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히 바라다
시편 62편
우리는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힘없고 재물 없고 권력 없는 이들이 권세 있는 자들과 가진 자들로부터 고통받고 힘겨워하며 때로는 무시당하는 광경을 수없이 목격해왔습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참으로 능력 있고 재물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거나 자신이 가진 힘을 의도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지도자라면 그는 실로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며, 그는 마음이 넓고 그릇이 참으로 큰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보기 드문 인물, 그러한 고귀한 품성을 지닌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의 시편을 지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오늘 이 시편을 통하여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와 행사할 수 있는 권력, 그리고 휘두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의뢰하는 폭넓은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자들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시 62:4)
다윗이 왕으로서 그 왕좌에 앉아 있을 때, 그 앞에서는 온갖 아름다운 말로 그를 높이고 입으로는 축복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속으로는 저주하며, 어떻게 하면 이 왕을 높은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을까 끊임없이 모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이 어찌 그들의 마음을 분별하지 못하겠습니까? 왕좌에 앉아 있으면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거짓된 정보를 주기도 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지금 자신의 앞에서 여러 가지 말로 아첨하는 사람들 중에 겉과 속이 다른 자, 앞과 뒤가 다른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왕의 자리에 있으면 참으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가운데 다윗이 높은 자리에서 떨어지기만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실로 많았을 것입니다. 그는 왕이 아닙니까? 가장 높은 권력을 지닌 사람, 큰 권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만약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왕의 권위로 그들을 고문하든지 옥에 가두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무수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은 그러한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잠잠함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 62:1)
그의 영혼은 앞뒤가 다른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깊은 불편함을 느껴도, 여전히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결코 용이한 고백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사람인지라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불편함과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며 그대로 방치한다면, 지속적으로 저들은 음모를 꾸밀 것이고, 결국 이러다가 자신의 왕좌가 위태롭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어찌 하지 않았겠습니까? 시시각각 흔들립니다. 시시각각 걱정도 되고, 지금 당장 이들을 처리해버릴까 하는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2)
사실 그도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석이시고 하나님이 요새이시니, 내가 이럴 때 하나님을 의지하니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도 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확고한 결단의 고백입니다.
사실 다윗은 일평생 가운데 힘없는 인생을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아버지 이새의 집에서 막내로 살 때도 그러했고,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힘이 없어서 참을 수밖에 없었던 때가 어찌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는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없어서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권력이 있고 힘이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참는 것이 오히려 더욱 어려운 법입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마땅히 그렇게 해도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누구 하나 그를 비난할 사람이 없는데도, 그럼에도 참아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된 믿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사람의 진정한 면모가 아니겠습니까?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시 62:3)
그런데 이러한 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속적으로 왕을 시험에 들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넘어지는 담, 흔들리는 울타리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끊임없이 공격하는데, 이제는 그 도가 더욱 심해지고 멈추지 않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내가 너희를 참아주어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이야기를 악한 자들 앞에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토로합니다. "하나님, 제가 언제까지 이 사람들을 참아주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언제까지 이것을 견디고 또 견뎌야 하겠습니까?" 이러한 고백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 62:5)
다윗은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기도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소망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왕의 자리에 있으면 실로 다양한 사람들을 의지하게 됩니다. 장군도 의지하고, 학자도 의지하고, 지혜로운 자들도 의지하며, 함께 나를 도와 내 손을 붙잡고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의지했던 사람들이 속으로는, 뒤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그들에 대한 배신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겠구나,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의지해야겠구나 하는 것을 그가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범
오늘날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면, 길고 긴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러저러한 경험들을 하게 되는데, 사람들에게 때로는 배신당하기도 하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 내 앞에서는 축복의 말을 내뱉으나 뒤로는 전혀 다른 일을 꾸미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면,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일생을 사시면서, 특히 공생애의 인생을 사시는 동안 주님도 다양한 시험들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을 얼마나 비웃고 수치와 모욕과 조롱을 일삼았습니까? 특히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을 때, 주님을 때리고 고문하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시자, 저들은 "저가 엘리야를 부르는가 보다. 네가 그렇게 말하던 너의 아버지를 불러서 지금 저 십자가에서 내려오나 보자"라고 조롱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그럴 능력이 없으셨겠습니까? 십자가에서 당장 내려와서 예수님을 비웃는 자들을 철퇴로 내려치고 그들을 심판하실 권세와 그러한 권위가 우리 주님에게 왜 없으셨겠습니까? 당장에라도 천군 천사들을 불러서 저들을 심판하실 능력과 권위가 우리 주님에게 있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묵묵히 하나님만 바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야만 저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가실 수 있었고, 우리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그들의 죄를 다 끌고 가시고 부활하셔야만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불쌍한 영혼들을 건져내고 구원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맡김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분노가 있고, 우리 마음속에는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를 힘겹게 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그대로 갚아주고자 하는 마음, 보복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우리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고, 그 마음 때문에, 원수 갚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믿음 생활이 제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부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이 문제를 해결받아야 합니다.
원수 갚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의 마음이 평안해지고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저주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누군가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고 항상 우리 인생을 저주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능의 근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시 62:11)
나아가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고백이 아닙니까?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왕이 가지고 있는 권능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으며, 군대를 일으켜서 전쟁을 할 수도 있고, 왕의 한마디에 궁궐을 만들 수도 있으며, 백성들에게 곡식을 풀어줄 수도 있고 굶겨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권능은 왕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백합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고 묵상하며, 내 앞에서 나를 모함하고 나를 힘겹게 하는 자들을 두고 기도하다가 다윗이 깨달았던 것, 권능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로구나,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거나 할 수 있는 모든 권능은 하나님의 것이로구나, 나는 그 권위를 대신 위임받아서 하나님의 종으로, 양들을 이끄는 목자로, 시간이 정해진 이 기간 동안만 이 백성들을 대리하여 통치하는 자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 깨달음이 다윗을 참으로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권력이 평생 가겠습니까? 영원하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위와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영원하지 못합니다. 일시적인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다 지나가는 것이니, 그것을 가지고 권능을 하나님께 돌리는 지혜로운 다윗입니다. 이 다윗처럼 우리도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인자함의 근원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시 62:12)
아울러 그가 고백하기를, 권능도 하나님께 속한 것처럼 인자함도 하나님께 속했다고 고백합니다. 아마 사람들은 훗날 알게 되면 다윗을 칭송했을 것입니다. 그가 왕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략을 꾸미는 자들을 직접 처단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려주었구나 하며 그의 인자함을 노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자함은 다윗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깨달았으니,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한 것뿐입니다. 헤세드, 곧 인자함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고 따르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서 베푸는 것뿐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모함하고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려는 악한 자들 앞에서 왕의 권세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을 반석이요 구원자요 요새로 고백하며 흔들리지 않겠다고 확고히 결단했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을 살아가면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축복하고 뒤에서는 저주하는 자들을 만날 때, 우리의 힘으로 대응하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다윗은 기도하며 깨달았습니다. 소망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에게 소망을 두면, 배신과 실망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깊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우리 인생의 마음이 평안해지고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원수 갚는 일도, 공의를 실현하는 일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모든 권능과 인자함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무한한 권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권능이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악한 자들을 참고 견디는 인자함 역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권위와 능력, 그리고 남을 용서하고 참아내는 은혜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입술에서 흘러나올 때,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참으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참된 지혜를 얻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모든 권능과 모든 인자함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고백으로 이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