아름답고 찬란한 비상이 주님의 자녀들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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