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1편

성경
시편2권

땅끝에서 부르짖다

시편 61편

사람의 진면목은 평안한 시기가 아닌 위기의 순간에 비로소 드러나는 법입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고 건강과 물질의 풍요 속에서 가족이 평안할 때에는 그 사람의 참된 인격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성공과 안정이라는 화려한 외피가 그의 본모습을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 한두 가지 일이 어긋나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사뭇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곧 나아지리라, 회복되리라 기대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점차 확대되고 상황은 조금씩 악화되어 마침내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됩니다. 조금만 더 물러서면 천 길 낭떠러지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힘이 없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할 만한 역량이 자신에게는 부족합니다. 바로 그 순간, 어떻게 이 어려움을 돌파하느냐가 그 사람의 진정한 역량을 드러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다윗은 바로 그러한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어놓으며, 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극복하게 해달라고 애절히 간구하고 있습니다.

위기 속 부르짖음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시 61:1)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어달라고, 자신의 기도에 유의해 달라고 애절히 간청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이 결코 평범하거나 정상적이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만약 평안한 상황이었다면 이처럼 절박하게 부르짖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때라면 하나님을 붙들고 이토록 애절하게 청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 노래하고 시를 올려 드리며 평상시와 같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짖는다"는 표현, "내 기도에 유의해 달라"는 간구는 지금 다윗이 처한 상황이 비상사태요 위기임을 명백하게 증거합니다.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시 61:2)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약해지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땅끝"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땅끝이라는 단어는 다윗의 현재 상황과 심정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 시는 일반적으로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왕위를 잃고 피난길에 올라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 처한 상황이 땅끝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서 땅끝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먼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절박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다윗은 심리적으로 땅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했습니다. 차라리 그가 아끼던 신하에게 왕위를 빼앗겼다면 이 정도의 심리적 충격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난 아버지의 심정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그는 진실로 심리적 땅끝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다윗은 현실적으로도 땅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살아서 돌아오기 어렵다는 생각이 그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향한 원한과 미움, 원망을 품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하여 왕위를 찬탈했습니다. 한 나라에 왕이 둘일 수는 없습니다. 압살롬이 진정한 왕이 되려면 아버지를 제거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다윗이 살아서 돌아올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그는 심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이제 벼랑 끝, 땅끝에 내몰려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평생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며 수많은 적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여러 나라와 민족을 상대하며 무수한 전투에서 승리하여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젊은 시절 사울에게 쫓겨 다녔던 15년 이상의 세월도 견뎌내고 살아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진실로 그의 마음이 약해지는 때입니다.

유일한 피난처

우리 인생에도 이런 때가 찾아오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 땅끝에 서 있다"는 절박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저렇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젊은 시절도 잘 이겨왔는데, 이제는 나이도 들고 몸도 쇠약해지고, 다윗처럼 누구 하나 기댈 데가 없는 상황. 심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땅끝에 서 있다는 이 절박함. 그렇다면 그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시 61:2)

다윗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땅끝에서 주께 부르짖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땅끝에 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들에게 쫓겨나 심리적 땅끝에 처해 있고, 현실적으로도 살아서 돌아오기 어려운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뿐입니다. 그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는 그것뿐입니다.

이제 그를 따르는 군사들도 많지 않고, 그와 함께했던 여러 사람들도 지금 압살롬에게 돌아간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강하시고 능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최후의 수단이자 동시에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가장 무력한 것처럼 보이고 연약하고 힘없는 이들이 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기도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실 때 그들을 훈련시키신 방법이 바로 이 기도의 방법이었습니다.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에 휩싸입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들입니다. 평생을 그곳에서 나고 자라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조차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거센 풍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르는 척 배 고물에서 평온히 잠들어 계십니다. 제자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배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 왔다가 저리 갔다가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금방이라도 배가 전복될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한 일, 마지막 남은 수단은 예수님을 깨운 것이었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어서 일어나소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이 고요해지며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지혜로웠던 점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깨운 것입니다.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우고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어서 일어나셔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주님께 외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지금 이 배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느냐? 지금 이 풍랑 치는 바다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왜 나에게 요청하지 않느냐? 구하지 않느냐?"

배에 있는 물건을 바다에 다 던지면서, 할 수 있는 한 바람을 어떻게든 통제해 보려고 이리저리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요청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그러나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예방하는 신앙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바람과 풍랑이 일어날 때, 그때 즉시 나에게 와서 엎드린다면 고생도 덜하고 문제도 더 심각해지지 않으며 너희 인생도 훨씬 더 편안한 항해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요청하시는 것도, 오늘 땅끝에 서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생을 살다 보면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예민해지면 이 위기가 찾아올 때 그 전조를 우리는 금방 깨닫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 엎드린다면 큰 위기를 겪지 않고 금방 이겨내며 신속히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고 방치하면 나중에는 벼랑 끝에 서게 되고 땅끝까지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그렇지 않습니까? 압살롬에게 왜 쫓겨났습니까? 처음에 암논과 다말 사건이 있을 때 그때 지혜롭게 다스렸더라면, 그때 자녀들을 신중히 통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이 가정에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를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어놓았더라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압살롬이 형제를 살해하고 먼 곳으로 도주하며, 아버지는 아들을 미워하고, 피바람이 불고 죽고 죽이는 이런 참혹한 비극에 휩싸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예민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적 예민함은 갑자기 생겨나지 않습니다. 없던 예민함이 어떻게 순식간에 생겨나겠습니까?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엎드리며 영적인 신앙생활을 기본적으로 충실히 하는 자가 예민해집니다. "내 인생에 파도가 저기 멀리서부터 조금씩 다가오는구나. 죄가 나를 유혹하는구나." 이렇게 분별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일 년에 한두 번 기도하는 자가, 일 년에 한두 번 하나님께 엎드리는 자가 어떻게 예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엎드리며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커다란 문제를 겪고 난 후에 이런 식으로 땅끝에서 하나님께 엎드리지 말고, 순간순간 주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며 동행하여 문제를 미리 예방하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거처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시 61:3-4)

다윗의 위대함은 땅끝에서도 주께 부르짖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 그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나를 건져 달라. 내가 오르지 못할 저 높은 바위 위로 나를 건져 올려 달라. 이제 나에게는 남아 있는 카드가 아무것도 없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돕지 않으시면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제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명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시 61:6-7)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에서 왕은 다윗 자신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오랫동안 아프지 않고 무병장수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제가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쫓겨났습니다. 하나님, 다시 한번 저를 회복시켜 주신다면 제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가 아버지로서의 사명도, 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의 사명도 성실히 감당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이것은 그의 결단이요 기도입니다. 사명을 잃고 난 이후에 후회하는 자의 애절한 기도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 예민함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땅끝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우리는 땅끝으로 내몰리기 전에 하나님 앞에 매 순간 부르짖고 기도하며 영적 기본 생활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죄가 다가오는 것, 위기가 찾아오는 것, 우리 영혼에 감기가 찾아오는 것을 영적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남이 내 인생의, 내 영혼의 위기를 분별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매 순간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 영적 예민함을 가지고 내 인생을 분별해 내야 합니다.

둘째는 위기가 오기 전에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문제가 작을 때, 풍랑이 저 멀리서 시작될 때 즉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고생도 덜하고 위기도 더 심각해지지 않습니다. 괜찮겠지 하며 방치하다가 땅끝에 내몰려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문제를 미리 예방하는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일을 맡겨주실 때, 시간과 건강과 물질을 주실 때 그때 열심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충실히 붙들고 성실하게 감당해 낼 때 다윗처럼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땅끝이 아닌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안전하게 거하는 기쁘고 행복한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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