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편

성경
시편1권

간절한 기도

시편 5편

올림픽과 같은 큰 시합에서 두 선수의 기량과 경험이 비슷하다면, 과연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당일의 컨디션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배짱이 승부를 결정짓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얼마나 간절한가, 얼마나 그 시합을 이기고 싶은가, 얼마나 절박한가 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이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기회임을 깨달은 채 간절하게 시합에 임하는 사람이 승리할 확률이 훨씬 더 높습니다.

우리가 텔레비전 중계 화면을 통해 보더라도 절박한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지 않습니까? 그의 태도와 마음, 그 눈빛을 우리는 화면을 통해서조차 읽어낼 수 있습니다. 내가 간신히 잡은 이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이렇게 좋은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절박함을 가진 사람이 시합에서 승리할 확률이 훨씬 더 높습니다.

기도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이라는 말은 우리와 하나님이 상호 소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로봇이 아니시고 무정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살피고 돌보시는 아버지 같은 분이시며, 참으로 좋은 친구 같은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하고 절박하게 아버지 앞에 나아오면,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함을 차마 외면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도 얼마나 절박한가, 이 문제가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절실한가가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이 시편을 지은 다윗은 자신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절박한 심정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시 5:1)

앞뒤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 나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곧바로 말합니다.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이 기도가 지극히 개인적인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상황을 모두 알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그의 절박함을 아시는데 굳이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설명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너무나 간절하기 때문에 앞뒤를 다 생략하고 본론부터 하나님 앞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급하면 서론과 본론을 다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하지 않습니까? 마음이 너무 급하면 그렇게 됩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려드리면서 기승전결을 차근차근 갖추어 설명할 여유가 없는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급하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헤아려 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절박하고 다급한 사람은 그저 조용히 읊조리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르짖게 됩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 5:2)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 달라고 간청합니다. 조용히 읊조리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그는 지금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크게 부르짖으니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가 어두우신 것도 아닌데 그냥 조용히 기도해도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며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내가 절박하면 숨죽일 수가 없습니다. 눈물도 흐르고 소리도 커지며 부르짖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재도 뒤집어쓰고 유대인들처럼 옷도 찢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인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간절함을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간절하게 기도드리는 사람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주시고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기를 우리도 함께 중보의 기도로 동참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른 새벽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 5:3)

아침이라는 말, 히브리어로 '보케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보케르라는 단어는 이른 새벽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침은 우리가 충분히 자고 컨디션 좋게 눈을 떴을 때 해가 찬란하게 빛나는 그러한 아침이 아닙니다. 여기의 아침은 만물이 약동하기 전에, 어떤 일도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일어나서 누구와도 대화하기 전, 그 이른 새벽을 의미합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사람은 이른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올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새벽에 깨어나 이 자리까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우리의 취미생활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 앞에 절박하게 올려드리는 기도가 우리 각자에게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간절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누워서 잠을 자면 됩니다. 절박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내 인생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됩니다. 그런데 간절하기 때문에 잠을 줄여가며 새벽에 깨어나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우리가 다 알 수 없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 그는 절박했습니다. 그래서 이른 새벽에 깨어나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3년을 사시면서 항상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아직 밝기 전 미명에 예수님께서 먼저 나가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뒤를 따라 예수님을 찾아 나와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나가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생을 혼자 보낼 수 없어서 뒤따라 나온 것이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 그렇게 절박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간절할 이유도 절박할 이유도 별로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간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온 인류의 죄짐을 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 짐이 얼마나 무겁고 컸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 문제를 두고 하나님 앞에 매일 새벽 절박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간절할 때, 절박할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면 그때는 이른 새벽, 어떤 일도 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붙들어 달라고, 내가 넘어지지 않게 나를 세워 달라고, 그리고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지금 우리가 나와서 이 자리에서 이른 새벽 엎드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절박함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줄로 믿습니다.

악인으로 인한 절박함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시 5:5-6)

갑자기 시가 잘 전개되다가 이러한 사람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다윗이 지금 절박한 까닭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변의 악한 사람들 때문에 다윗이 큰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사람들과 어떤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 오만한 자, 악한 자들 때문에 다윗이 지금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과 만나고 거래하며 얽히고설킵니다. 인간관계가 꼬이고 뒤죽박죽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원치 않는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때,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절박하게 다윗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중심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시 5:7)

성전을 향하여 예배한다는 표현은 다윗의 시편에 자주 나오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어떤 의미입니까? 다윗의 삶의 중심이 항상 성전, 곧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뜻입니다.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절박하게 기도하고 자기 일터로 돌아가서는 온종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일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봉사하고 일하다가도 한 주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다가 다시 기계적으로 그다음 주일에 성전에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절박한 사람은 항상 그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절박한 사람은 그의 몸이 비록 성전에서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절박하기 때문에, 간절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를 한번 보십시오. 느헤미야 시절 그는 페르시아 수산 궁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살았습니다. 나라는 이미 넘어갔습니다. 나라는 식민지 치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먼 친척 한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고합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은 불탔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마음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중심이 예루살렘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느헤미야의 몸은 페르시아 수산 궁에 있었지만, 그의 중심은 하나님의 성, 시온 성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장 달려가지 않았습니까?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세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절박한가 절박하지 않은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결국 내 중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로 결정될 것입니다.

원수로 말미암은 인도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시 5:8)

매우 독특한 표현이 나옵니다.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해 달라고 말합니다. 사실 원수들 때문에 죽게 되고 가는 길이 막힌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 아닙니까? 이것이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5절과 6절에서 언급했던 그 원수들 때문에 내가 주님을 섬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를 비방하는 무리들 때문에 내가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이 참 괴롭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목회자를 찾아와서 하는 다양한 상담과 다양한 신앙의 문제들을 토로하는 분들 중에 저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해서 교회를 못 다니겠습니다, 신앙생활을 못하겠습니다 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는 사람들,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내 신앙이 상처받고 걸림돌이 생기며 침체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은 절박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간절하면 사람이 왜 문제가 됩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그 사람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내 신앙이 그 사람 때문에 걸려 넘어집니까?

다윗은 말합니다.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해 달라고 말합니다. 원수들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간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간절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간절한가, 절박한가를 이 시편을 통해서 살피고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오늘 이 자리에 나왔으니 엎드려서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를 덧입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진리입니다. 다윗은 앞뒤 설명도 생략한 채 곧바로 본론부터 하나님 앞에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조용히 읊조릴 수 없을 정도로 절박했기 때문에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간절함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둘째는 간절한 사람은 이른 새벽부터 하나님을 찾습니다. 다윗은 만물이 약동하기 전 이른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미명에 일어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간절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지만, 절박하면 잠을 줄여가며 새벽에 깨어나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간절하고 절박한 때가 있습니다. 그때 이른 새벽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는 절박한 사람은 중심이 항상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향하여 예배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삶의 중심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의미입니다. 느헤미야도 몸은 페르시아에 있었지만 중심은 예루살렘을 향해 있었습니다. 간절한 사람은 몸이 성전에서 떨어져 있어도 마음과 생각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합니다. 더 나아가 다윗은 원수들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간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간절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신앙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로 인해 하나님 앞에 더욱 깊이 나아가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 다양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절박한 마음으로 이른 새벽 하나님을 찾으며,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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